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된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갈등과 비애를 처절하게 그린 연작소설집

작가 문순태(文淳太, 1941~ ) 선생은 전라남도 담양 출신으로 1973년 <현대문학> 신인상 모집에 단편 '백제의 미소'가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농촌의 피폐한 삶 속에 녹아 있는 정한(情恨)을 주로 다루어 온 그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단연코 단편 '징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7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1970년대 전라남도 장성군의 수몰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을 필두로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던 시기였다. 당시 수자원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여기저기서 댐 건설이 이루어지면서 물에 잠기는 마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징소리'의 배경이 된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중반, 영산강 인근에는 장성댐이 들어섰는데, 이 댐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주변 마을이 수몰되는 바람에 사람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징소리'는 곧 오랜 세월 대를 이어 모진 풍파를 견디면서 일군 논과 밭, 집과 마을을 얼마 되지 않는 보상금과 맞바꾸어야 했던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한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장소로서의 ‘방울재’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당대의 아픈 상황을 떠올리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이후 작가는 멈추지 않고 다섯 편의 중·단편을 더 써냈다. 이렇게 모인 여섯 편의 연작소설을 담아낸 책이 바로 1980년 8월에 발행된 <징소리>이거니와, ‘징소리’를 소재로 하는 연작이 탄생하게 된 상황을 작가는 이 책 말미에 실린 ‘징소리 연작(連作)을 쓰고 나서’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끝끝내 내 방의 벽에 걸린 징은 울리지 않았다. 얼마 전 시장에서 4만 원이나 주고 산, 전깃불 쓰고 만든, 고향(故鄕)도 역사(歷史)도 모르는 한갓 상품에 불과한 이 가증스런 징은 끝내 민중의 아픔을 모르는가.

1978년 '징소리'의 연작(連作) 첫 번째 작품 <창비(創批) 78 겨울호>을 쓸 무렵, 나는 거리의 엿장수한테서 수몰지(水沒地)로부터 흘러나온, 푸르죽죽한 청태가 낀 진짜 징을 구했었다. 그 징이야말로 전깃불 켜고 주조(鑄造)한 것이 아닌, 벌겋게 달은 시우쇠의 불빛에 쇠망치로 두들겨서 만든 농민들 정한(情恨)의 때가 묻은 것이었다.

방울재라는 수몰지에서 나온, 아직 민중의 숨결이 살아 있는 그 징은, <저녁 징소리>(한국문학(韓國文學) 79․5)를 쓸 무렵 내 고향(故鄕)에서 수년 동안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농악(農樂)을 가르치는 선생한테 넘겨 줘버렸다.

나는 낚시꾼들이 몰려드는 수몰지 장성(長城)댐에 자주 찾아갔으며, 고향(故鄕)을 등지고 흔적도 없이 먼지처럼 도시(都市)의 밑바닥에 깔려버린 실향민(失鄕民)들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우연하게 '저축'을 소재로 쓴 국민학생들의 글짓기 심사를 하다가, 눈물겨운 글 한 토막을 읽게 되었다. 수몰지에서 도회지로 나와 어렵게 살아가는 실향민(失鄕民)의 아이가 고향에서 가지고 나온 징이며 꽹과리 등을 팔아 저금통장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곧 쉽게 중편 '말하는 징소리'(신동아(新東亞) 79․6)의 주인공 허칠복(許七福)을 찾아 낼 수 있었으며, 그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마지막 징소리'(문학사상(文學思想) 79․12)와 중편 '무서운 징소리(한국문학(韓國文學) 80․2), '달빛 아래 징소리'(한국문학(韓國文學) 80․7)로 이을 수 있었다.

<후략>

위의 글을 보면 이 책이 ‘연작장편’을 표방하고 있는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원래 연작소설은 한 편씩 부분적으로 독립된 단편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이어져 있어 유기적 구조를 갖춤으로써 결국에는 장편으로 읽히는 형식을 띠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표제작으로서의 단편 '징소리'는 장편 '징소리'의 도입부인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실마리를 담고 있다.

