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 "성 다양성 갖춘 이사회가 부실 위험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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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ESG] 여성 리더 시대①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 인터뷰
대한민국 금융권에서 여성 리더 배출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치에 머물러 있다. 2019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에는 1명 이상 여성 이사 선임을 의무화했지만, 여전히 여성 리더에 대한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은 국내 최초의 여성 외환딜러로 50여 년 전 콘크리트 같던 금융권의 유리천장을 깬 여성이다. 지난 6월 20일 김 원장을 명동에 위치한 한국국제금융연수원에서 만났다.
”여성 임원이 있는 한 그 회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75세)은 ”외환 딜러로 20여 년간 근무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1975년 금융회사에 첫발을 내디딘 후 20여 년간 글로벌 은행에서 외환딜러로 근무했다. 그는 국내 최초의 여성 외환 딜러로서 미국계 아멕스 은행을 비롯한 중국계 은행 등 글로벌 은행에서 20여 년간 딜링 업무를 해왔다.
한국 금융회사에 딜러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국내 최초의 여성 딜러였던 김 원장은 금융기관의 유리천장을 직접 경험하고 극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글로벌 금융회사도 보수적인 문화가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알게 된 사실은 여성이 임원으로 있는 은행은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그만큼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은 기업의 존폐를 가릴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이 여성 임원을 채용하는 것이 단순히 성차별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재무적 관점에서 이익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원장은 미국계 은행인 아멕스 은행에서 딜링 업무를 할 당시 업무적 역량을 인정받아 다른 남자 직원들보다 빠르게 승진했다. 이후 근무한 중국계 은행에서는 딜링룸 개설을 제의받기도 했다. 그 후 오랜 기간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외국계 은행 출신 전문가들을 주주로 구성해 ’한국국제금융연수원‘을 설립했다.
그는 “급변하는 국제금융환경에 대처하고자 하는 금융권 재직자들을 위해 실전 교육을 기획해보자는 취지에서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김 원장은 국내 유수의 금융권 여성 CEO와 임원들이 다수 가입된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여성금융인네트워크에서는 2015년부터 대한민국 여성 금융인 국제행사에 유수의 글로벌 여성 리더들을 초청해 양성평등과 포용성이라는 주제로 글로벌 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김 원장은 “한국 금융회사에도 선진 인프라와 고급 인력이 많지만, 남성 중심의 문화가 여전히 뿌리 깊은 것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며 “금융회사의 핵심 부서인 법인영업이나 기업금융 부서는 남성 직원의 전유물인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금융회사에 여성을 임원으로 채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성을 갖춘 회사일수록 리스크 관리가 철저하고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빈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임원 비율은 OECD 29개국 중 29위로, 1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 역시 28위로 꼴찌에 가깝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있음에도 여성 리더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 2019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들은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하지만,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 이는 기업의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여성 금융인 중 우수한 인재가 많지만,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여성 인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기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들이 리스크를 줄이고 재무적 성과를 얻으려면 여성 CEO와 임원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앞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려면 기업 이사회 구성이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성 다양성을 갖춘 이사회가 부실 위험을 줄였다는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국내 첫 여성 딜러로 근무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에서 비서로 근무할 당시 딜러에 도전해보자고 결심한 것은 비서로서 경쟁력이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미국계 아멕스 은행에서 외환딜러 업무를 시작한 것은 1980년이에요. 당시 한국 금융회사에는 딜러라는 직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죠. 때문에 해외에서 딜러에 관한 책을 들여와 공부하면서 업무를 했습니다. 당시 딜러라는 직업의 장점은 실적을 잘 올리면 보상이 컸고, 남녀 구분 없이 승진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딜러로 근무하며 기억에 남은 일이 있다면.
