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가> 완창에 대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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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자람의 소리
필자는 최근 동편제 판소리인 박봉술제 송순섭 바디<적벽가> 완창 공연을 했다.
9년 만의 전통 판소리 완창 공연이었고, <적벽가> 완창은 2010년(의정부 예술의전당) 이후 14년 만이었다. 얼마 전 장시간의 판소리 공연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경험한 이후 무대 위에서 구도하듯 장시간 소리 하는 것의 가치가 소리꾼의 신체 훼손보다는 크지 않다는 확신을 얻었기에, 이번 <적벽가> 완창은 전체 3시간 20분 정도의 길이를 1회 공연 약 100분 길이로 이틀에 걸쳐, 더불어 양일 사이에 하루의 쉬는 시간을 확보해 두고 진행했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소리꾼 동료에게 “고마워요. 박동진 선생님이 완창을 만들었으면 언니가 완창을 나눠서 하는 일을 시작해 줬어요. 소리꾼들이 꼭 완창하면서 무대 위에서 죽기 살기로 할 건 아니잖아요.”라는 인사와 “두 시간 넘으면 소리꾼도 힘들지만 사실 관객으로서도 힘들었어요.”라는 인사들을 들었으니, 전통 판소리 전 바탕 완창을 반으로 나누어 진행한 이번 완창 공연으로 소리꾼인 나 자신과 여타 소리꾼들의 완창 문화에 도움되는 선례를 시작한 것이라 자부한다.
<적벽가>가 전통 판소리 5대가 중에서도 얼마나 매서울 만큼 힘든 작품인지는 판소리 조금 아는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본 사실이다. 뭐가 힘드냐고? 가장 힘든 것은 소리꾼의 체력이다. 신체에 힘이 많이 쓰이는 음악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음악 구성이 장중하고 엄숙하다고 일컬어지는 동편제를 기반으로 짜여 있다. 전쟁 이야기를 음악으로 짜 놓았기에 높은음으로 계속 소리를 ‘들어서 내야’**하는 대목이 많고, 크고 강력한 음압으로 단어나 문장을 시작하여 내는 경우가 많다.(펑, 쿵, 쾅, 피르르르와 같이 전쟁 속에서 들을 법한 수많은 큰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 쉬운 예이다.) 이러한 음악적 짜임새와 소리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계속 높은 복압을 사용해서 소리를 진행해야 한다. 또 다른 힘든 점은 조선시대 양반 지식층의 화려한 글짓기로 지어진, 현대 구어와 완전히 동떨어진 가사로 이루어진 특징이다. 뜻을 숙지하고 입으로 내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생활 속에서 입에 완전히 붙어있는 언어들이 아니기에 연습 중에 멀쩡하게 내뱉고 있다가도 갑자기 ‘어라? 이게 ‘계’ 자로 시작해야 하던가 ‘대’ 자로 시작해야 하던가?’하고 스스로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부르는 내가 확신이 가득해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기에 어려운 한자어들 앞에서 정신 꽉 붙잡고 말을 뱉으며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많은 명창 어르신들이 “<적벽가>가 참 어려운 소리제.”라 말씀하시는 이유를 짐작해 보자면, 일반적으로 내는 판소리 발성과 달리 ‘일부러 눌러내지 않으면서도 힘 있는 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근자에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주겠다.
얼마 전 출강 중인 학교의 기말고사 심사를 위해 심청가 보유자이신 선생님과 함께 시험에 참관했다. <적벽가>를 하러 들어온 학생의 소리를 들은 후 쉬는 시간에 필자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거 예전에 아쟁 명인이 박봉술 선생한테 <적벽가>를 배우러 갔었단 말야. 근데 첫 아니리를 다 하고서 ‘도원이’라고 중머리 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그 명인이 ‘(목을 잔뜩 눌러서 억지로 찌그러트린 소리를 내며)도원이’하고 받아서 박봉술 선생이 버럭 화를 냈다는 거야. 자네 목소리로 하라고. 근데 그게 잘 안돼서 글쎄 ‘도원이’만 배우고 때려치웠다고 하더라고.”
우스개 옛이야기를 하시듯 말씀하셨으나 그 안에는 가르침이 있었다. <적벽가>를 전수하고 있는 필자에게 학생들을 가르칠 때 목을 눌러 내도록 가르치지 않는가 점검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날, 집에서 <적벽가>를 연습하며 내가 혹 내가 가진 본연의 목소리 이상으로 힘 있는 목소리인 척하느라고 목을 부러 눌러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음을 잘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승님의 목소리를 그저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민한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러한 이유들로 <적벽가>는 여러모로 다른 전통 판소리 들에 비해 어렵다고 한다. 필자는 <적벽가> 연습하는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기에 이러한 어려움 정도야 그 명성에 참 어울리는 정도지, 하고 생각했었다. 허나 양일의 공연을 진행하면서 ‘아… 이거구나. 이래서 <적벽가> 너무도 어렵구나.’ 하고 여실히 느낀 것이 있다. 첫날 100분가량의 <적벽가> 전반부 공연을 한 후 휴식을 취하던 익일이었다. 예상했던 몸 상태는 ‘사지가 무거워 땅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통증’ 정도였다. 한데 예상 밖의 기이한 통증이 찾아왔으니, 앉지도 서지도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지는 이상한 통증이었다. 몸에서는 계속 열이 나 덥고도 땀이 나고 서늘하고도 더운, 몸의 온도계가 고장 난 듯한 기분이었다.