수문서관 판본 <징소리>의 이모저모

1980년 8월 10일 출판사 수문서관(修文書館)에서 초판이 발행된 <징소리>는 가로 125mm, 세로 210mm 크기의 판형에 세로쓰기 형식으로 인쇄되었으며, 책 광고가 실려 있는 날개를 포함한 무선철 제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앞표지 / 사진. ©김기태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앞표지 / 사진. ©김기태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날개 / 사진. ©김기태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날개 / 사진. ©김기태
먼저 앞표지를 보면 자주색 바탕에 백자(白字)로 위에서부터 “우리가 상실해 온 모든 것을 찾아주는 징소리의 문학! 우리의 그 고향의 소리! 너와 내가 살아 있음을 증거하는 처절한 존재의 소리!”라는 문구가 실려 있고, 그 아래 제목 ‘징소리’가 명조체의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 그 아래 ‘문순태 연작장편’이란 한자(漢字) 문구가 흑자(黑字)로, 맨 아래에 출판사를 나타내는 ‘수문서관 간’이란 글자가 한자(漢字)로 나타나 있다. 앞표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표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판화(版畫)다. 잔뜩 웅크린 채 슬픈 눈망울을 굴리며 징과 징채를 그러안고 있는 인물을 묘사한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다만,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속표지 (왼쪽)와 차례 (오른쪽) / 사진. ©김기태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속표지 (왼쪽)와 차례 (오른쪽) / 사진. ©김기태
앞표지와 면지를 넘기면 별지에 인쇄된 속표지가 나오는데, 흰색 바탕에 바로 그 판화가 새겨져 있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이윽고 본문 속표지에 이어 차례가 나오는데, 연작장편으로서 '징소리', '저녁 징소리', '말하는 징소리', '무서운 징소리', '마지막 징소리', '달빛 아래 징소리'의 순으로 실려 있음을 보여준다.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간기면 / 사진. ©김기태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간기면 / 사진. ©김기태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작가 후기(後記) 성격의 ''징소리' 연작을 쓰고 나서'에 이어 나오는 간기면(刊記面)을 보면 상단에 작가 약력이 기재되어 있고 하단에 출판 관련 서지사항이 나타나 있다. 우선 책값은 2,300원이었으며, 푸른색 종이에 찍힌 도장의 인주 빛깔이 제법 선명한 인지(印紙)가 붙어 있다. 그 아래 저자 이름과 함께 발행인은 ‘정철진(鄭轍鎭)’으로, 발행처는 수문서관(修文書館)으로 표기되어 있다.

간기면에 나와 있는 저자 약력으로 미루어보건대, 창작집으로 <고향으로 가는 바람>과 <흑산도 갈매기> 그리고 장편소설 <걸어서 하늘까지>가 이미 출판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이 책은 작가 문순태의 네 번째 창작집(연작소설 모음이라는 점에서) 또는 장편소설(연작끼리 이어지는 장편이라는 점에서)인 셈이다.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뒤표지 / 사진. ©김기태
문순태 연작장편 『징소리』 (수문서관) 뒤표지 / 사진. ©김기태
그리고 뒤표지에는 “한(恨)의 사상적 계보를 정통(正統)으로 이은 <징소리>, 신들린 무당처럼 문순태(文淳太)가 울리는 징소리를 들으면 현대인(現代人)이 잃어버린 고향을, 인간성(人間性)을, 사랑을 찾겠다는 뼈저린 향수가 우리 모두의 가슴을 깊이 깊이 파고든다.”는 문구 아래 당대 최고 평론가들(이어령, 김윤식, 김병욱, 송재영)의 찬사가 실려 있다. 아울러 표지 앞뒤에 달린 날개를 보면 당시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던 책들의 면면을 짐작할 수 있다.

연작장편 <징소리>가 들려주는 실향과 사랑의 진실

원래 '징소리'는 1978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방울재에 살다가 마을이 수몰되면서 보상금으로 도시살이를 나갔다가 아내가 달아나고 이내 무일푼이 되어 어린 딸아이와 함께 다시 호숫가로 돌아와 수시로 징을 울려 낚시꾼들을 쫓아내는 바람에 마을의 애물단지가 된 ‘허칠복’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마을사람들은 물에 잠겨버린 방울재를 떠나 호숫가에 살면서 낚시꾼과 관광객을 상대로 매운탕 같은 음식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터에 칠복이 나타나 장사를 방해하자 그를 동정하면서도 쫓아낼 궁리에 여념이 없다. 다음과 같은 도입부를 보면 허칠복과 마을사람들의 갈등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방울재 허칠복(許七福)이가 고향을 떠난 지 삼년 만에 미쳐서 돌아와 징을 두들기며 댐을 막은 뒤부터 밀려드는 낚시꾼들을 쫓아냈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징을 두들기는 칠복이의 모습은 나무탈을 쓴 도깨비 같다고들 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고향을 잃은 서러움, 아내를 빼앗긴 원한 때문이라고들 했다.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고향에 여섯살 난 딸아이를 업고 불쑥 바람처럼 나타난 그는, 물에 잠겨버린 지 삼년째가 되는 방울재 뒷동산 각시바위에, 댕돌같이 앉아서는 목이 터져라고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대는가 하면,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려 가며 오손도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중얼거리다가도, 불컥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찔러보고, 창자가 등뼈에 달라붙도록 큰소리로 웃어대고, 느닷없이 징을 두들기며 겅중겅중 도깨비춤을 추었다.

