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의 무리요광장에서 26일(현지시간) 쿠데타 군이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이날 후안 호세 수니가 전 합참의장이 이끄는 군부대는 장갑차를 동원해 대통령궁에 진입했다가 세 시간 만에 물러났다.  /AFP연합뉴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의 무리요광장에서 26일(현지시간) 쿠데타 군이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이날 후안 호세 수니가 전 합참의장이 이끄는 군부대는 장갑차를 동원해 대통령궁에 진입했다가 세 시간 만에 물러났다. /AFP연합뉴스
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수시간 만에 자진 철수했다.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대통령을 끌어내리지 못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현직 대통령이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26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후안 호세 수니가 전 볼리비아 합참의장이 이끄는 군부대는 이날 오후 3시께 전차와 장갑차를 동원해 수도 라파스의 무리요광장을 점거하고 대통령궁에 진입했다가 세 시간여 만에 물러났다. 쿠데타군은 무력으로 대통령궁에 진입한 뒤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을 체포·구금하지 않고 대화만 나눴다. 아르세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불복종을 용납할 수 없으니 철군하라”고 요구했고 수니가 전 의장은 일부 정치범 석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시간으로 쿠데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법원, 경찰, 소방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은 잇달아 군을 성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무리요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군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브라질 등 중남미 주변국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일제히 무력 행위를 비판했다. 볼리비아 군은 이날 오후 6시께 철군했다. 놀란 시민들은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등 곳곳에서 큰 혼란이 빚어졌고, 주볼리비아 한국대사관도 교민과 여행객의 도심 접근 자제를 요청했다.

쿠데타 시도의 원인을 두고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좌파의 아이콘’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과 그를 계승한 아르세 대통령의 실정에 따른 경제난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006년부터 2019년까지 장기 집권한 뒤 부정선거 의혹으로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 재출마할 계획이다. 수니가 전 의장은 그에게 강한 반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광장을 점거한 뒤 “수년 동안 엘리트 집단이 국가를 장악하고 조국을 붕괴시켰다”며 “군이 민주주의 체제를 재구성해 진정한 국민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건의 배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수니가 전 의장이 스스로 병력을 철수시키고 곧바로 체포된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체포되기 전 기자들에게 “아르세 대통령이 정치적 움직임으로 궁전을 습격하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수니가 전 의장은 “대통령이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인기를 높이기 위해선 뭔가 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마리아 넬라 프라다 테하다 대통령부 장관은 이런 자작극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거짓이고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