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막히는 아름다움이 뭔지 소리로 보여준 플레트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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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28일 플레트뇨프 '라피협' 전곡 연주
세상에 단 하나뿐인 라흐마니노프 보여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라흐마니노프 보여줘
![숨이 턱 막히는 아름다움이 뭔지 소리로 보여준 플레트뇨프](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197919.1.jpg)
이렇게 느슨하고, 덜 뜨겁고, 조용하고, 무심하게 연주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 플레트뇨프의 라흐마니노프는 그렇게 다가왔다.
플레트뇨프의 ‘라흐마니노프 프로젝트’가 한국에서도 열렸다. 말 그대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양일(6월 27일~28일)에 걸쳐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플레트뇨프에게 가장 각별한 작곡가가 라흐마니노프고, 또 만년의 플레트뇨프가 안착한 작곡가가 라흐마니노프기 때문에 이번 무대는 연주자에게나 관객들에게나 모두 특별한 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 플레트뇨프가 생각하는 라흐마니노프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작품이 시작되고 관객들 모두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작품들인데도, 그 어떤 것도 기존과 같지 않았다. 특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도입부부터 예상을 벗어났다. 지휘자와 사인을 주고받기 전에 플레트뇨프는 벌써 성큼성큼 나아가기 시작했다.
![숨이 턱 막히는 아름다움이 뭔지 소리로 보여준 플레트뇨프](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197915.1.jpg)
연주 내내 강조되는 음들도 달랐다. 때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성부들을 엇갈려서 연주해, 새로운 질감을 빚어내기도 했다. 플레트뇨프가 지난 쇼팽 리사이틀 당시에도 자주 보여줬던 방식이었다. 미묘하게 음들을 엇갈리게 연주하니, 굳이 베이스를 세게 연주하지 않아도 효과적이었다. 또 이번에도 큰 소리를 사용해서 연주하지 않았다. 플레트뇨프는 만년에 이르러 포르테를 완전히 버렸다. 큰 소리가 필요하면 그저 툭 쳐서 효과를 낼 뿐이다.
그러다보니 플레트뇨프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방식은 모든게 낯설고 새로웠다. 확실한 건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이런 방식이 가장 잘 구현된 작품은 첫째 날 연주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였다.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라흐마니노프가 탄생했다. 그 유명한 18번째 변주에서는 숨이 턱 막히는 아름다움이라는 게 무엇인지 소리로 보여줬다. 그밖에도 12번째 변주의 마법 같은 순간과 14번째 변주에서 들려오는 화려한 재즈 음악은 양일간 있었던 순간 중 가장 기억난다.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소리로 구체화된 순간이었다.
![숨이 턱 막히는 아름다움이 뭔지 소리로 보여준 플레트뇨프](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197917.1.jpg)
그밖에 청년시기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1번에도 플레트뇨프만의 영감이 깃들어 있었다. 청년 라흐마니노프가 이 음악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을 상상하고 재현했다.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이지만, 이 음악에서 그의 미래의 피아노 협주곡들이 들렸다. 플레트뇨프는 피아노 협주곡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며, 이 작품 또한 여전히 라흐마니노프의 뛰어난 작품임을 역설했다. 덕분에 작품의 가치는 더욱 격상되었다.
![숨이 턱 막히는 아름다움이 뭔지 소리로 보여준 플레트뇨프](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197918.1.jpg)
개성이 강한 연주와 함께 하다 보니 오케스트라는 당연히 여러모로 고전 할 수밖에 없었다.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과 3번 마지막 악장에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에게서 크게 벗어나기도 했다. 그나마도 작년 ‘라흐마니노프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지휘자 타카세키 켄이 아니었더라면,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는 앙상블을 이루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타카세키 켄은 플레트뇨프의 음악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 쉴 새 없이 템포와 볼륨을 조절했고, 또 플레트뇨프의 다음 음악을 예측해서 울림의 지속시간을 조절하기도 했다. 덕분에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와 피아노 협주곡 4번에선 플레트뇨프만의 색깔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가장 빛나는 순간들은 플레트뇨프가 혼자서 연주하는 음악들에 있었다. 결국 오케스트라는 그의 열손가락처럼 완벽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음악에 대한 통제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는 앙코르 때엔 마법 같은 음악이 흘렀다. 첫날 앙코르인 차이콥스키 녹턴 op.19 no.4에선 여린 소리의 음악이 주는 울림을 체험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음은 어떤 강도를 누르는지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여리면서도 절묘했다.
두 번째 날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op.23 no.4에서도 감탄만 나왔다. 모든 성부가 아름답게 아른거리고 있었으며, 동시에 라흐마니노프 음악만이 줄 수 있는 정서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 모든 게 가능하면서도 편안했다. 잔향이 모두 사라지고, 불이 켜지고 나서야 플레트뇨프가 2시간 동안 만들었던 세계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