“1979년 12월 외환딜러 제안을 받을 당시 한국의 원달러는 480원 픽스 요금제를 쓰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자유변동환율제로 바뀌기 전인데요. 주요 통화는 해외에서 자동환율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국에는 딜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죠. 그때는 홍콩, 싱가포르, 런던, 뉴욕 등에서 딜러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이후 국내 대기업의 자금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환율 리스크 헤지 방법을 직접 알려준 기억이 있어요. 또 해외 거래를 하던 대기업에도 환율 헤지 마케팅을 주로 했죠. 여성이지만 국내에서 딜러가 최초였고, 1981년부터 해외에 지점이 있어 자주 해외를 다녀왔어요. 전 세계가 24시간 딜링이 가능하기에 모두 관리해줬는데, 그 업무를 1990년대 프라이빗 뱅킹 고객을 대상으로 했죠.”
글로벌 금융기관에 근무할 당시 유리천장이 국내에 비해 높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데요. 그럼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 아멕스 은행에서 딜링 업무를 할 당시엔 여성이나 남성의 업무 구분이 없었어요. 아멕스에서 남성보다 1년 더 빨리 승진했죠. 먼저 승진했다고 질투의 시선도 많이받은 것 같아요. 1979년부터 1994년까지 15년간 딜링 룸에 근무했고 중국은행에서 제의를 받았는데, 당시 딜링룸이 없어 직접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은행들이 남녀 차별이 덜했지만, 당시 여성 딜러로
선정됐을 때 국내에서는 돌연변이 취급을 당한 것 같아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미혼 여성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결혼퇴직각서제도’가 있을 만큼 국내 금융회사에서 여성의 유리천장은 상당히 높았지요.
다행히 여성 행원을 대상으로 한 결혼퇴직각서제도는 1976년 폐지됐고, 여성 행원 제도 역시 1993년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다음 해에 폐지됐어요. 하지만 여전히 여성
금융인에 대한 유리 장벽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국제금융연수원은 어떤 배경으로 설립하게 되셨고, 어떤 교육을 진행하고 있나요.
“ 수십 년간 글로벌 은행에서 외환딜러로 일했던 경험과 노하우를 금융인에게 전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급변하는 국제 금융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금융권 재직자들을 위한 실적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외국계 은행 출신 전문가들과 함께 교육법인을 만들었어요. 이어 국제공인신용장전문가(CDCS)를 양성하는 자격증을 발행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게 됐지요.
당시 글로벌 국가들은 신용장전문가 자격증 과정을 각국의 상공회의소에서 발행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제금융연수원이 영국의 교육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격증을 발행할 수 있는 한국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자격증 발급을 위해 2004년부터 영국의 런던 인스티튜트 뱅크 오브 파이낸스(LIDF)와 2004년부터 지금까지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주로 은행 직원들이 이 과정에 많이 참여하는데, 지금까지 2600명이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시험 수준도 상당히 어렵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CDCS 과정을 밟은 뒤에는 국내 은행들이 굉장히 똑똑해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재 120개국에서 이 자격시험을 볼 만큼 매우 중요한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융업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까지 올랐다고 평가하시나요.
“한국 금융권에서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여성 은행장은 단 4명뿐인데요. 5대 시중은행 중에는 단 한 번도 여성 은행장을 배출하지 못했고, 그나마 특수은행과 외국계 은행, 인터넷 은행에서 나왔어요.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융의 핵심 업무가 여전히 남성의 몫이라는 점을 알 수 있죠. 금융업은 남녀 비율이 비교적 비슷하지만, 승진할수록 부장급 이상 관리직에 남성이 여성보다 5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고액연봉자 수도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이는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이 발표한 사업보고서에서 볼 수 있듯이 남녀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임금이 적은 서비스 리테일 직군에 여성 비중이 높기 때문이죠.”
