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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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약을 먹으면 살이 빠지는 비결은 무엇일까.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비만약을 투여 받은 사람들이 포만감을 느끼는 이유를 찾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제안했다. 일명 '치킨게임'이다. 참가자들 중 일부에게만 비만약(삭센다)을 투여한 뒤 치킨을 제공한 뒤 이들이 느끼는 포만감의 정도를 수치화하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비만약을 투여 받은 참가자들은 치킨을 보거나 냄새만 맡아도 마치 치킨을 먹은 것처럼 포만감 지수가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비만약을 먹은 참가자들은 치킨을 상대적으로 적게 먹었고 이는 체중 감소로 이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약의 인기가 사그라들 줄 모른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는 지난해 단일품목으로만 매출 6조원을 달성했다. 전 세계 비만약 시장은 2030년까지 약 13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약물을 투여 받은 참가자들이 치킨을 두고 단계 별로 포만감을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박준석 제공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약물을 투여 받은 참가자들이 치킨을 두고 단계 별로 포만감을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박준석 제공
높은 관심에 비해 비만약이 포만감을 유발하는 원리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비만약이 당초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것에서 원인을 유추할 수 있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약물은 처음에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 받았지만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되며 대상 질환을 비만으로까지 넓혔다. 오랜 기간 당뇨병 환자들에게 투여되며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이었기에 세부 기작을 일일이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GLP-1이 직접적으로 포만감을 유발하는 이유를 찾아낸 최 교수의 성과가 화제를 모은 이유다. 연구팀은 GLP-1이 뇌의 등쪽 안쪽 시상하부(DMH)를 자극해 포만감을 느끼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을 동물실험과 임상에서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오랜 기간 동안 비만·당뇨 석학들 사이에서는 GLP-1 약물의 작용이 포만감으로 연결되는 핵심 부위로 '시상하부'와 '뇌 뿌리'가 거론돼왔는데 이번 연구에서 시상하부가 주요했다는 점이 분명해진 셈이다. 연구진의 성과는 27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됐다.

특히 연구진은 GLP-1이 뇌의 등쪽 안쪽 시상하부를 자극하면 즉시 식욕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는 반응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해당 신경을 활성화시키면 음식을 보기만 하거나 냄새만 맡아도 배부름을 느낀다는 사실을 쥐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이는 앞서 진행한 치킨게임의 결론과도 일치한다.

최 교수는 "시상하부는 포만감에, 뇌 뿌리는 메스꺼움, 구토 등의 작용에 관여한다"며 "GLP-1 약물의 수용체 전달방식의 차이를 찾아 조절하면 기존 약물보다 더 부작용이 없는 비만약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GLP-1 계열 약물은 기존 비만약에 비해 부작용이 적지만 메스꺼움 및 구토 등 위장장애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비만·당뇨약을 개발해 온 노보노디스크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최 교수는 "노보노디스크는 오랫동안 식욕 조절에 시상하부가 관여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명확히 기전을 밝힌 논문은 없었고 대부분 동물실험 결과만 있었다"며 "동물실험과 임상을 함께 진행한 중개연구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좋은 학술지에 게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후속 연구를 통해 체내에서 식욕이 조절되는 과정을 통합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그는 "후각, 시각 중추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기전을 확인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에서 10년 넘게 그렐린, GLP-1 등 식욕 조절 호르몬을 연구해 온 해당 분야 석학이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약물을 투여한 것과 유사하도록 신경을 자극하자 쥐의 음식 섭취량이 줄었다(오른쪽). 김규식 제공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약물을 투여한 것과 유사하도록 신경을 자극하자 쥐의 음식 섭취량이 줄었다(오른쪽). 김규식 제공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