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소프트웨어(SW) 연구소를 설립한다. 자동차 경쟁력의 중심축이 하드웨어(HW)에서 SW로 바뀌는 점을 감안해 세계 최고 프로그래머가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두기로 한 것이다. 테크 기업이 아닌 자동차 회사가 SW 전용 연구소를 세우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회의를 거쳐 실리콘밸리 연구소 설립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실무는 송창현 현대차 AVP(첨단차 플랫폼)본부장 겸 차량SW담당 사장이 맡았다. 4000여 명의 엔지니어가 일하는 AVP본부가 SW연구소 밑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빅테크 출신 엔지니어를 전방위적으로 영입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향후 자동차는 ‘움직이는 스마트폰’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전쟁의 승부는 SW에서 날 것”이라며 “현대차가 실리콘밸리 연구소 설립에 나선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AVP본부와 국내외 자회사인 포티투닷, 모셔널 등을 중심으로 차량 운영시스템(OS),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자율주행 시스템, 해킹 방지 시스템 등 각종 SW를 개발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연구소는 당장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보다 5~10년 뒤에 사용될 선행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에 SW 연구소 설립…'움직이는 스마트폰' SDV
2028년 시장 규모 600兆 육박…10년뒤 쓰일 선행기술 연구할 듯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소프트웨어(SW)연구소를 세우는 것은 그룹의 미래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SDV는 똑똑한 운영체제(OS)와 재미있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안전한 자율주행 알고리즘 등 차별화한 SW로 무장한 차량을 말한다.

SDV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테슬라를 필두로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회사, 화웨이를 비롯한 테크회사까지 SDV 소프트웨어에 ‘올인’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케츠앤드마케츠는 이런 점을 감안해 지난해 2709억달러(약 387조원)이던 글로벌 SDV 시장이 2028년 4197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가 실리콘밸리 SW연구소 설립에 나선 배경이다. 세계 SW 인재가 모여드는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마련해야 ‘현대차의 미래’를 책임질 최고급 인재를 대거 확보할 수 있다. 전자·기계 장치의 집합체인 자동차의 특성상 스마트폰이나 통신장비 SW 개발 인력을 자동차 SW 개발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다는 것도 현대차가 실리콘밸리를 찾은 이유 중 하나다.

현대차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SW 기본기가 탄탄한 회사 중 하나로 꼽힌다. 도요타 폭스바겐 등과 함께 몇 안 되는 자체 OS를 갖춘 완성차회사여서다. 하지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나 자율주행 알고리즘 분야에선 테슬라는 물론 BYD, 샤오미 등 중국 전기차회사에 밀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 등 경영진이 지난 4월 찾은 중국 상하이모터쇼에서 중국 전기차회사들의 SW 기술을 직접 본 뒤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리콘밸리 SW연구소가 문을 열면 현대차그룹 연구개발(R&D) 전반에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의 차량 R&D 조직은 △SW △하드웨어(HW) △디자인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 중 차량과 수소연료전지, 전동화 개발 등은 HW를 담당하는 현대차 R&D본부가 맡고 있고, SW는 현대차 AVP본부가 책임지고 있다. 송창현 현대차 AVP본부장 겸 차량SW담당 사장은 차량용 OS 등을 개발하는 포티투닷 사장도 함께 맡고 있다. 포티투닷은 올초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지사를 세우고 현지 SW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연구소는 5~10년 뒤 차량에 장착될 만한 선행 연구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개발한 성과를 AVP본부와 포티투닷 등에서 현실에 맞게 다듬은 뒤 남양연구소에서 최종 장착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재후/신정은/이상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