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8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8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SK그룹이 2028년까지 100조원 이상을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다. ‘AI 반도체’로 불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하드웨어와 AI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개인 비서 등 AI 서비스를 아우르는 종합 AI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드는 투자자금은 자산 매각과 중복사업 통합, 비효율 걷어내기 등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SK그룹은 지난 28~29일 경기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최고경영진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이 같은 미래 경영 방향을 확정했다고 30일 발표했다. 미국 출장 중인 최태원 회장은 화상으로 참석해 “AI 서비스부터 반도체 등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는 5년 동안 10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중 80%(82조원)를 HBM 등 AI 관련 사업에 투입한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같은 기간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3조4000억원을 투입한다.

SK그룹은 3년 내 각 계열사에서 80조원의 투자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신사업 투자를 자제하고 본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운영 개선’(OI·Operation Improvement) 작업을 통해 3년 안에 30조원의 잉여현금흐름을 만들기로 했다. 최 회장은 미래 산업으로 키워온 친환경·화학·바이오사업 부문과 관련해 “선택과 집중, 그리고 내실 경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SK 관계자는 “이번 회의의 핵심 결론은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basic)로 요약된다”며 “미래 성장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투자하던 것을 정리하고 AI처럼 시장이 활짝 열린 분야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뉴SK 키워드는 AI"…돈 되는 사업에 올인
SK '선택과 집중' 승부수…이틀간 이천서 경영전략회의

“SK그룹을 인공지능(AI) 기업으로 바꾸겠다는 사실상의 ‘뉴 SK’ 선언이다.”

지난 28~29일 열린 SK그룹 경영전략회의 결과에 대해 SK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친환경, 바이오 등 세 개 축으로 분산돼 있던 그룹 역량을 AI와 반도체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방향키’를 돌리는 데 필요한 재원 확보 계획도 내놨다. 수소, 바이오 등 먼 미래에 투자하기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본업에 집중하는 동시에 중복 사업은 과감히 팔고 합쳐 80조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최태원 “AI 빼곤 할 얘기없어”

SK 최고경영진이 내놓은 ‘끝장 토론’ 결과는 AI 기업으로의 대전환이다. 미국 출장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화상회의에서 “지금 미국에선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을 정도로 AI 관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고 했다.

생성형 AI를 구현하는 필수 부품이 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주도권을 쥔 SK는 AI서비스와 AI데이터센터 등으로 AI사업 영역을 넓히기로 했다. 서비스 중심인 미국의 오픈AI나 하드웨어 중심인 엔비디아 등을 아우를 수 있는 종합AI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5년간 10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중 80%(82조원)를 HBM 등 AI 분야에 쏟아붓는다.

SK하이닉스는 약 20조원을 들여 청주 M15 공장의 빈 공간에 HBM 패키징 라인 등을 세우고 있다. 당초 낸드플래시용 최첨단 공장으로 계획한 M15X를 D램 생산기지로 바꿨다. 내년 3월 예정인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약 40조원을 투자한다. 업계 관계자는 “여기에 매년 4조~5조원 정도 들어가는 연구개발(R&D) 비용과 미국 인디애나에 들어설 최첨단 패키징 공장 투자 등도 예정돼 있다”며 “세계 AI기업 중에서도 유례없이 큰 규모의 투자”라고 말했다.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는 AI데이터센터 사업에 5년간 3조4000억원을 투입한다.
최태원 "AI 빼곤 할 얘기가 없다"…'위기의 SK' 통큰 베팅

“위기라서 사업재편하는 게 아니다”

SK는 시장의 관심이 쏠린 투자 재원 확보 방안도 공개했다. 상당액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에서 나올 전망이다. 증권가에선 SK하이닉스가 올해 21조6381억원 등 3년 동안 약 82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 전부를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수는 없는 만큼 80조원의 10~20%는 운영 개선과 구조조정, 그룹 내 중복 사업 통합을 통해 마련할 것이라는 게 SK의 설명이다.

SK그룹은 이미 그룹 차원의 운영 개선 작업에 나섰다. 운영 개선은 기존 사업의 효율을 높이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경영활동이다.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이번 경영전략회의에서 “수소 등 신사업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유와 석유화학 등 본업에서 더 큰 이익을 내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SK가 잘해온 분야에서 독보적인 1등이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현금 확보에도 나선다. SK네트웍스는 최근 SK렌터카를 82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고, SK㈜도 베트남 투자 지분 매각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지분 역시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여기에 그룹 내 사업 분야 중복 문제는 합병 등을 통해 해소한다.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219개에 달하는 계열사 수도 ‘관리 가능한 범위’로 줄일 계획이다.

이와 관련, 최 의장은 “SK그룹이 위기여서 사업을 재편하는 게 아니다. 미래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 재편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은 최근 몇 년간 느슨해진 조직 분위기도 다잡기로 했다. SK 관계자는 “경영전략회의에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는 정신을 모든 임직원이 공유해야 한다는 얘기가 여러 차례 오갔다”고 전했다. SK그룹은 거의 모든 계열사가 시행하고 있는 유연근무제, 자율좌석제, 재택근무 등도 각 회사 상황에 맞게 시행하기로 했다.

김우섭/김형규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