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일본 주식시장 부활의 교훈
최근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일본의 사례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필자가 원장으로 있는 자본시장연구원도 관련 분석을 하고 있다. 일본 주식시장이 30여 년간의 부진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살펴볼수록 우리와는 다른 부분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일본 주가는 최근 들어 오른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해왔다. 배당 재투자를 고려한 총수익지수를 기준으로 2012년 이후 누적수익률을 비교해보면 일본은 297%로 미국의 271%, 대만의 246%보다 높다. 반면 한국은 중국(71%)보다 낮은 61%에 그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23년 초부터 시작된 도쿄거래소의 상장기업 기업가치 제고 요구가 주목받고 있으나 이미 2013년부터 추진된 아베노믹스가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경제산업성 의뢰로 이토 구니오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업 경쟁력 제고 및 인센티브 검토’라는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그 핵심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다. 이는 현재까지 추진되는 주식시장 개혁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토 보고서의 정책 제언을 실행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금융청은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하고 곧이어 도쿄거래소와 공동으로 2015년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발표한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이후 개정을 거듭하며 도쿄거래소와 일본의 국민연금이라 할 수 있는 GPIF를 통해 주식시장 개혁을 실행하는 근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민간기관인 기업지배구조원(현 ESG기준원)이 두 규준을 제정하고 그 활용이 미진한 것과는 크게 대조된다.

아베노믹스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자본의 효율성으로서 기업들은 자기자본이익률(ROE), 투하자본이익률(ROIC)로 측정된 투자수익률이 자본비용을 웃도는지를 검토하고 이에 미달할 경우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수익성과 기업가치 제고에 나설 것을 요구받는다. 이를 적극적으로 독려한 기관이 GPIF다. 한국 국민연금은 보유 국내 주식 중 절반 정도를 위탁 운용하고 있지만 GPIF는 전액 위탁 운용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운용사의 선정과 평가 기준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활용한다.

또 하나의 핵심 축은 도쿄거래소다. 2022년 상반기 구조 개편을 통해 프라임, 스탠더드, 그로스 등 세 개 시장으로 단순하면서 상위 시장인 지배구조 모범규준 이행을 강하게 요구한다. 상위 시장인 프라임 시장의 경우 독립사외이사가 이사회의 3분의 1 이상을 유지하고 이들의 책임을 강화했으며 이사회 의장을 독립사외이사가 맡도록 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유동주식 비율이다. 상장 유지를 위해서는 다른 기업들과의 상호주식보유, 대주주 지분 등을 제외한 순수 유동주식 비율이 35% 이상 유지하도록 했다. 이는 주식시장의 유동성을 늘리고 일반 주주의 투자 비중 증가를 통해 기업들이 기업가치 제고를 실행하는 추진 동력이 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개혁이 스튜어드십 코드 및 지배구조 모범규준과 같은 연성규범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상장사의 독립사외이사 의무화는 2019년 회사법 개정에 처음 포함되는데 이미 이전에 기업들은 거래소 상장요건을 맞추기 위해 이를 실행해왔다.

한국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주주 행동주의다. 일본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우리보다 활발히 이뤄졌고 라이브도어, 불독소스 등의 사례를 거치면서 경영권 방어에 대한 판례가 확립돼 왔다. 이미 일본은 다수의 운용사가 주주 행동주의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특히 해외 운용사 유치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3년부터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일본주간을 설정하고 총리가 나서서 직접 해외 기관투자가들을 만나고 일본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일본 주식시장의 부활은 10여 년에 걸친 정부와 민간의 꾸준한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와 기업, 금융투자업계 모두의 일관성 있는 노력이 기울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