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부족으로 "'누구나 산재 보상' 알고 있다" 30% 그쳐
신청 절차 복잡한데다, 고용 불안에 '주저'…매해 100여건, 올해 40건 승인
"적극적 제도 개선 필요"…노동부 "모국어로 산재 신청 절차 안내"
산재보험 가입 안해도 보상 가능…외국인엔 여전히 '높은 벽'(종합)
지난 24일 화재로 23명의 사망자와 8명의 부상자를 낸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회사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한 업체 메이셀은 고용보험과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모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장의 산재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 없이 미등록(불법) 체류자를 포함해 모든 근로자는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외국인은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언어장벽, 고용불안 등으로 실제 보상을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산재보상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보다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입국 후 취업교육에서 산재 발생 시 보상신청 절차 등의 교육을 하고 있으며, 오는 8월부터는 외국인 근로자의 모국어로도 산재 신청 절차를 안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재보험 가입 안해도 보상 가능…외국인엔 여전히 '높은 벽'(종합)
◇ 산재보험 미가입해도 보상되는데…29%만 "알고 있다"
27일 노동부 등에 따르면 아리셀에 인력을 보낸 메이셀은 4대 보험 중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가입했지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가입하지 않았다.

메이셀의 산재보험 가입 여부는 산재보상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다.

산재보험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기 때문에 가입 여부와 관계 없이 재해자는 모두 보상 대상이기 때문이다.

산재보험 미가입 사업장이더라도 근로복지공단이 재해를 당한 외국인 근로자의 근로 이력과 재해 경위 등을 직권으로 조사해 피보험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심지어 불법 체류자도 산재를 당한 경우 절차를 거쳐 보상받을 수 있다.

사망자의 경우 가족이 급여의 60% 정도를 평생, 자녀는 24세까지 유족연금으로 지급받는다.

부상자는 치료비 전액과 생활비(기존 급여의 70%)를 지원한다.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외국인 근로자 유족급여 청구와 승인 건수'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산업재해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유족이 신청한 급여 건수는 총 59건이고 이중 40건이 승인됐다.

외국인 근로자 유족급여 승인 건수는 2020년 112건, 2021년 122건, 2022년 109건, 2023년 101건이었다.

지난해 승인 건수를 기준으로 보면 100인 미만 사업장이 74건으로 가장 많았고 100∼300인 13건, 1천인 이상 12건, 300∼1천인 이상 2건 순이었다.

그러나 한국어가 서툴고 우리나라 법·제도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여전히 산재 신청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1년 5월 발간한 '이주노동자의 사회보험과 4대 전용보험 정책 과제' 보고서를 보면 '회사의 승인 없이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라는 질문에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8.8%에 그쳤다.

고용허가제 대상인 비전문취업비자(E9) 노동자는 그나마 43.9%가 인지하고 있었으나, 방문취업 동포(H2)나 재외동포(F4) 비자 노동자는 이 비율이 14.6%로 떨어졌다.

아리셀 공장 화재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자는 F4 비자가 가장 많고, H2 비자, 결혼이민(F6) 비자, 영주권(F5) 비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사업장이 산재보험에 가입했는지를 묻는 말에는 46.9%가 '가입했다', 24.1%가 '가입하지 않았다', 29.0%가 '모른다'고 답했다.

이주노동자의 주관적 인식을 물은 내용이라 실제 산재보험에 가입한 사업장의 비율과는 다를 수 있으나, '모른다'가 29.0%에 달한다는 건 그만큼 정보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산재보험 가입 안해도 보상 가능…외국인엔 여전히 '높은 벽'(종합)
◇ 입지 불안한 외국인 근로자, 알아도 신청까지 '먼 길'
자신이 산재보상 대상임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외국인 근로자는 보상을 신청하고 실제 보상받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한국어가 미숙한 외국인 근로자가 스스로 필요한 서류를 갖춰 산재 신청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 체류자는 물론이고, 합법 체류자도 임시·단기 근로자는 고용 불안 등으로 인해 실제 현장에서는 산재를 신청하는 대신 사업장과 개인 간 합의로 암암리에 처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산재에 대한 낮은 인식이 낮은 가입률로 이어졌고,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건강검진 강화, 산재를 당한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출국 유예,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한 이주노동자 배정 제한 등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을 중심으로 '산재보상대책반'을 구성하고 유족 등의 산재보상 신청이 들어오면 즉시 상담과 안내를 제공할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내·외국인 여부, 고용허가제 포함 비자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근로자에 대해 안전한 작업환경을 확보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며 "근로감독을 통해 근로조건을 보호하고, 법 위반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행·사법적 조처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현재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입국 후 취업교육(16시간)에서 산재 발생 시 보상 신청 절차 등 산재보상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산재 신청을 원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 소속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와 연계해 현장 또는 유선 상담 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난해 말부터는 모든 주한외국공관에 산재 신청 대리권을 부여해 외국인 근로자의 산재 신청을 지원하다.

이와 함께 오는 8월부터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한 사업장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산재를 신청하지 않은 경우에는 모국어로 산재 신청 절차를 안내하기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