원래 칠복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외가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머슴처럼 장성했는데, 어쩌다가 도시물을 먹은 순덕을 아내로 맞이한다. 하지만 순덕은 결혼하자마자 도시로 나가 살자고 성화를 부리고, 마침내 칠복은 순덕과 함께 도시로 나가 살게 된다. 순덕은 곧바로 식당 주방에 취업하지만, 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칠복은 아내 수입으로 먹고살다가 면목이 없어 도시 인근 농촌에 나가 농사 품을 팔면서 20만 원을 벌어 한참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일부러 아내를 놀라게 해주려고 소리 안 나게 집으로 들어가 불을 켜는 순간, 칠복은 그만 순덕과 식당 주방장이 한몸으로 누워 있는 현장을 발견하게 된다. 눈이 뒤집힌 칠복이가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내 줄행랑을 치고 만다. 순덕의 가출 이후 오갈데가 없어진 칠복은 딸 금순이를 업고 고향사람들이 모여 사는 호숫가로 돌아온다.

원래 징채잡이였던 칠복은 언제나 징을 애지중지하며 잘 때도 징을 놓치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이 힘을 합쳐 징을 빼앗아보기도 하지만 칠복은 살기(殺氣)까지 내뿜으며 징을 지킨다. 마침내 참다못한 마을사람들은 칠복이 부녀를 내쫓기로 하고 억지로 외지행 버스에 태운다. 칠복의 친구인 봉구는 칠복의 주머니에 2천 원을 찔러주며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말한다. 그날 밤, 봉구와 마을사람들의 귀에는 바람소리인지 징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징소리'가 끝나는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사코 가기 싫다는 칠복이 부녀를 억지로 버스에 태워 쫓아보낸 그날밤, 방울재 사람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후두둑후두둑 빗방울이 굵어지고 땅껍질 벗겨가는 소리가 드세어질 무렵, 봉구는 잠결에 아슴푸레하게 들려오는 징소리에 퍼뜩 놀라 일어나 앉았다.

<중략>

이날밤, 팔만이도, 덕칠이도 강촌영감도 다같이 방울재 안통 여기저기서 쉴새없이 들려오는 징소리 때문에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징소리는 점점 더 가깝게, 그리고 때로는 상여소리처럼 슬프게 들렸는데, 그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 방울재 사람들은, 그게 어쩌면 그들한테 쫒겨난 칠복이의 우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을 다 같이 했다. 그 생각과 함께 징소리가 더욱 무서워졌으며 아침을 맞기조차 두려웠다.

이어지는 연작 '저녁 징소리'는 불륜 현장을 남편 칠복이한테 들키는 바람에 도망쳐야 했던 ‘순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음과 같은 도입부를 보면 남편과 딸을 버리고 집을 나와 살아가는 그녀의 심사가 잘 드러나 있다.

끝없이 어두운 바다를 깜박거리며 비추는 등대불처럼, 잠이 오락가락했다. 순덕이는 도시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이 감겼는가 싶으면 대각(大角)의 아가리처럼 귀가 팽팽하게 열려 있었고, 다시 귀가 닫혔는가 싶으면 어느 결엔가 두 눈이 또랑또랑 어둠을 꿰어 혼미한 밤이 계속 되었다.
낮에 보았던 거렁뱅이 부자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들 부자에게서, 그녀가 버린 남편 칠복이와 딸 금순이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었다.
오십이 넘을락말락한 거렁뱅이 남자는, 손자 같기도 한 꼬마 사내아이를 동냥자루처럼 꿰매차고 다녔는데, 그들 부자 모습이 꼭 볏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같았었다. 그들의 뒷모습은 배고픔과 외로움에 찌들어져 조그맣게 보였다.

