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9일 SK그룹 경영전략회의가 열린 경기 이천 SKMS연구소 앞. 한경DB
28~29일 SK그룹 경영전략회의가 열린 경기 이천 SKMS연구소 앞. 한경DB
“그린(친환경), 화학(전통 산업), 바이오 부문은 시장 변화, 기술 경쟁력 등을 따져 선택과 집중, 내실 경영으로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 28~29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고 30일 발표했다.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힌 인공지능(AI), 반도체 이외 영역에선 기존 사업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에너지), SK온(배터리), SK E&S(에너지), SKC(석유화학), SK에코플랜트(건설) 등이 지분 투자 등 외연 확장에 속도를 늦출 것으로 관측된다.

SK그룹은 2021년부터 BBC 전략에 따라 배터리, 바이오, 반도체를 그룹의 미래 사업으로 정하고 육성해왔다. 그중 바이오, 배터리를 포함해 친환경 사업(재활용 사업, 수소 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했지만, 시장 수요가 예상만큼 커지지 않으면서 손실이 누적됐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장기화로 연속 10개 분기 적자를 SK온이 대표적이다. 중국, 중동 기업의 석유화학 투자로 플라스틱 가격이 급락하자, 재활용 플라스틱 수요도 늘어나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다.

이번 경영전략회의에선 “친환경, 배터리, 바이오 사업이 전도유망한 건 맞지만, 시장이 성숙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역시 여러 계열사가 수소 사업에 너무 앞서 투자하다가 중복 사업이 많아졌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밸류체인에서도 셀(SK온)뿐 아니라 동박(SK넥실리스), 분리막(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에 동시다발로 투자한 점도 문제로 꼽혔다.

현재 주력 사업인 석유 분야 등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할 사례로 지목됐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사업 평가 지표들이 예년보다 떨어진 데 대해 내부에서 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최 의장도 미래 에너지에 투자하느라 석유 사업 경쟁력을 놓친 점을 언급하고, 신규 투자에만 올인하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도 울산에 짓고 있는 재활용 플라스틱 클러스터의 투자 규모를 줄일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 E&S와 합쳐 악화한 재무구조를 개선한 뒤, 종합 에너지 기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각 자회사의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에서 친환경 사업으로 전환 중인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도 투자 속도를 늦춘다. 산업용 가스를 생산하는 SK머티리얼즈의 자회사 일부가 SK에코플랜트와 합병해 내실 다지기에 필요한 실탄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형규/김우섭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