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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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행정부의 믿는 구석은 노동시장이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역대급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릴 때나 시중 유동성을 죄이는 시점에도 노동시장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노동시장을 받쳐줄 수 있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여러 업종 중에서도 고용 창출 효과가 가장 큰 건설과 자동차를 밀었습니다. 인프라 예산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보조금 혜택을 통해 건설업과 자동차 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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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 자금이 건설업과 자동차 산업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미국 노동시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난공불락 천하무적으로 인식되던 노동시장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지표상으론 여전히 강력하지만 미래 어느 시점에 큰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고용주간을 맞아 변곡점에 와있는 미국 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살펴보겠습니다.

꺾여버린 베버리지 곡선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베버리지 곡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 노동시장 상황을 잘 보여줬습니다. 베버리지 곡선은 구인율(빈 일자리율)과 실업률의 반비례 관계를 보여줍니다. 영국의 사회복지 제도를 설계한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동안 미 중앙은행(Fed)은 실업률 상승 없이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해왔습니다. 길은 좁지만 그 길은 열려 있다며 연착륙 가능성을 설파해왔습니다. 그 중심에 베버리지 곡선이 이었습니다.

X축을 실업률로 하고 Y축을 빈 일자리율로 두면 미국형 베버리지 곡선의 기울기가 상당히 가팔랐습니다. 빈 일자리가 줄어도 실업률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그런데 이제 미국형 베버리지 곡선 모양이 바뀌고 있다는 관측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을 보유한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인사인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와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가 멨습니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 사진=시카고 연은 홈페이지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 사진=시카고 연은 홈페이지
굴스비 총재는 지난달 24일 "미국 경제는 더 이상 과열 상태가 아니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실업수당 청구가 증가하고 소비 지출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런 정책이 경제를 너무 둔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데일리 총재는 "지금까지 노동시장은 천천히 조정됐고 실업률은 조금만 상승했지만 그렇게 긍정적인 결과가 덜 가능할 지점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골드만삭스의 분석은 좀더 구체적입니다. 지난 17일 나온 '변곡점'(Inflection Point)라는 보고서를 통해 노동시장이 대전환의 시기에 와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미국이 노동시장은 그동안 'L자형'의 베버리지 곡선상에서 꺽어지기 전의 점에 위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로에서 가로로 꺾이는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는 게 골드만삭스의 주장입니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 이후 가파른 베버리지 곡선에서 팬데믹 이전의 완만한 베버리지 곡선으로 돌아왔다"고 평가했습니다.

베버리지 따라가는 필립스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베버리지 곡선보다 더 유명한 필립스 곡선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필립스 곡선은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은 음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곡선입니다. 빈 일자리율 대신 인플레이션율이 세로축인 필립스 곡선에서도 미국형은 L자형이었습니다.

L자형 필립스 곡선에서도 미국은 변곡점에 있습니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한때 9%에서 3%대로 내려왔지만 실업률은 4%로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가로축이 평평하거나 전체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사실 베버리지 곡선과 필립스 곡선은 동음이의어입니다. Y축에 각각 빈 일자리율과 물가상승률을 가져왔지만 빈 일자리와 인플레이션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경제 상황이 좋으면 빈 일자리가 늘고 물가는 상승하기 마련입니다.

베버리지 곡선이나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지거나 평평한 국면으로 진입하면 이제는 실업률이 급격히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인 건수 800만 벽 깨지나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구인 건수는 주목받고 있습니다. 경기에 후행하는 노동시장에서 그래도 빠르게 고용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실업률이 오르기 전에 빈 일자리가 먼저 늘어납니다. 구인 건수는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4월 구인 건수는 805만9천000건으로 전월 대비 29만6천건 감소했습니다. 미국의 구인 건수는 2022년 3월 1200만명을 정점으로 계속 우하향하고 있습니다.

오는 2일 공개되는 5월 구인건수는 785만건 정도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2021년 2월 이후 3년 3개월만에 800만 벽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팬데믹 이전 수준에 근접한다는 얘기입니다.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전체 일자리에서 빈 일자리가 차지하는 구인율(job openings rate)도 내려가고 있습니다. 구인율은 4월에 4.8%로 2021년 1월 이후 3년 3개월 만에 5%대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실업률 4%의 의미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삼의 법칙'을 보면 아직 미국 노동시장은 건재합니다. 미국 중앙은행(Fed)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클라우디아 삼 박사가 고안한 법칙입니다. 최근 3개월 실업률의 이동평균이 지난 1년 중 가장 낮았던 실업률보다 0.5%포인트 높아지면 갑작스러운 경기침체가 온다는 내용입니다. 1970년 이후 과거 침체 사례에서 이 법칙은 모두 들어맞았습니다.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지난 1년 중 가장 낮았던 실업률은 지난해 7월의 3.5%입니다. 최근 3개월 실업률 평균은 3.9%입니다. 0.4%포인트 차로 아직 미국 경제는 침체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오는 5일 나오는 '6월 고용보고서'에서 미국 실업률이 4.1%로 상승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3개월 이동평균이 대략 4.0%가 됩니다. 최근 1년 중 가장 낮은 3.5%보다 0.5%포인트 높아집니다. 물론 실업률은 전체 경제활동인구를 실업자로 나눈 값이어서 최근 3개월의 이동평균 실업률은 3개월 실업률을 산술 평균한 값과 다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큰 차이는 없고 방향은 같습니다.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현재 시장이 예상하는 실업률은 4.0%입니다. 시장 컨센서스대로 실업률이 나온다면 소수점 둘째자리 이하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4월의 실업률이 3.9%이고 5월 실업률이 4.0%였기 때문에 6월 실업률이 4.0%로 나오면 3개월 실업률 이동평균이 3.9%가 될 수도 있고 4.0%가 될 수 있습니다.

3.9%로 반올림된 4월의 실업률은 3.864%였습니다. 4.0%로 표기된 5월 실업률은 3.964%였습니다. 6월 실업률이 4.02% 이상만 되면 산술적으로 실업률 3개월 평균이 3.95% 이상이 돼 실업률은 4%로 표기됩니다.

실업률 둘째자리 이하까지 따져야할 정도로 미국 노동시장 역시 변곡점에 이르렀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보다 더 위기인 바이든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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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시장보다 더 큰 위기에 있는 이는 바이든 대통령입니다. 11월 대선 첫 토론을 완전히 망쳐놓은 뒤 퇴진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고령 리스크는 이미 많이 노출돼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자신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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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목소리에 불명확한 발음, 버벅거리는 말투, 할 말을 잊어버리는 블랙아웃으로 대통령감으로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실업률 안 올라도 침체, 날벼락 맞은 美경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토론회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실시한 지지율 조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보수 매체이기는 해도 뉴욕포스트가 여론조사업체 레거와 함께 실시한 조사에서 바이든의 지지율은 42%였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50%)보다 8%포인트 낮았습니다. 지난해 9월 뉴욕포스트의 조사에선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각 41%, 44%였습니다.

같은날 서베이USA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43%의 지지율로 트럼프 전 대통령(45%)에게 2%포인트 차로 밀렸습니다. 서베이USA가 지난해 9월 진행한 조사에선 두 사람의 지지율은 43%로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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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과반인 280명을 확보해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시장 예측 플랫폼인 폴리마켓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성공 확률을 26일에 59%에서 65%로 올렸습니다. 이미 72%(CBS 조사)가 바이든 대통령이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다음달 19~22일 시카고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 전까지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이든의 운명은 미국 노동시장보다 더한 위기에 있습니다. 깔딱고개에서 바이든은 어떤 판단을 내릴 지 주목됩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