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과잉진료, 환자는 의료쇼핑…'2조 실손 적자' 화키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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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INSIGHT
실손보험 팔 수록 손해
10곳 중 4곳 판매 중단
건강보험이 보장 않는 의료비 지원
2010년 가입자수 2000만명 돌파
당국, 같은 보험상품만 팔게 규제하자
손해율 2016년엔 131%까지 치솟아
비급여 과잉 진료에 적자 '폭증'
도수치료·비타민주사·MRI 검사 등
지난해 지급된 보험금 14조 넘어
상위 10%가 보험금 48% 타가기도
실손보험 팔 수록 손해
10곳 중 4곳 판매 중단
건강보험이 보장 않는 의료비 지원
2010년 가입자수 2000만명 돌파
당국, 같은 보험상품만 팔게 규제하자
손해율 2016년엔 131%까지 치솟아
비급여 과잉 진료에 적자 '폭증'
도수치료·비타민주사·MRI 검사 등
지난해 지급된 보험금 14조 넘어
상위 10%가 보험금 48% 타가기도
약 4000만 명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이 적자 늪에 빠졌다. 지난해 전체 실손보험 적자만 2조원에 육박한다. 한해 감기 진료비가 총 1조500억원(2022년 기준)인 걸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계속되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실손보험료는 지난 5년간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손보험료의 누적 상승률은 약 60%에 달한다. 하지만 실손보험 손해율(보험료 대비 보험금 비율)은 매년 100%를 넘어서고 있다. 실손보험을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도 잇따르고 있다. 현재 신한라이프, 미래에셋생명, AXA손해보험 등 13개사는 실손보험을 판매하지 않는다. 삼성화재가 국내에 실손보험을 처음으로 출시한 1999년 이후 실손보험을 내놓은 보험사는 30개사였다. 절반에 가까운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시장에서 손을 들고 발을 뺀 셈이다.
실손보험 손해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난 건 2010년대부터다. 당시 가입자 수가 2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손해율도 덩달아 올랐다. 금융당국이 표준 약관을 도입해 보험사가 사실상 같은 상품을 팔도록 규제한 시기와도 맞물린다. 이전까지는 회사별로 가입자마다 보장 내용이 달랐다.
실제 2011년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은 109.8%로, 100%를 넘어선 뒤 2016년에는 131.3%로 치솟았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2010년대 이후 단 한 번도 100%를 밑돈 적이 없다. 지난해에는 122.6%를 기록했다. 지난해 실손보험 적자 규모는 1조9738억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4437억원(29%) 확대됐다.
실손보험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진 가장 큰 원인은 비급여 의료비 청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비급여란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치료 항목을 말한다. 도수치료, 비타민 주사,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검사 등이 해당한다. 지난해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14조813억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비급여 보험금이 56.9%(8조126억원)를 차지했다.
비급여 항목을 중심으로 ‘의료 쇼핑’에 나서는 일부 가입자의 보험금 과잉 청구는 도를 넘은 수준이다. 삼성·메리츠·현대·KB 등 국내 4대 손해보험사 취합 결과, 지난해 실손보험 가입자의 약 4%가 전체 지급보험금의 절반 이상(54.7%)을 수령했다. 지난해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는 전체 가입자의 52.1%나 됐다. 나머지 보험금을 지급받은 가입자는 50만원 이하를 수령하는 데 그쳤다.
황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50대 남성 A씨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 동안 594일을 병원에 방문해 2억1000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같은 기간 A씨의 두 아들이 지급받은 보험금을 합치면 일가족 3명에게만 총 3억50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이 지급됐다.
꼭 필요할 때만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선량한 가입자는 피해를 보고 있는 구조다. 극히 일부가 보험금을 과잉 청구하면서 보험료 인상 부담이 대다수 가입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실손보험료는 2019년 평균 6% 올랐고 △2020년 7% △2021년 12% △2022년 14.2% △2023년 8.9% 인상됐다. 지난 5년간 누적 상승률만 58%다. 그런데도 보험사의 손해율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손보험 과잉 청구가 문제가 된 백내장의 경우 병원과 의사의 도덕적 해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다. 백내장은 눈의 투명한 수정체가 혼탁해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릿해지는 질환이다. 증상이 진행되면 인공수정체(렌즈) 삽입 수술이 필요하다.
일부 병원은 백내장 수술 후 합병증이 없는데도 6시간 이상 환자를 의료기관에 체류시키거나 합병증이 있는 것처럼 의무기록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사가 부작용·합병증 등 입원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입원 의료비를 지급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또 비급여 렌즈 가격을 과도하게 받기도 했다. 2022년 6월 대법원이 ‘백내장 수술을 입원 치료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뒤에야 상황이 정상화됐다. 백내장 수술 건수는 90% 급감했다. 일부 병원은 600만~700만원에 달하던 비급여 렌즈 가격을 절반 가까이 내렸다. 최근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 대란도 실손보험 영향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는 일부 진료과로 의사가 몰리다 보니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돈이 안 되는 필수과를 꺼린다는 것이다. 전체 실손 지급 보험금의 3분의 1은 의원(32.9%) 진료를 통해 지급된다.
비급여 과잉 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21년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병원이 비급여 진료비용 정보를 병원 내부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비급여 보고체계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일부 의료기관은 비급여 진료비용을 업데이트하지 않거나 환자가 홈페이지에서 찾기 어렵게 해놨다.
