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 잔을 받으시오(권주가·勸酒歌)"

객석을 향해 무용수들이 술을 권한다.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27일 개막한 국립무용단의 <신선>은 술 취해 노니는 신선놀음을 무용으로 표현했다. 전통무의 요소에 현대무용의 감각을 입혀 틀을 깨는 요소가 공연 내내 이어졌다. 현대무용가 집단 '고블린파티'와 국립무용단이 안무를 구성했고, 2022년 초연했던 작품을 조금 더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각색했다고 한다.
왁자지껄 술 권하는 춤판… "한잔 드시라"는 전통무용수들
일명 개다리 소반으로 알려진 술상은 이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소반이 위험천만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는가 하면, 사물놀이를 연상케 하는 타악기로 변신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채춤의 마지막 장면 '꽃봉오리 춤'도 재현되는데 펼쳐진 무용수들이 부채 대신 술상을 들어 원을 만들고 표현해 재미를 줬다. 무용수들이 점차 취해가는 가운데 환상을 보고, 붕 뜬 기분이 돼 발걸음을 옮길 때 그 밑에도 개다리 소반 징검다리가 있었다. "장르가 다른 무용이 만나 새로운 선을 만들었다"는 <신선>의 중의적인 의미가 익살스럽게 와닿는 지점이었다.
왁자지껄 술 권하는 춤판… "한잔 드시라"는 전통무용수들
인간의 소리를 최대한 배제하는 여느 무용 무대와는 다르게 <신선>은 내레이션도 적극 활용했다. 권주가가 여러 차례 흘러나오는 가운데 무용수들은 마이크를 잡고 설명을 하며 장면, 장면을 매개했다. 다만 이 내레이션이 현대의 서울말로 표현된지라 조금 밋밋하게 들렸다. 판소리나 창의 기법으로 다뤄졌다면, 무용 공연에서 언어가 주는 이질감을 조금 줄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위트있는 연출과 음향은 무대의 숨은 공신이었다. 무용수들이 술을 마시고 물을 마실 때 무대 배경은 폭포수로 변한다. 폭포 주변의 새소리 등 갖가지 자연의 사운드가 어우러졌고, 때맞춰 시원한 바람이 무대를 타고 객석에 전달됐다. 후반부 숙취에 무너져가는 무용수들의 모습에 집중하다보니, 권주가의 "받으시오"라는 구절이 어느새 인생의 모든 역경과 고난도 그저 받아두라는 잠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전통무용에서 막연하게 연상되던 떨구는 동작, 느린 템포 등은 이 무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왁자지껄한 구성 덕분에 오히려 무용수들은 무대 위를 날아다니고 굴렀다. <신선>을 통해 전통무용의 정수를 맛보긴 어려웠지만, 대중성을 노린 참신한 기획과 실험 정신에는 박수를 보낼만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외국 관객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무대에 열띤 호응을 보냈다. 공연 시간은 50분. 29일까지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