도입부의 묘사가 곧 복선이었을까. 이 작품의 마지막을 보면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거렁뱅이 부자를 살리려고 자기 체온으로 부자(父子)의 몸을 덥혀주다가 동거남에게 들켜 알몸으로 쫓겨나는 순덕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어지는 연작 '말하는 징소리'에서는 딸 금순이와 도시로 나와 아내 순덕을 찾으려고 애쓰는 칠복의 생활이 그려진다. 특히, 매일 정오만 되면 칠보증권 옥상에 올라가 징을 치는 칠복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이는 도망친 아내를 찾는 소리인 동시에 사람들에게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작가는 이 부분을 수몰민들의 애환과 함께 녹여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 소리는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만큼이나 신비스러워 지상에 있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마음을 싱그럽고 후련하게 씻어주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 모든 시민들은 일손을 멈추고, 여름날 아침 햇살과 함께 피는 남보라색 나팔꽃처럼 귀바퀴를 신선하게 세웠다. 시민들은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곤 했다. 이제 시민들은 날마다 정오만 되면 어김없이 울려퍼지는 그소리를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었다.
그 소리는 예고도 없이 울리는 예비군 비상나팔소리나 시가지를 질주하는 빨간 불자동차의 사이렌 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잊혀진 고향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의 뭉클한 바람이었다. 고향 사람들의 울부짖음이었다. 울부짖음과 함께 이름만 생각나는 고향 사람들의 얼굴이 찢겨진 선전 포스터처럼 희미한 모습으로 머릿속에서 펄럭였다. 비로소 잊어버렸던 고향이 떠올랐다. 일년 내내 금줄에 묶여 있는 마을 어귀의 아름드리 늙은 느티나무며, 느티나무 그늘에 덮여 한여름 삼베 땀등거리만 걸친 어른들의 침대가 되어준 판판한 당산돌, 대낮에도 그 앞을 지나가면 으스스하게 몸이 떨리고 머리끝이 쭈뼛거리는 후미진 아카시아 숲길의 상여집, 안산의 잡목숲 나뭇잎들마저 삐들삐들 시들어가는 더위에도 한 바가지만 퍼마시면 땀띠가 가라앉는 징검다리 건너 비석거리의 각시샘이며, 여름이면 보라색의 초롱빛 엉겅퀴꽃들이 발에 밟히는 제각 아래 귀 달린 큰 구렁이가 산다는 방죽이며가 하나씩 머리에 떠올랐다.

'말하는 징소리'에 이어지는 '무서운 징소리'에서는 ‘맹계장’이라는 인물의 가족사를 통해 고향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시작과 끝은 모두 맹계장의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시작 부분과 끝부분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두 여자는 징소리 때문에 죽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징소리만 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들 모녀는 죽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것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한맺힌 울음소리였다.
한평생을 거의 살아버린 시골 여인들의 매듭진 손끝에서 빚어진, 높고 맑은 가을하늘에서 내리꽂히는 햇살처럼, 부드럽고 윤기나는 명주 실꾸리가 감겼다간 풀리고, 풀렸다가 감기듯하는 징소리가 사람을 죽게 하다니,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불쌍도 해라. 고향을 떠나기가 죽기보다 무섭다고 허드니, 끝내 딸허고 같이 죽었구만잉.”
누구인가 물동이를 이고 서 있던 아낙이 불빛 사이로 모녀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칠복은 눈을 들어 희끄무레한 불빛 속에서 맹계장의 얼굴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와지끈 퍽, 대들보가 내려앉자 마지막 불길이 어둠 속에 수많은 불티를 날리며 하늘로 치솟았다. 칠복의 눈에 그 불길은 그의 고향 방울재를 순식간에 덮어버린 물바다로 보였다.

이어지는 연작 '마지막 징소리'는 “순덕이가 버스에서 내리자 징 징 징 징소리가 들려왔다.”로 시작되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고향 방울재를 다시 찾아오는 순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다음과 같은 마지막 부분을 보면 결국 물 속에 잠긴 고향마을을 찾아가기 위해 호수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여인의 비극이 징소리와 어울려 비장한 여운으로 남는다.

어둠 속 어디에선가 남편이 불쑥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봉구네 매운탕집을 향해 가다 말고 어느덧 자취도 없이 어둠에 묻혀버린 할미산 밑 호수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호수 쪽에서 갑자기 징소리가 들려왔다. 징소리가 들려오자 그녀의 머릿속이 아침 이슬 머금은 흰 나팔꽃처럼 맑아졌다. 순덕은 빠른 걸음으로 호수를 향해 갔다. 징소리는 중모리에서 휘모리로, 휘모리에서 다시 자진모리로 거칠고 빠르게 울려왔다.
어둠보다 더 두껍고 단단한 호수는 소리도 없이 방울재를 통째로 삼켜버린 거대한 괴물처럼 오만하게 떠억 버티고 누워 있었다.
징소리는 호수 속에서 울려왔다. 순덕이는 떡갈나무 가지들을 한움큼 휘어잡고 오도카니 서서 징소리가 울려나오고 있는 검은 호수를 들여다보았다. 겅중거리며 징채를 휘두르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눈물이 크렁한 어머니와 흰 두루마기 자락을 나풀거리며 학춤을 추는 아버지, 호도껍질처럼 쭈글쭈글한 얼굴에 노기를 담은 할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방울재 사람들도 모두 보였다. 남편 칠복이가 두들겨패는 징소리에 맞춰 온통 방울재 사람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순덕이는 갑자기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순덕이가 헤어졌던 방울재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갑자기 징소리가 뚝 멎어버렸다.

