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피아노로 오케스트라 리드…스승 재기 도운 곡 위안 삼아 공연

'스승' 라흐마니노프 재현한 플레트뇨프…피아노협주곡 2번 연주
작은 소리로 시작해 큰 울림으로 마무리했다.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뇨프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공연 1부가 끝나자 객석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플레트뇨프는 1부에서 일본 지휘자 다카세키 겐이 이끄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연주했다.

원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관현악 연주에 힘을 더 준 곡이긴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플레트뇨프의 연주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객석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유난히 고개를 갸우뚱하는 관객이 많았다.

'스승' 라흐마니노프 재현한 플레트뇨프…피아노협주곡 2번 연주
이 같은 우려는 2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가 시작되자 말끔히 해소됐다.

플레트뇨프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교회 종소리를 묘사한 피아노 독주로 연주를 시작하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1부 공연을 관현악기에 맡긴 플레트뇨프는 2부에선 작정한 듯 오케스트라를 리드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물론 지휘자마저 플레트뇨프의 손가락 지휘에 맞춰 연주하는 듯 보였다.

피아노 기교가 두드러지는 1악장은 물론 플루트와 클라리넷 위주의 2악장에서도 플레트뇨프의 피아노 소리는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면서도 조화를 이뤄냈다.

장쾌한 C장조 으뜸화음으로 마지막 악장이 마무리되자 1부의 의구심을 완벽하게 떨쳐낸 관객들이 기립 박수로 찬사를 보냈다.

5분간 이어진 박수에 플레트뇨프는 '차이콥스키 야상곡 4번'을 선사하고 이날 공연을 마무리했다.

'스승' 라흐마니노프 재현한 플레트뇨프…피아노협주곡 2번 연주
이번 공연은 연주 외적으로도 클래식 팬들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1943년 라흐마니노프가 별세하고 14년 뒤인 1957년에 태어난 플레트뇨프는 자신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음악가로 주저 없이 라흐마니노프를 꼽는다.

같은 러시아 출신인 라흐마니노프와 플레트뇨프는 비슷한 삶의 궤적을 보인다.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조국을 떠나 평생을 미국에서 살다 사망했다.

플레트뇨프 또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일 발발한 뒤 러시아를 떠나 스위스에서 거주하고 있다.

플레트뇨프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이번 공연의 메인 곡으로 삼은 것에도 많은 의미가 부여된다.

1897년 초연한 '교향곡 1번'이 관객과 평단의 혹독한 평가를 받고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부침을 겪던 라흐마니노프는 1901년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다.

복잡한 국내 정세에 휩쓸려 부침을 겪는 플레트뇨프에겐 그의 정신적 스승인 라흐마니노프의 재기를 도운 곡이 나름 위안거리인 셈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의 절반을 마친 플레트뇨프는 28일 같은 장소에서 피아노 협주곡 3·4번을 마저 연주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