비급여 관리 체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복지부는 최근에서야 의료개혁특위를 출범하고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 비(非) 중증 과잉 비급여에 대한 혼합진료 금지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역시 별도의 보험개혁회의를 구성해 실손보험의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한 상품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료 공급 측면의 제도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비급여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문제가 되는 주요 비급여 진료 항목에 대해서는 해당 전문과목 의학회에서 진료 적정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용하는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이렇다 보니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도 잇따르고 있다. 현재 신한라이프, 미래에셋생명, AXA손해보험 등 13개사는 실손보험을 판매하지 않는다. 삼성화재가 국내에 실손보험을 처음으로 출시한 1999년 이후 실손보험을 내놓은 보험사는 30개사였다. 절반에 가까운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시장에서 손을 들고 발을 뺀 셈이다.
도입 취지는 좋은데…
실손보험은 전 국민이 의무로 가입하는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상품이다. 급여 의료비의 본인 부담금과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의료비가 대상이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의료 접근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실손보험 손해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난 건 2010년대부터다. 당시 가입자 수가 2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손해율도 덩달아 올랐다. 금융당국이 표준 약관을 도입해 보험사가 사실상 같은 상품을 팔도록 규제한 시기와도 맞물린다. 이전까지는 회사별로 가입자마다 보장 내용이 달랐다.
실제 2011년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은 109.8%로, 100%를 넘어선 뒤 2016년에는 131.3%로 치솟았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2010년대 이후 단 한 번도 100%를 밑돈 적이 없다. 지난해에는 122.6%를 기록했다. 지난해 실손보험 적자 규모는 1조9738억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4437억원(29%) 확대됐다.
실손보험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진 가장 큰 원인은 비급여 의료비 청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비급여란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치료 항목을 말한다. 도수치료, 비타민 주사,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검사 등이 해당한다. 지난해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14조813억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비급여 보험금이 56.9%(8조126억원)를 차지했다.
비급여 항목을 중심으로 ‘의료 쇼핑’에 나서는 일부 가입자의 보험금 과잉 청구는 도를 넘은 수준이다. 삼성·메리츠·현대·KB 등 국내 4대 손해보험사 취합 결과, 지난해 실손보험 가입자의 약 4%가 전체 지급보험금의 절반 이상(54.7%)을 수령했다. 지난해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는 전체 가입자의 52.1%나 됐다. 나머지 보험금을 지급받은 가입자는 50만원 이하를 수령하는 데 그쳤다.
황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50대 남성 A씨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 동안 594일을 병원에 방문해 2억1000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같은 기간 A씨의 두 아들이 지급받은 보험금을 합치면 일가족 3명에게만 총 3억50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이 지급됐다.
꼭 필요할 때만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선량한 가입자는 피해를 보고 있는 구조다. 극히 일부가 보험금을 과잉 청구하면서 보험료 인상 부담이 대다수 가입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실손보험료는 2019년 평균 6% 올랐고 △2020년 7% △2021년 12% △2022년 14.2% △2023년 8.9% 인상됐다. 지난 5년간 누적 상승률만 58%다. 그런데도 보험사의 손해율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과잉 처방
비급여 진료비를 병원이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는 것도 실손보험 적자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비급여 의료는 보건당국으로부터 진료 대상, 진료량, 진료 수가 등을 관리받는 급여 의료와 달리 별도의 관리 체계가 없다. 이렇다 보니 의료기관이 가격을 임의로 설정하고 진료 횟수와 양을 남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실손보험 과잉 청구가 문제가 된 백내장의 경우 병원과 의사의 도덕적 해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다. 백내장은 눈의 투명한 수정체가 혼탁해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릿해지는 질환이다. 증상이 진행되면 인공수정체(렌즈) 삽입 수술이 필요하다.
일부 병원은 백내장 수술 후 합병증이 없는데도 6시간 이상 환자를 의료기관에 체류시키거나 합병증이 있는 것처럼 의무기록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사가 부작용·합병증 등 입원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입원 의료비를 지급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또 비급여 렌즈 가격을 과도하게 받기도 했다. 2022년 6월 대법원이 ‘백내장 수술을 입원 치료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뒤에야 상황이 정상화됐다. 백내장 수술 건수는 90% 급감했다. 일부 병원은 600만~700만원에 달하던 비급여 렌즈 가격을 절반 가까이 내렸다. 최근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 대란도 실손보험 영향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는 일부 진료과로 의사가 몰리다 보니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돈이 안 되는 필수과를 꺼린다는 것이다. 전체 실손 지급 보험금의 3분의 1은 의원(32.9%) 진료를 통해 지급된다.
정부는 획일적인 대응만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대증적이고 획일적인 대응에만 급급했다. 정부는 2009년 2세대 실손보험을 시작으로 상품을 표준화했다. 모든 보험사가 사실상 같은 상품을 내놓도록 한 것이다. 자동차보험처럼 가입자의 위험도나 사고 경력에 맞춘 보험 상품 설계는 불가능하다. 보험금 청구 빈도와 액수에 따른 개인별 할인·할증도 어렵다. 가입자는 자기부담금 수준과 보장 범위를 선택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세 차례 상품 개정이 있었지만, 비급여를 특약으로 분리하는 식의 조치만 이뤄졌을 뿐이다. 7월부터 4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는 비급여를 이용한 만큼 보험료를 차등해 적용받지만, 가입자 개인별 맞춤형 적용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비급여 과잉 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21년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병원이 비급여 진료비용 정보를 병원 내부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비급여 보고체계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일부 의료기관은 비급여 진료비용을 업데이트하지 않거나 환자가 홈페이지에서 찾기 어렵게 해놨다.
비급여 관리 체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복지부는 최근에서야 의료개혁특위를 출범하고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 비(非) 중증 과잉 비급여에 대한 혼합진료 금지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역시 별도의 보험개혁회의를 구성해 실손보험의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한 상품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료 공급 측면의 제도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비급여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문제가 되는 주요 비급여 진료 항목에 대해서는 해당 전문과목 의학회에서 진료 적정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용하는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