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붉은 입술을 깨물었으니, 묻지 마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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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꽃
하피즈
장미는 어떻게 심장을 열어
자신의 모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주었을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빛의 격려 때문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언제까지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
------------------------------ 얼마 전 소개한 이란 시인 루미에 이어 이번에는 하피즈의 시를 들려드립니다. 14세기에 태어난 하피즈는 2행으로 된 연작 형식의 사랑시 ‘가잘’을 워낙 잘 써서 ‘이란의 시성(詩聖)’으로 칭송받는 시인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석탄 사업 실패로 막대한 부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지요. 어릴 때 아버지가 외우던 코란을 귀동냥으로만 듣고 모두 암기했는데, 그의 필명 하피즈가 ‘코란을 모두 외운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주로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대부분이 연인이나 신에게 바치는 연시 형식을 띠고 있지요. 신앙을 사랑에 빗대어 표현한 게 많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내용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국민 시인’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그의 시는 서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괴테가 그의 독일어 번역판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아 <서동시집(西東詩集)>을 펴낼 정도였지요. 영국 시인 바이런과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 독일 철학자 니체도 그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니체는 ‘하피즈에게’라는 시까지 썼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 ‘모두 다 꽃’은 우선 장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기 심장을 열고 자신의 모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주는 장미꽃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어여쁩니다. 시인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런 장미의 아름다움이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빛의 격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격려(encouragement)라는 말이 라틴어 ‘심장’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자신의 심장을 내어준다는 것, 뜨거운 심장을 주듯 마음의 뿌리를 덥혀 준다는 것, 그것을 영혼의 거울로 비춰주는 것이 바로 격려이지요.
그의 고향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900㎞ 떨어진 시라즈입니다. 해발 1500m에 세워진 고대 실크로드의 요충지이지요. 이곳에 그의 영묘가 있습니다. 날마다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지요. 사람들은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 속을 거닐며, 무덤과 벽면에 새겨진 시를 어루만지며 기도하듯 그의 시를 암송합니다.
이 도시는 장미의 원산지로 유명합니다. 약 2000년 전 이곳에서 장미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라즈는 ‘장미의 도시’로 불립니다. 이곳은 또 ‘시의 도시’입니다. 하피즈뿐 아니라 이란의 4대 시인으로 꼽히는 사디의 고향이지요. 그의 무덤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미’와 ‘시’의 두 가지 덕목을 다 아우르는 것이 곧 ‘격려’의 빛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그의 또 다른 가잘(270번) ‘묻지 마라’를 한 편 더 감상해 봅니다.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니, 묻지 마라
이별의 독을 맛보았으니, 묻지 마라
세상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내 연인을 선택했으니, 묻지 마라
그렇게 그녀 문가의 흙을 보고 싶어
내 눈물이 흐르니, 묻지 마라
어제 그녀의 입이 내 귀에 속삭인
얘기를 들었으니, 묻지 마라
그대는 왜 나를 향해 입술을 깨물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 그대 붉은 입술을 깨물었으니, 더 이상 묻지 마라
내 가난한 오두막에서 당신 없이
고통을 겪었으니, 묻지 마라
사랑 찾는 여정에서 하피즈마냥 나 홀로
머물 곳에 이르렀나니, 묻지 마라.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하피즈
장미는 어떻게 심장을 열어
자신의 모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주었을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빛의 격려 때문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언제까지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
------------------------------ 얼마 전 소개한 이란 시인 루미에 이어 이번에는 하피즈의 시를 들려드립니다. 14세기에 태어난 하피즈는 2행으로 된 연작 형식의 사랑시 ‘가잘’을 워낙 잘 써서 ‘이란의 시성(詩聖)’으로 칭송받는 시인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석탄 사업 실패로 막대한 부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지요. 어릴 때 아버지가 외우던 코란을 귀동냥으로만 듣고 모두 암기했는데, 그의 필명 하피즈가 ‘코란을 모두 외운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주로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대부분이 연인이나 신에게 바치는 연시 형식을 띠고 있지요. 신앙을 사랑에 빗대어 표현한 게 많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내용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국민 시인’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그의 시는 서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괴테가 그의 독일어 번역판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아 <서동시집(西東詩集)>을 펴낼 정도였지요. 영국 시인 바이런과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 독일 철학자 니체도 그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니체는 ‘하피즈에게’라는 시까지 썼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 ‘모두 다 꽃’은 우선 장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기 심장을 열고 자신의 모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주는 장미꽃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어여쁩니다. 시인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런 장미의 아름다움이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빛의 격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격려(encouragement)라는 말이 라틴어 ‘심장’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자신의 심장을 내어준다는 것, 뜨거운 심장을 주듯 마음의 뿌리를 덥혀 준다는 것, 그것을 영혼의 거울로 비춰주는 것이 바로 격려이지요.
그의 고향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900㎞ 떨어진 시라즈입니다. 해발 1500m에 세워진 고대 실크로드의 요충지이지요. 이곳에 그의 영묘가 있습니다. 날마다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지요. 사람들은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 속을 거닐며, 무덤과 벽면에 새겨진 시를 어루만지며 기도하듯 그의 시를 암송합니다.
이 도시는 장미의 원산지로 유명합니다. 약 2000년 전 이곳에서 장미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라즈는 ‘장미의 도시’로 불립니다. 이곳은 또 ‘시의 도시’입니다. 하피즈뿐 아니라 이란의 4대 시인으로 꼽히는 사디의 고향이지요. 그의 무덤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미’와 ‘시’의 두 가지 덕목을 다 아우르는 것이 곧 ‘격려’의 빛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그의 또 다른 가잘(270번) ‘묻지 마라’를 한 편 더 감상해 봅니다.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니, 묻지 마라
이별의 독을 맛보았으니, 묻지 마라
세상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내 연인을 선택했으니, 묻지 마라
그렇게 그녀 문가의 흙을 보고 싶어
내 눈물이 흐르니, 묻지 마라
어제 그녀의 입이 내 귀에 속삭인
얘기를 들었으니, 묻지 마라
그대는 왜 나를 향해 입술을 깨물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 그대 붉은 입술을 깨물었으니, 더 이상 묻지 마라
내 가난한 오두막에서 당신 없이
고통을 겪었으니, 묻지 마라
사랑 찾는 여정에서 하피즈마냥 나 홀로
머물 곳에 이르렀나니, 묻지 마라.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