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빗물받이 / 사진=성진우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빗물받이 / 사진=성진우 기자
"특히 담배꽁초가 문제죠. 큰 비가 오면 뭉친 담뱃재가 무슨 밀가루 반죽처럼 된다니까요."

28일 오전 9시께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주민센터 청소 용역 박모(56) 씨는 청소를 위해 빗물받이 판을 들어내며 이같이 말했다.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나뭇잎,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한 가득이었다. 박씨는 뻘처럼 한 데 섞인 쓰레기를 연신 건져냈다. 한 달에 최소 한 번정도 이 거리의 빗물받이 안을 청소한다는 그는 "그나마 여기는 좀 나은 편"이라며 "먹자골목 안쪽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 빗물받이에서 담배꽁초가 수백개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음 주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서울 내 상습 침수 지역의 일부 빗물받이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거리의 쓰레기통으로 쓰이는 것은 물론, 아예 적재물로 빗물받이를 막아놓기도 해 집중호우 시 침수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서울 강남·신림동 '빗물받이' 직접 확인해보니..."모두의 쓰레기통?"

빗물받이는 거리로 유입되는 빗물을 모아 하수관로로 유입시키는 배수 시설이다. 도로 지하에 있는 배수구와 연결돼 거리가 물에 차지 않도록 빠르게 배수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서울 시내 주요 거리에는 55만7000여개의 빗물받이가 설치돼있다.

만약 빗물받이가 막혀 하수가 역류할 경우, 물이 충분히 빠지지 못해 침수 피해를 키울 수 있다. 지난 2022년 8월 서울 강남 지역에 시간당 141mm 폭우가 쏟아져 2호선 강남역과 역삼역 일대 지역이 물에 잠겼을 때도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빗물받이가 지목되기도 했다.

이후 서울시는 상습 침수지역 6개소에 빗물 저류 배수시설 건설과 함께 기존 하수관리 정비를 약속했다. 지난해부턴 강남구, 동작구 등 11개 자치구에 빗물받이 전담 관리자 120명을 배치해 운영 중이다. 이 중 강남, 서초, 관악구 빗물받이 300곳엔 노란색 테이프로 경고성 금지 표시도 넣었다. 강남구청도 치수과 내에 빗물받이 관리 등 업무를 맡는 장마 대책 관련 특별반을 신설했다.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빗물받이 내부를 청소하는 모습 / 사진=성진우 기자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빗물받이 내부를 청소하는 모습 / 사진=성진우 기자
지자체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여전히 빗물받이에 쓰레기를 투기하고 있다. 이날 서울의 대표적인 상습 침수지역으로 꼽히는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에 있는 30여개의 빗물받이를 직접 확인해본 결과, 각종 쓰레기가 가득해 위급 상황시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특히 식당과 술집이 몰려 있는 강남 스타플렉스 건물 뒤쪽 거리의 빗물받이는 사실상 쓰레기통이나 다름없었다. 담배꽁초는 물론 병뚜껑, 작은 봉지 등 쓰레기 종류도 다양했다.

구청이 일부 빗물받이에 '쓰레기 투기 금지' 등 안내문을 적어놨지만,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암묵적인 '흡연 구역'으로 통하는 한 거리에 있던 10여명의 흡연자 대부분이 길거리 아니면 빗물받이에 자연스럽게 담배꽁초를 버렸다.

강남역 인근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40) 씨는 "막상 장마 때가 아니면 빗물받이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다른 곳도 아니고 강남 지역은 2년 전 큰 침수를 경험하지 않았나. 빗물받이 안에 가득한 쓰레기를 보면 침수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나 상습 침수 지역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빗물받이도 마찬가지였다. 도림천을 끼고 있으면서 저지대에 위치해 2022년에도 물난리가 났던 곳이다. 당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일가족 세 명이 침수로 고립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먹자골목과 거주 지역을 막론하고 이날 확인한 대부분의 빗물받이 안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서울 강남역 (맨 왼쪽)과 관악구 신림동 인근 빗물받이 상태 / 사진=성진우 기자
서울 강남역 (맨 왼쪽)과 관악구 신림동 인근 빗물받이 상태 / 사진=성진우 기자
심지어 일부 가게는 업장 앞에 있는 빗물받이 위에 적재물이나 고무로 된 발판을 올려놓는 경우도 있었다. 시에서 제작한 담배꽁초 전용 쓰레기통이 빗물받이 위에 설치돼 배수구를 막고 있기도 했다. 만약 집중 호우시 해당 빗물받이에서 배수 불량이 발생하면 인근 지역 침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업자들은 지속해서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 때문에 빗물받이를 막을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한 카페 업주는 "특히 여름이면 빗물받이에서 하수구 냄새가 나 어쩔 수 없이 고무판으로 막아 놨다. 바로 문 앞에 하수구가 있는 가게를 누가 좋아하겠나"라며 "평소에도 쓰레기가 가득하다 보니 손님들이 보기에 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빗물받이 배수 불량을 유발하는 쓰레기 투기 관련 규제는 경미한 수준이다. 폐기물관리법 제8조 제1항에 따르면, 쓰레기 투기 시 부과되는 과태료는 5만원으로, 이조차도 지자체가 일일이 단속하기 어렵다. 또 빗물받이와 같은 배수 시설에 대한 쓰레기 투기 위반 역시 별도 조항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과태료 액수를 늘리는 것보다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더 절실한 상황"이라며 "빗물받이는 각 자치구 소관이고, 서울시는 청소 등 관리 실적을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장마를 앞두고 특히 상습 침수 구역에 해당하는 구에 청소 인력 증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올 여름 7~8월 서울·경기 지역의 예상 강수량은 평년보다 50%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이번 주말에도 일부 지역은 이틀간 총강수량이 120mm를 웃돌 것으로 전망돼 주의가 요구된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