사진=뉴스1
사진=뉴스1
아파트 가격이 서울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대출 정책을 담당하는 금융당국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당국이 '가계부채 억제'와 '부동산 경기 활성화'라는 상반된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업계 일각에선 금융위원회가 최근 가계대출 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의 2단계 시행 시기를 7월에서 9월로 늦춘 것을 두고 '정책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와중에 정부가 빚을 더 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이다.

시장 지표들은 가계부채 문제가 엄중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5조4000억원으로, 작년 10월 이후 최대였다. 신용대출은 2000억원 줄었지만 주담대가 5조6000억원 급증했다. 주택 매매가 활발해진 영향이다.

저리 정책대출인 디딤돌(구입)과 버팀목(전세) 대출도 증가세다. 월별 증가액이 3월 3000억원에서 4월 2조8000억원, 5월 3조8000억원으로 커졌다. 최저 연 1%대 금리인 신생아특례대출의 부부 합산 소득요건이 1억3000만원에서 하반기에 2억원으로 늘어나는 것도 가계부채를 자극할 요인으로 꼽힌다.

연 3~4%대에 머물던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이달 들어 2%대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조만간 내릴 것이란 전망이 많은 가운데 실제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대출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당국의 대응은 아직 '창구 지도' 수준이다. 금융위는 시중은행의 담당 임원들과 주기적으로 가계부채 점검 회의를 열고 "차주의 상환 능력을 감안한 대출이 이뤄지도록 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당국이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어려운 이유로 지목된다. 정부는 부실사업장에 대한 사업성 재평가, 만기 연장을 어렵게 하는 방향의 대주단 협약 등으로 PF사업장 '옥석 가리기'를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에 금융 공급이 중단되면 3~4년 뒤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폭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울 남대문로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열린 '서민금융 잇다' 플랫폼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부동산 띄우기에 나섰다는 지적에 대해 " 말도 안 된다"며 "일반 중산층의 집값이 오르는 건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주도로 자영업자 대책을 준비하고 있고, 부동산 PF도 새로운 평가 기준 적용 후 어떤 충격이 오는지 봐야 한다"고 2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을 연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관리한다는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