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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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길어져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수난을 겪고 있다. 태국에선 총리가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가 하면 미국 의회에서는 중앙은행을 폐지하는 법안이 나왔다. 브라질 중앙은행(BCB) 총재는 여당이 제기한 소송에 휘말렸다. 학계에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야말로 “인플레이션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 2024년 6월 21일 자 한국경제신문 -

고(高)물가가 이어지고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세계 곳곳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도전받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현대 국가는 대부분 중앙은행에 정부의 간섭 없이 통화정책의 핵심 운용 수단인 기준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독립적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중앙은행 폐지 법안이 나올 정도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도전받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요.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을 때 펀치볼을 치우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1951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낸 윌리엄 마틴의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펀치볼은 과일 칵테일인 펀치를 담는 그릇으로, 미국 파티에선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입니다. 펀치볼을 치운다는 것은 중앙은행이 경기가 과열되기 전 금리를 올려 시장의 과열을 막는다는 의미입니다. 경기가 한창 좋은데 그릇을 치우는 것을 좋아할 정부는 많지 않겠지요.

중앙은행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은 ‘은행의 은행’이라 불리지요. 통상적으로 중앙은행이 이자율(기준금리)을 변화시켜 통화량(유동성)을 조절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통화정책은 통화량을 조절해 이자율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중앙은행은 채권시장에서 채권을 매입·매각하거나, 시중은행에 대출할 때 적용하는 금리인 재할인율 등을 조정해 시중의 통화량을 변화시킵니다. 이자율은 시장의 자금 수요와 자금 공급에 의해 결정되지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는 것은 통화 공급을 줄인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기준금리 인하는 통화 공급 확대를 의미하겠지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연 ‘물가’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처럼 통화량과 물가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경제 전체 생산량이 고정된 상태에서 통화 공급만 늘어나면 물가는 상승한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분석입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정부는 금리를 낮춤으로써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침체하고 있는데도 물가가 상승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정부의 압박에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어떻게 될까요. 시중의 통화량이 늘어나며 일시적으로 경기가 좋아질 수 있지만 물가가 폭등하고, 소비가 위축되며 경기가 다시 침체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관여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무시했다 큰 대가를 치른 대표적 사례입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코로나19발 인플레이션이 오기 전인 2019년에도 이미 10~20%를 오가던 상황에서 ‘고금리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주장하며 통화 당국에 금리 인하를 압박했습니다. 자신의 기조를 반대해온 중앙은행장을 해임하며 2019년 6월 24%이던 기준금리를 이듬해 5월까지 8.25%까지 낮췄지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튀르키예의 물가상승률은 2022년 10월 85.5%까지 뛰었습니다. 많은 국가가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있는 지금도 튀르키예는 지난 5월 기준 75.5%(전년 동월 대비)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지요. 물가상승으로 리라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튀르키예는 환율 보전에만 지난해 250억 달러를 썼습니다.

[수능에 나오는 경제·금융] "파티가 무르익을 때 펀치볼을 치우는 것"
최근 한국에서도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을 위해 작년 1월 이후 3.5%를 유지하고 있는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섣부른 통화완화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 비용은 훨씬 클 것”이라며 성급한 금리 인하를 경계했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만큼 정부와의 공조가 중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감내하면서도 경기를 회복시켜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요.

황정환 기자

NIE 포인트

1.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자.

2.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한 이유를 공부해보자.

3.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