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미국 텍사스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고만고만한 직장을 전전하던 짐 롤러는 서른살 때인 1982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 이직했다. 스파이 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정보원을 발굴하고 포섭하는 일을 맡았지만 성과를 못 내고 허우적대기만 했다. 그러다 휴가차 유럽을 방문한 야스민을 만났다. 어느 중동 국가 외무부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이었다.

롤러는 자신을 석유 투자자라고 소개하며 접근했다. 야스민이 권력을 잡은 과격한 종교주의자들을 싫어한다고 하자 롤러는 자기 회사에서 시간제 컨설턴트를 찾는다며 슬쩍 떠봤다. 외무부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야스민과 헤어진 롤러는 상사에게 달려가 “드디어 첫 번째 정보원을 포섭했다”고 보고했다. 상사는 “축하한다”며 “이제 자네 정체를 밝히라”고 했다. CIA에 협력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 만큼 정보원을 속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대화의 힘>은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대화 기술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지만 이 책은 좀 특별하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언론인이며 베스트셀러 <습관의 힘>으로 유명한 찰스 두히그가 썼다. 8년 만의 신작이다. 책에 나온 사례들은 그가 직접 만나 들은 이야기다. 영화 같은 이야기와 각종 연구를 적절히 결합해 유익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책을 만들어냈다.
CIA 최고의 정보원 포섭가는 '서로 연결돼 있다'는 확신을 줬다 [서평]
그가 책을 쓴 것은 개인적인 고충이 계기가 됐다. 두히그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땄다. 뉴욕타임스를 거쳐 뉴요커에 글을 쓰고 있다. 그런 자신도 소통의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고 털어놓는다. 몇 년 전 어떤 프로젝트의 관리 업무를 맡게 됐는데,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른 동료들을 조율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가 틀어지곤 했다. “왜 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그들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 힘들까?” 그는 누구나 할법한 질문은 자신에게 던졌다.

'호흡이 잘 맞다'. 말이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 흔히 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사람들 뇌의 전기적 활동을 살펴보니 실제로 그랬다. ‘신경 동조’라고 한다.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영상을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줬다. 이해한 바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뇌파 모양도 제각기 달랐다. 서로 의견을 나누게 한 뒤 다시 영상을 보여줬다. 뇌파의 동기화가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동기화가 유난히 강한 그룹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주장이 강한 리더가 강한 동기화를 이끈다고 가설을 세웠다. 사실이 아니었다. 동기화를 강하게 끌어낸 리더는 말이 적었다. 입을 열더라도 대개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반복해서 말하고 자기가 혼동했던 부분을 빠르게 인정하며 자신을 농담 소재로 삼았다. 구성원을 격려하고 다른 이의 농담에 잘 웃었다. 특별히 말이 많거나 화술이 뛰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야스민을 CIA 정보원으로 포섭하려던 롤러도 그랬다. 그는 처음에 좌절했다. 많은 돈을 약속하고 다양한 혜택을 제시해도 야스민은 싫다고만 했다. 그러다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CIA 요원인지, 얼마나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질러왔는지 말했다. 어느 순간 야스민이 말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나중에 생각을 바꾼 이유를 물었을 때 야스민은 “그와 함께라면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롤러는 2005년 은퇴할 때까지 CIA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보원 포섭가로 활약했다.

저자가 말하는 대화의 핵심은 ‘연결’이다. 겉도는 대화가 아닌 상대와 연결됐다는 느낌을 주는 대화여야 한다. 이를 위한 첫번째 규칙은 ‘어떤 유형의 대화를 나눌 것인지’ 먼저 정하는 것이다. 의사 결정을 위한 대화인지, 감정을 나누는 대화인지,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대화인지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부터 배우자와의 대화가 다툼으로 번지는 순간이 오면 이렇게 슬쩍 물어보자. ‘지금 당신은 기분을 말하고 싶어? 아니면 우리가 함께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거야?’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 시간에 대화를 나누는 목적이 무엇인지 모를 때 고성이 오가곤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대화의 기술과 사례를 담았다. 다 아는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저자의 능수능란한 글솜씨 덕분인지 그 다 아는 얘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