고향도 사랑도 이룰 수 없었던 징채잡이의 비극을 담아 울려퍼지는 징소리

문순태의 연작장편 <징소리>에서는 때로는 시원하게, 때로는 소름 끼치도록, 때로는 속삭이듯 수시로 징소리가 울려퍼진다. 물론 그때마다 징채잡이는 ‘허칠복’이다. 그에게 징소리는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의 표현이요, 돌아오지 않는 아내 ‘순덕’을 향한 사랑의 곡조다. 연작장편 <징소리>의 대미를 장식하는 '달빛 아래 징소리'는 그래서 망향가(望鄕歌)로도 읽히고, 사부곡(思婦曲)으로도 읽힌다. 앞의 연작 중·단편 다섯 편을 읽으면서 짐작하기는 했지만, 다음과 같은 마지막 장면은 너무 애처롭다 못해 불쌍한 칠복의 모습 때문에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원래 '징소리'를 글로 읽기 이전에 TV 드라마로 보았던 탓일까. 아마도 고등학생 무렵이었을 게다. (실제로 1981년 1월에 KBS-TV에서 각색하여 ‘TV문학관’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방영한 바 있다.) 그때 주인공 허칠복을 연기했던 배우(김인문)의 처연한 눈빛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호수 둑 위에서 징채를 휘두르며 멀리멀리 징소리를 날려보내던 사내의 공허하면서도 번뜩이던 그 눈빛……. 문순태 선생은 2006년 광주대 문창과 교수직을 끝내고 53년 만에 귀향하여 집필실을 겸해 지역작가 양성을 꾀하는 ‘생오지 문예창작촌’을 설립해서 운영 중이라고 한다. 노작가의 무운과 건강을 빈다.
[위] KBS 'TV문학관' 6화 징소리 (1981)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옛날티비 : KBS Archive' [아래] 소설가 문순태
[위] KBS 'TV문학관' 6화 징소리 (1981)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옛날티비 : KBS Archive' [아래] 소설가 문순태
손판도는 문득 갈색 점무늬 새끼 물뱀이 죽은 여자의 화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체 가까이에 보트를 들이댔다.
그는 죽은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말고 소스라쳐 고개를 둑 쪽으로 돌려버렸다. 칠복이의 아내였다.
“죽었는가?”
밤새 내 아내를 기다리던 칠복이가 둑 위에서 큰소리로 물었다.
손판도가 대꾸를 않고 둑만 바라보고 있자
“아는 사람이여? 혹시 방울재 사람 아닌가?”
하고 다시 물었다.
손판도는 말없이 천천히 물 속으로 들어가서 빳빳하게 물 위에 누워 있는 칠복이의 아내를 두 팔로 떠받쳐 조심스럽게 보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두 발을 툼벙거리며 보트를 밀고 백암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흙탕물의 물살을 거슬러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판도 이 사람아, 둑 쪽으로 나오지 않고 어디로 가는가?”
그가 죽은 칠복이의 아내를 보트에 싣고 상류로 올라가자, 둑 위에서 손판도의 행동을 지켜보고 서 있던 칠복이가 화난 목소리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칠복이…… 내가 올 때까지 꼼짝 말고 땜에서 기다리고 있으소잉. 그러고 엊저녁에 나한테 징을 쳐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지금 쳐줄란가?”
보트를 밀고 상류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손판도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가 둑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 갑자기 징소리가 방울재 하늘을 뒤흔들었다.
칠복이의 징소리는 멀고먼 불귀의 북망산으로 가는 상여소리처럼 슬프게 울었다.
해가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하늘과 땅은 다시 밝아왔다.

해당화야, 해당화야 명사십리 해당화야
네 꽃 진다 설어 마라
명년 삼월 다시 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우리 인생 한번 가면
어찌 그리 꽃과 같이
다시 돋아날 줄 모르느냐

손판도는 보트를 밀고 칠복이의 모습이 콩알만 해질 때까지 댐의 상류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가 어렸을 때 손양중이한테서 배웠던 화초가 한 대목을 자꾸자꾸 되풀이해서 흥얼거렸다.

김기태 '처음책방'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