ESG적 관점에서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글로벌 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다양성 부족이 초래했다고 자평하는데요. 리스크 관리를 잘 살펴보면 위기 이후 여성과 남성이 조화로운 이사회와 남성 중심의 이사회 결과를 비교한 연구를 볼 때 이사회에 많은 여성 임원과 CEO가 위법행위 빈도를 크게 줄였고, 성 다양성을 갖춘 이사회가 부실 위험을 줄였다는 결과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만큼 기업과 정부는 여성 리더에 대한 공정한 기회 제공과 성차별 없는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여성 임원이 있는 한 그 회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75세)은 ”외환 딜러로 20여 년간 근무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1975년 금융회사에 첫발을 내디딘 후 20여 년간 글로벌 은행에서 외환딜러로 근무했다. 그는 국내 최초의 여성 외환 딜러로서 미국계 아멕스 은행을 비롯한 중국계 은행 등 글로벌 은행에서 20여 년간 딜링 업무를 해왔다.
한국 금융회사에 딜러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국내 최초의 여성 딜러였던 김 원장은 금융기관의 유리천장을 직접 경험하고 극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글로벌 금융회사도 보수적인 문화가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알게 된 사실은 여성이 임원으로 있는 은행은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그만큼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은 기업의 존폐를 가릴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이 여성 임원을 채용하는 것이 단순히 성차별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재무적 관점에서 이익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원장은 미국계 은행인 아멕스 은행에서 딜링 업무를 할 당시 업무적 역량을 인정받아 다른 남자 직원들보다 빠르게 승진했다. 이후 근무한 중국계 은행에서는 딜링룸 개설을 제의받기도 했다. 그 후 오랜 기간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외국계 은행 출신 전문가들을 주주로 구성해 ’한국국제금융연수원‘을 설립했다.
그는 “급변하는 국제금융환경에 대처하고자 하는 금융권 재직자들을 위해 실전 교육을 기획해보자는 취지에서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김 원장은 국내 유수의 금융권 여성 CEO와 임원들이 다수 가입된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여성금융인네트워크에서는 2015년부터 대한민국 여성 금융인 국제행사에 유수의 글로벌 여성 리더들을 초청해 양성평등과 포용성이라는 주제로 글로벌 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김 원장은 “한국 금융회사에도 선진 인프라와 고급 인력이 많지만, 남성 중심의 문화가 여전히 뿌리 깊은 것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며 “금융회사의 핵심 부서인 법인영업이나 기업금융 부서는 남성 직원의 전유물인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금융회사에 여성을 임원으로 채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성을 갖춘 회사일수록 리스크 관리가 철저하고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빈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임원 비율은 OECD 29개국 중 29위로, 1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 역시 28위로 꼴찌에 가깝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있음에도 여성 리더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 2019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들은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하지만,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 이는 기업의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여성 금융인 중 우수한 인재가 많지만,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여성 인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기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들이 리스크를 줄이고 재무적 성과를 얻으려면 여성 CEO와 임원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앞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려면 기업 이사회 구성이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성 다양성을 갖춘 이사회가 부실 위험을 줄였다는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국내 첫 여성 딜러로 근무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에서 비서로 근무할 당시 딜러에 도전해보자고 결심한 것은 비서로서 경쟁력이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미국계 아멕스 은행에서 외환딜러 업무를 시작한 것은 1980년이에요. 당시 한국 금융회사에는 딜러라는 직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죠. 때문에 해외에서 딜러에 관한 책을 들여와 공부하면서 업무를 했습니다. 당시 딜러라는 직업의 장점은 실적을 잘 올리면 보상이 컸고, 남녀 구분 없이 승진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딜러로 근무하며 기억에 남은 일이 있다면.
“1979년 12월 외환딜러 제안을 받을 당시 한국의 원달러는 480원 픽스 요금제를 쓰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자유변동환율제로 바뀌기 전인데요. 주요 통화는 해외에서 자동환율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국에는 딜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죠. 그때는 홍콩, 싱가포르, 런던, 뉴욕 등에서 딜러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이후 국내 대기업의 자금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환율 리스크 헤지 방법을 직접 알려준 기억이 있어요. 또 해외 거래를 하던 대기업에도 환율 헤지 마케팅을 주로 했죠. 여성이지만 국내에서 딜러가 최초였고, 1981년부터 해외에 지점이 있어 자주 해외를 다녀왔어요. 전 세계가 24시간 딜링이 가능하기에 모두 관리해줬는데, 그 업무를 1990년대 프라이빗 뱅킹 고객을 대상으로 했죠.”
