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 들어온 해외 투자금이 상반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일본, 대만 등 주변국 증시 대비 크게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시장에서 정부의 기업 밸류업 관련 주식과 인공지능(AI)에 올라탄 반도체 주식을 쓸어 담았다. 반면 개인투자자는 국내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고 미국과 일본 증시로 떠나면서 지수 상승에 찬물을 끼얹었다.
외국인 '역대급 매수'에도…대만증시 30% 뛸 때, 코스피는 5% 올라

외인 자금 57% 반도체에 집중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해 상반기 유가증권시장에서 22조798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1998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사상 최대다. 직전 기록인 2009년(11조9832억원)의 약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외국인은 최근 한 달간 1조5524억원어치를 사들이는 등 매수세를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의 역대급 ‘바이 코리아’ 배경에는 AI 산업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있다. 외국인은 올 상반기 삼성전자(우선주 포함)를 9조1427억원어치 순매수했다. SK하이닉스(3조8039억원)까지 합치면 전체 순매수 금액의 57%를 ‘반도체 투톱’에 썼다.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SK하이닉스 주가는 올 들어서만 67.14% 오르는 등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이세철 씨티글로벌마켓증권 글로벌테크 리서치헤드는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에서 앞서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면서 목표주가를 35만원까지 올렸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해외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외국인은 상반기 현대차(3조4541억원), 삼성물산(1조3202억원), KB금융(6065억원) 등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인 저평가 종목을 집중 매수했다. 목대균 KCGI자산운용 운용총괄대표(CIO)는 “외국계 운용사들로부터 밸류업 프로그램에 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작년 일본 증시의 성공을 지켜본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입도선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인하하면서 원화 가치가 하락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도 외국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있다.

기관·개인은 국내 증시 외면

밀물처럼 들어오는 외국인 자금에도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고작 5.37%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대만 자취안지수는 28.45% 급등하고 일본 닛케이255지수는 18.28% 상승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주식형 펀드 수급을 보면 한국으로 172억달러가 유입됐고 대만에선 6억9000만달러가 유출됐는데 지수 상승률은 오히려 대만이 크게 앞섰다”고 설명했다.

기관과 개인이 외국인과 반대로 움직이면서 사상 최대 규모로 국내 주식을 매도한 영향이다. 기관과 개인은 올 들어 각각 18조1364억원, 4조515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코스피의 발목을 잡았다. 국내 증시를 향한 뿌리 깊은 불신과 오랜 박스권에 대한 피로가 ‘팔자’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주식을 팔아치운 개인은 앞다퉈 미국 증시로 떠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의 미국 주식 보관 금액은 862억2001만달러(약 119조원)로 2011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대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말(84억1565만달러)과 비교하면 4년 반 만에 10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국내 최대 기관인 국민연금도 국내 투자 비율을 줄이고 해외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내 투자자 자리를 외국인이 메우면서 글로벌 경기 흐름에 따라 앞으로 국내 증시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만수/박한신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