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사람들] ② '최전방 기차역' 홀로 지키는 도라산역 부역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002년 개통한 도라산역,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운영 멈춰
금성민 부역장 "미래세대 위해 잘 관리해놓고 싶다"
[※ 편집자 주 = 비무장지대(DMZ) 남쪽에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 설정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민통선을 넘는 것은 군사적인 목적에서 엄격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민통선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 10꼭지를 매주 토요일 송고합니다.
]
"열차가 안 다니니까 사실 사람이 필요 없어요.
문을 닫아도 아무 이상이 없죠." 경기 파주시 장단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부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전방 철도역인 도라산역.
2000년 6월 남북공동선언의 후속 조치로 남북이 경의선 철도를 연결하기로 한 데 따라 2002년 4월 개통된 역이다.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자 국제 철도역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9개의 선로로 서울역과 용산역 규모로 지어졌지만, 현재 역을 지키는 사람은 금성민(51) 한국철도공사 부역장 한명 뿐이다.
지난 12일 방문한 도라산역은 열차 운행 정보를 알리는 전광판은 꺼져있었고 승강장으로 가는 길은 철문이 막고 있었다.
개성공단 폐쇄 전까지 안보 관광을 하러 온 관광객들과 개성공단으로 가는 화물 열차로 활기가 넘쳤던 모습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DMZ 평화열차가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역까지 하루 한 차례 운행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관광객들이 있었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코로나19 확산으로 그마저도 멈춘 상황이에요.
"
이용객이 줄면서 관리역(다른 역을 관리·지휘 통솔하는 대표역)이었던 도라산역은 문산역에 기능을 이전하고 보통역으로 격하됐다.
역무실을 지키던 역장과 직원들은 하나둘씩 빠져나갔고, 코레일은 시설물 관리 차원에서 관리자급인 부역장 한명만 남겨뒀다.
2013년부터 도라산역에서 여러 차례 근무했던 금 부역장은 지난달부터 다시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코레일 내에서 베테랑으로 꼽히는 금 부역장은 "전쟁 위험 등으로 인해 일반 직원들은 여기서 근무하는 것을 꺼린다"며 "저는 ROTC 출신이고 그동안 근무 경험도 있어서 민통선 내 생활하는 게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아침 통일부 버스를 이용해 통일대교를 넘고 고요한 대합실을 지나 역무실에 도착한다.
근무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일반 직장인들과 다를 게 없이 오자마자 PC부터 켜서 업무 메일, 공문 등을 확인하며 근무를 시작한다"고 했다.
열차 운행이 멈췄지만 신호체계와 선로를 점검하고 하루 세 차례 순회하는 것이 주 업무다.
점심 식사는 도시락을 미리 싸 오거나 컵라면으로 대충 때운다.
그렇다고 조용히 관리만 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해 먼지만 쌓인 오래된 역에 숨을 불어 넣는 일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당시에는 디젤 기관차만 다닐 수밖에 없는 역에 전동열차가 오갈 수 있는 전차선을 설치하도록 사업을 추진했다.
현재 공사가 완료돼 29일부터 월 2회 광명역을 출발하는 전철이 이곳까지 운행된다.
도라산역은 서울역에서는 56km나 떨어졌지만 북한 개성역까지는 17km 거리여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금 부역장은 도라산역을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이전에는 어린 학생들에게 여기서 기차를 타면 수학여행으로 유럽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며 "시베리아 횡단 철도 관광 상품이 있어서 KTX로 이틀이면 갈 수 있으니 '너희가 나이가 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얘기도 해줬다"고 회상했다.
2020년 유엔군사령부 허가를 받고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 들어가 군사분계선까지 선로 정비 작업을 한 것을 금 부역장은 잊지 못한다.
관리가 되지 않아 나무와 수풀이 뒤덮은 북한 측 선로를 보며 남북 간 대립 상황을 몸소 느꼈다.
그는 "최근 남북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서 북한이 개성역까지 연결된 철로를 뜯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금 부역장은 은퇴할 때까지도 도라산역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제가 근무하는 동안 북한으로 가는 열차가 운행되기 어렵지만 향후 미래세대가 갈 가능성을 위해 잘 관리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고도 했다.
과거 역을 방문했던 어르신들의 "평양 기차표 달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어본 지 오래됐다는 금 부역장.
고 문익환 목사의 시에서 발췌해 도라산역 정문 앞에 만들어진 시비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는 다시 우스갯소리를 듣고 싶은 금 부역장의 바람을 대신하고 있었다.
