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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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대 청년층 마약류 사범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지난해 10대 마약사범은 1477명으로 1년 만에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이들 상당수는 청소년기부터 향정신성약물로 분류되는 ‘공부 잘하는 약’ ‘다이어트약’에 손댔다가 점점 강한 자극을 좇아 대마, 필로폰 등으로 넘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마약류 사범의 93.6%가 향정신성약물 사범이었다. ‘나비약’으로 불리는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집중력을 높여주는 ‘페니드’ ‘콘서타’ 등을 주로 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약물은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쉽게 살 수 있어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약인지도 모른 채 유통되고 있다. 친구끼리 약을 권하며 구매자가 판매자로 진화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1~5월 디에타민을 복용·유통한 10대 청소년 등 18명을 검거했다. 판매자는 10대로 디에타민을 복용하다가 유통까지 손을 댔고, SNS X 계정으로 구매자를 모집했다. 경찰 관계자는 “10대 마약사범 대다수가 자신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없다”고 우려했다.

20대 마약류 사범 78%가 '향정'
중독성·내성 강해 한번 시작하면 더 센 자극 원해 마약 찾기 일쑤

"살 빼려고 시작, 불법인지 몰랐다"…약에 빠진 20대女 '눈물'
“‘나비약’만 먹으면 기분이 들떠요. 함께 살을 빼자는 친구 말에 시작했는데 이제는 약이 없으면 우울증이 옵니다.”

키 165㎝, 몸무게 49㎏으로 마른 체형인 20대 여성 A씨는 5년째 식욕 억제제 디에타민을 복용 중이다. 나비넥타이처럼 생겨 ‘나비약’으로 불리는 이 약에는 마약 성분인 펜타민이 포함됐다. 고등학생 때 처음 약에 손댄 이후 살이 잘 안 빠진다 싶을 때마다 2~3알씩 복용량을 늘렸고 어느 순간 중독자가 됐다. A씨는 “텔레그램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주변 친구 중에도 판매자가 있어 최근까지 ‘불법’인지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10대 향정, 20대엔 대마·필로폰으로

중·고등학생 때 ‘다이어트 약’ ‘공부 잘하는 약’ 등 향정신성 약물을 접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약에 중독된 상태로 20대를 맞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2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마약류 사범은 8368명으로 전년 대비 44.1% 증가했다. 이 중 77.7%는 향정, 20.0%는 대마 사범이다. 20대 마약류 사범의 특징은 청소년 시절부터 약물을 오남용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사범 중 상당수는 어렸을 적부터 여러 약을 먹은 이가 많다”며 “향정은 중독성과 내성이 강해 한번 시작하면 더 센 자극을 위해 대마·필로폰 등으로 넘어가기 쉽다”고 설명했다.

SNS에서는 ‘미자(미성년자)인데 ㄴㅂㅇ 댈구(나비약 대리 구매) 원한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외에서 자연스럽게 친구를 통해 마약에 입문하는 사례도 많다. 이모씨(23)는 20세에 미국 유학 중 전자 담배 형태의 ‘대마 카트리지’를 피우다 마리화나에까지 손을 댔다. 이씨는 “클럽 파티에서 친구들과 가볍게 약을 먹기 시작한 것뿐인데 호기심의 대가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수능 앞두고 ADHD 처방 급증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부모조차 약물에 관대하다는 점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가 ‘집중력 올려주는 약’으로 소개되면서 부모가 대리 처방받는 일도 적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수능을 앞둔 10월에 ADHD 약 처방이 많이 늘어난다”며 “부모가 대신 처방받는 사례가 많은데 아이들이 약물 중독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ADHD 처방 약은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오남용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서울 시내 ADHD로 치료받은 10~19세 아동·청소년은 2023년 2만2374명으로 1년 만에 27.9% 급증했다. 이 중 34.6%는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에 집중돼 있으며 노원·양천구 등 교육열이 강한 지역까지 포함하면 절반에 달한다.

‘향정은 괜찮다’는 인식과 달리 중독성이 강해 오남용 시 환각, 공황 등 부작용을 유발한다. 지난해 2월엔 제주에서 나비약을 과다 복용한 20대 중독자가 환각 상태로 운전하다가 차량 6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켰다. 전국 병원을 떠돌아다니며 향정 처방을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장은 “처음에는 진짜 환자였겠지만 어느 순간 중독자로 바뀐 것”이라며 “자신들이 마약 중독자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약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청소년 마약 사범이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청소년은 ‘마약떡볶이’ ‘마약김밥’ 등을 보면서 마약에 올바른 인식을 갖기 힘들다”며 “과거 ‘본드’를 마시면 불량 학생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지금은 향정에 너무 관대한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철오/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