글로벌 금융기관에 근무할 당시 유리천장이 국내에 비해 높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데요. 그럼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 아멕스 은행에서 딜링 업무를 할 당시엔 여성이나 남성의 업무 구분이 없었어요. 아멕스에서 남성보다 1년 더 빨리 승진했죠. 먼저 승진했다고 질투의 시선도 많이받은 것 같아요. 1979년부터 1994년까지 15년간 딜링 룸에 근무했고 중국은행에서 제의를 받았는데, 당시 딜링룸이 없어 직접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은행들이 남녀 차별이 덜했지만, 당시 여성 딜러로
선정됐을 때 국내에서는 돌연변이 취급을 당한 것 같아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미혼 여성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결혼퇴직각서제도’가 있을 만큼 국내 금융회사에서 여성의 유리천장은 상당히 높았지요.
다행히 여성 행원을 대상으로 한 결혼퇴직각서제도는 1976년 폐지됐고, 여성 행원 제도 역시 1993년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다음 해에 폐지됐어요. 하지만 여전히 여성
금융인에 대한 유리 장벽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국제금융연수원은 어떤 배경으로 설립하게 되셨고, 어떤 교육을 진행하고 있나요.
“ 수십 년간 글로벌 은행에서 외환딜러로 일했던 경험과 노하우를 금융인에게 전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급변하는 국제 금융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금융권 재직자들을 위한 실적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외국계 은행 출신 전문가들과 함께 교육법인을 만들었어요. 이어 국제공인신용장전문가(CDCS)를 양성하는 자격증을 발행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게 됐지요.
당시 글로벌 국가들은 신용장전문가 자격증 과정을 각국의 상공회의소에서 발행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제금융연수원이 영국의 교육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격증을 발행할 수 있는 한국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자격증 발급을 위해 2004년부터 영국의 런던 인스티튜트 뱅크 오브 파이낸스(LIDF)와 2004년부터 지금까지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주로 은행 직원들이 이 과정에 많이 참여하는데, 지금까지 2600명이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시험 수준도 상당히 어렵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CDCS 과정을 밟은 뒤에는 국내 은행들이 굉장히 똑똑해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재 120개국에서 이 자격시험을 볼 만큼 매우 중요한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융업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까지 올랐다고 평가하시나요.
“한국 금융권에서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여성 은행장은 단 4명뿐인데요. 5대 시중은행 중에는 단 한 번도 여성 은행장을 배출하지 못했고, 그나마 특수은행과 외국계 은행, 인터넷 은행에서 나왔어요.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융의 핵심 업무가 여전히 남성의 몫이라는 점을 알 수 있죠. 금융업은 남녀 비율이 비교적 비슷하지만, 승진할수록 부장급 이상 관리직에 남성이 여성보다 5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고액연봉자 수도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이는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이 발표한 사업보고서에서 볼 수 있듯이 남녀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임금이 적은 서비스 리테일 직군에 여성 비중이 높기 때문이죠.”
ESG적 관점에서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글로벌 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다양성 부족이 초래했다고 자평하는데요. 리스크 관리를 잘 살펴보면 위기 이후 여성과 남성이 조화로운 이사회와 남성 중심의 이사회 결과를 비교한 연구를 볼 때 이사회에 많은 여성 임원과 CEO가 위법행위 빈도를 크게 줄였고, 성 다양성을 갖춘 이사회가 부실 위험을 줄였다는 결과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만큼 기업과 정부는 여성 리더에 대한 공정한 기회 제공과 성차별 없는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