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부담하는 46개 인허가 수수료와 교육비를 일제히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소상공인·자영업자 경영 부담 완화’의 일환이다.
中企 수수료 깎아주려다…정부 재정부담 커질 우려
27일 법제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법령 정비안을 28일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시행령’ 등 5개 시행령과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등 10개 시행규칙에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수수료 등을 감면할 수 있다’는 내용의 근거 조항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이들 15개 법령은 어린이·전기 제품 등 안전인증 수수료, 의료기기 제조·수입업 허가 수수료 등 총 46개의 수수료 및 교육비 부과 근거를 담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각 소관 부처는 법령을 정비한 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하반기부터 수수료 등을 감면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이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진 점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최대 수천만원 안전 인증부터 각종 장비검사 수수료 등 감면
稅공제·비과세 이어 특혜 논란…대규모 감면 땐 재정부담 가중

정부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수수료 부담 완화에 나선 것은 고물가·고금리로 이들의 경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재정 여건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각종 세액공제와 비과세 혜택에 이어 수수료 감면까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과도한 혜택이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 부담 줄어드나

27일 법제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46개 수수료를 감면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하는 법령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인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부과하는 수수료가 11개(약 23.9%)로 가장 많다. 전기·생활용품 제조자와 수입 판매자는 반드시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등 정부 지정 기관에서 안전인증을 받아야 한다. 오디오, 조명기기, 전선, 프린터 등 사실상 모든 전기 제품과 생활 제품이 인증 대상이다.

안전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각종 수수료가 붙는다. 안전인증서 발급 수수료(5만원), 공장심사 수수료(20만원) 등 금액이 정해진 항목도 있고, 인건비·재료비에 따라 산정되는 제품시험 수수료도 있다.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안전인증을 받는 데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 제조기업은 평균 2.9개의 인증을 보유하고 있고, 약 37.7%가 연간 100만~500만원의 인증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런 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관련 법령에 감면 조항을 추가할 계획이다. 예컨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시행령의 수수료 관련 조항(17조)에 ‘수수료 납부 대상자가 소상공인 또는 중소기업자인 경우 경제적 부담 완화 또는 경영 안정 지원 등을 위해 수수료를 감면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이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수수료가 감면 대상에 포함됐다. 유모차, 학용품, 장난감 등 어린이 제품의 안전인증 관련 수수료, 제품과 서비스가 산업표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인증·검사하는 수수료 등이 대표적이다. 사격장 설치 허가 수수료, 의료기 제조·수입업 허가 수수료도 감면 대상에 올랐다. 지진 관측 장비 검정 수수료, 항공 보안 장비 성능 검사 수수료, 기업 재해 경감 전문인력 육성 교육 경비 또한 감면 대상에 들어갔다. 정부는 이 같은 법령 개정안을 오는 8월 7일까지 입법 예고하고, 8월 국무회의에 상정할 계획이다.

○재정 부담이 관건

법제처는 법령이 정비되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감면이 시행되면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제처가 이번 법령 정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관 부처들은 애초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정 부담이 작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법제처는 지난 3월까지 수수료 부담 완화와 관련한 법령을 전수 조사해 과제를 발굴했다. 법제처는 애초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수수료 감면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법령 개정을 추진했지만, 각 부처 반대에 가로막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예산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감면할 수 있다’는 포괄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최종 과제를 확정했다.

박상용/강경민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