/연합뉴스
금성민 부역장 "미래세대 위해 잘 관리해놓고 싶다"
[※ 편집자 주 = 비무장지대(DMZ) 남쪽에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 설정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민통선을 넘는 것은 군사적인 목적에서 엄격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민통선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 10꼭지를 매주 토요일 송고합니다.
]
"열차가 안 다니니까 사실 사람이 필요 없어요.
문을 닫아도 아무 이상이 없죠." 경기 파주시 장단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부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전방 철도역인 도라산역.
2000년 6월 남북공동선언의 후속 조치로 남북이 경의선 철도를 연결하기로 한 데 따라 2002년 4월 개통된 역이다.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자 국제 철도역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9개의 선로로 서울역과 용산역 규모로 지어졌지만, 현재 역을 지키는 사람은 금성민(51) 한국철도공사 부역장 한명 뿐이다.
지난 12일 방문한 도라산역은 열차 운행 정보를 알리는 전광판은 꺼져있었고 승강장으로 가는 길은 철문이 막고 있었다.
개성공단 폐쇄 전까지 안보 관광을 하러 온 관광객들과 개성공단으로 가는 화물 열차로 활기가 넘쳤던 모습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DMZ 평화열차가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역까지 하루 한 차례 운행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관광객들이 있었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코로나19 확산으로 그마저도 멈춘 상황이에요.
"
이용객이 줄면서 관리역(다른 역을 관리·지휘 통솔하는 대표역)이었던 도라산역은 문산역에 기능을 이전하고 보통역으로 격하됐다.
역무실을 지키던 역장과 직원들은 하나둘씩 빠져나갔고, 코레일은 시설물 관리 차원에서 관리자급인 부역장 한명만 남겨뒀다.
2013년부터 도라산역에서 여러 차례 근무했던 금 부역장은 지난달부터 다시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코레일 내에서 베테랑으로 꼽히는 금 부역장은 "전쟁 위험 등으로 인해 일반 직원들은 여기서 근무하는 것을 꺼린다"며 "저는 ROTC 출신이고 그동안 근무 경험도 있어서 민통선 내 생활하는 게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아침 통일부 버스를 이용해 통일대교를 넘고 고요한 대합실을 지나 역무실에 도착한다.
근무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일반 직장인들과 다를 게 없이 오자마자 PC부터 켜서 업무 메일, 공문 등을 확인하며 근무를 시작한다"고 했다.
열차 운행이 멈췄지만 신호체계와 선로를 점검하고 하루 세 차례 순회하는 것이 주 업무다.
점심 식사는 도시락을 미리 싸 오거나 컵라면으로 대충 때운다.
그렇다고 조용히 관리만 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해 먼지만 쌓인 오래된 역에 숨을 불어 넣는 일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당시에는 디젤 기관차만 다닐 수밖에 없는 역에 전동열차가 오갈 수 있는 전차선을 설치하도록 사업을 추진했다.
현재 공사가 완료돼 29일부터 월 2회 광명역을 출발하는 전철이 이곳까지 운행된다.
도라산역은 서울역에서는 56km나 떨어졌지만 북한 개성역까지는 17km 거리여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금 부역장은 도라산역을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이전에는 어린 학생들에게 여기서 기차를 타면 수학여행으로 유럽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며 "시베리아 횡단 철도 관광 상품이 있어서 KTX로 이틀이면 갈 수 있으니 '너희가 나이가 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얘기도 해줬다"고 회상했다.
2020년 유엔군사령부 허가를 받고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 들어가 군사분계선까지 선로 정비 작업을 한 것을 금 부역장은 잊지 못한다.
관리가 되지 않아 나무와 수풀이 뒤덮은 북한 측 선로를 보며 남북 간 대립 상황을 몸소 느꼈다.
그는 "최근 남북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서 북한이 개성역까지 연결된 철로를 뜯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금 부역장은 은퇴할 때까지도 도라산역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제가 근무하는 동안 북한으로 가는 열차가 운행되기 어렵지만 향후 미래세대가 갈 가능성을 위해 잘 관리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고도 했다.
과거 역을 방문했던 어르신들의 "평양 기차표 달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어본 지 오래됐다는 금 부역장.
고 문익환 목사의 시에서 발췌해 도라산역 정문 앞에 만들어진 시비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는 다시 우스갯소리를 듣고 싶은 금 부역장의 바람을 대신하고 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