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지나도 끝없이 찬사 받을, 연출의 귀신 박찬욱의 '동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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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박찬욱은 이념과 국가에 대해 워낙 냉소적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그다지 믿음이 없는, 니체식 허무주의나 역사에 대한 거대한 상실감을 지닌 인물이다. 박찬욱은 모든 자신의 사상과 예술혼, 감각, 그 총합을 이번 드라마에 쏟아 부었다. 이런 드라마는 당장에 인기를 모으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앞으로 30년이나 50년, 아니면 100년 후에도 꾸준히 언급될, 지적인 예술작품이다.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포스터 / 사진제공. 쿠팡플레이](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03942.1.jpg)
예컨대 원작 소설 <동조자>의 66쪽에서 90쪽에 이르는 제3장은 대위 일행, 그리고 장군(토안 레)의 가족과 비밀경찰들이 사이공 함락 이후 베트남을 탈출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이들은 미군이 제공한 수송기 C-180을 타고 떠나야 하는데 이때 북베트남 정규군의 폭격이 빗발친다. 소설의 이 부분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에 이미지들이 잔뜩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지만 이를 몇 개의 시퀀스와 씬으로 이어 나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공정의 과정이다. 비행장까지 가는 버스 안은 세트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이륙하는 비행기의 동체는 실물이었을 것이며, 연속해서 이루어지는 폭발은 CG였을 것이다. 이륙하는 비행기 꽁무니를 향해 달리는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은 실사와 CG를 합성했을 것이다. 드라마 ‘동조자’의 에피소드1에 나오는 사이공 탈출 장면은 이 드라마 전체에서 압권이며 박찬욱의 영화 디자인 능력과 아이큐 지수가 최고조로 발휘된 것임을 보여 준다.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의 한 장면 / 사진출처. 예고편 영상 캡처](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04043.1.jpg)
메이렐레스 감독은 이 4부의 에피소드를 프란시스 F.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제작기나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을 연상하게끔 찍었다. 드라마 속 영화의 미친 대위(데이빗 듀코브니)는 ‘지옥의 묵시록’의 대령(말론 브란도)이나 ‘플래툰’의 중사 반스(톰 베린저)을 합친 캐릭터이고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미군 역(존 조)은 ‘플래툰’의 윌렘 대포를 연상시킨다. 4부는 명백하게 지금까지 만들어져 온 베트남 영화들에 대한 메타 비평과 같은 에피소드이며 역설의 오마주를 담고 있는 스토리이다.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의 한 장면 / 사진출처. 예고편 영상 캡처](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04089.1.jpg)
주인공 대위의 전쟁이 끝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면서까지 계속되는 이유는, 베트남 공산당이 천신만고 끝에 조국을 통일했다손 치더라도 사이공을 탈출한 장군 일파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전역에서 반 베트남 운동을 벌이고 반 혁명운동을 펼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장군의 부관으로 심어 놓은 자신들의 유능한 첩자이자 밀정, 열혈 공산주의자인 대위를 전쟁이 끝난 후에도 탈출한 장군 휘하에 바짝 붙게 하기로 결정한다. 대위의 스파이 임무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는 이유이다.
주인공 대위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점점 더 상실해 간다. 그는 사실 자신이 미국(식 자본주의)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대위는 일본계 미국 여자 소피아(산드라 오)와의 사랑과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그 모든 걸 당을 위해서라고 자위하거나, 아니면 장군의 계획을 무산시켜 무모한 군사작전에 동원될 친구를 보호하겠다는 변명을 내세울 뿐이다. 대위는 자신이 어느 쪽 편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스틸컷 / 사진출처. 연합뉴스](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03957.1.jpg)
주인공 대위와 그의 친구 본(프레드 응우엔 칸)은 인도네시아를 거쳐 사이공에 잠입하는 군사작전에 참여하다 베트남 공산 정규군에 체포돼(이것 역시 대위가 사전에 알려준 정보에 따른 것이다. 주인공은 결국 스스로 투항한 셈이 된다.)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가고 이 모든 진술서를 쓰게 되는 일의 시작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드라마는 머리에서 꼬리로, 꼬리에서 머리로 이야기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게 만든다.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스틸컷 / 사진출처. 연합뉴스](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03958.1.jpg)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의 한 장면 / 사진출처. 예고편 영상 캡처](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04023.1.jpg)
로버트 다우니 Jr.의 1인 5역(CIA요원 클로드, 해머 교수, 상원의원 네드 고드윈, 영화감독 니코스 다미아노스, 주인공 대위의 아버지이자 신부)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마케팅되고 있지만 ‘동조자’는 그 모든 걸 주도해 낸, 압도적인 시나리오와 연출 감각이 만들어 낸 결과의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옳다. 박찬욱의 이번 ‘동조자’는 그가 숙성의 단계를 넘어 마에스트로의 입지에 다다른 지 이미 오래됐음을 보여준다. 비평계의 찬사가 오래 이어질 것이다.
![박찬욱 감독 / 사진제공. CJ ENM](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0426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