‘어라, 이거 뭔가 익숙한데? 어라, 이거 8시간 완창 후에 겪었던 그 통증이랑 비슷한걸? 아, 이거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맞다 맞다 잊고 있었다. <적벽가>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은 사실 맨 앞 1시간이었다. 그걸 잊고 어제 힘 조절 없이 다 쏟아버렸다. 이래서는 어떻게 내일 공연을 이어가지. 이 몸으로 어떻게 적벽대전을 한담.’ 신장이 8척 9척 되는, 각기 기개가 넘치는 장수들을 표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표현하느라 힘을 넘치도록 쓴 후유증인 것이다. 어떻게 이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닥치는 대로 몸에 힘이 된다는 것들을 먹고 마시면서도, 잠은 쉬이 들지 않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깨어난 다음 날은 어떻게 무대에 섰는지도 모르게 서 있었다. 단단하게 자리잡혀있던 수많은 한자어 들이 자꾸 부스스하고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이다음 가사가 뭐더라, 틀리려나? 아아 다행이다 무사히 넘어간다. 근데 이다음은 뭐더라? 틀리려나? 아니 이자람아, 왜 이러니? 너는 이걸 수백 번 입으로 내뱉었었고 네 몸 안에 다 있는 이야기와 가사들이다. 너는 어째서 지금 그 모든 것들을 놓아 버리려고 하는 거지? 그간의 노력을, 너의 스승님을, 지켜보는 관객을 생각해 보자. 힘든 너의 몸을 생각하지 말고, 괜히 가사들에게 시비 걸지 말고 말이다.’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20년의 노하우로 방패를 쳐 가리고선, 내 안의 ‘지쳐서 도망가고 싶어 하는 나 자신’과의 큰 싸움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나는 관객의 도움을 받고, 고수의 응원을 받고, 동문수학하는 소리꾼의 도움(필자의 스승님인 송순섭 선생님께 <적벽가>를 사사한 문하생 지인이 양일간 가사가 막히는 순간마다 다음 가사를 객석에서 시원하게 불러주어 순간순간을 면했다. 이 또한 완창 공연의 하나의 문화이자 미덕이자 재미라 생각한다.)을 받아 가며 도망하려는 나의 멱살을 잡아끌고 와 무대 위에서 함께 손을 잡고 지나갔다. 완창은 큰 축제처럼 내 삶을 한바탕 신나게 춤추게 하면서 무사히 지나갔다. 아직도 완창 공연 기간에 주고받은 사랑과 응원, 기쁘고 즐거움 마음들이 몸에 남아 마음 어두울 새 없이 매일이 행복한 상태다. 예상했던 어려움과 예상을 넘어선 괴로움, 예상했던 고마운 응원들과 예상을 넘어선 소중한 손길들이 마치 인생에서 겪게 되는 관혼상제를 겪는 듯 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이래서 완창을 하는구나. 준비 기간에는 이 소리, 이 가사, 이 문화 속으로 홀로 헤엄쳐 들어가 내 몸에 축적된 - 내가 이 전통 판소리 한바탕과 마주해 온 시간을 점검한다면, 공연이 올라가는 시간에는 조상들이 마련한 호수에서, 물 위에 뜬 건더기를 내 손으로 일일이 치우고 물 온도를 조절해가며 손님맞이를 하는 것이구나. 이 호수에 놀러 온 사람들과 함께 헤엄치며 노는 거구나. 헤엄치다가 숨이 가쁘고 몸에 힘이 빠져 꼬르륵거리다가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야야 힘 좀 내봐라!” 하고 나를 건져 올려놔 주는 일이구나. 이 기쁨이 일상으로 흘러들어와 몇 날 며칠이나 머무는 것이구나.
소리를 마주한 시간이 이전보다 더 쌓인 채로 준비하고 경험했던 완창 공연은 이전보다도 더 값지고 기쁜 일로서 내 인생을 채우고 지나갔다. 이렇게 내 삶의 뿌리가 되는 전통 판소리를 점검했으니, 아마 이다음은 또 새로운 이야기로 창작 판소리를 짓는 일일 것이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이 기쁨이 기억으로 희석되어 나는 또 캄캄해져 길을 헤맬 것이고, 그러면 그때 또 새삼스레 전통 판소리의 호수로, 바다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판소리 공부하길 참 잘했다.
소리꾼 이자람
* [이전 칼럼] 소리꾼의 직업병
** 곡의 주 선율들이 본청이 되는 음의 옥타브 위의 음과 그 주변 음들로 짜여서 높은 음가로 진행되는 소리들에 대해 하는 말이다. “적벽가는 소리를 계속 들어서 내니까 힘들지”와 같은 말은 명창 어르신들에게 자주 들은 말이다.
9년 만의 전통 판소리 완창 공연이었고, <적벽가> 완창은 2010년(의정부 예술의전당) 이후 14년 만이었다. 얼마 전 장시간의 판소리 공연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경험한 이후 무대 위에서 구도하듯 장시간 소리 하는 것의 가치가 소리꾼의 신체 훼손보다는 크지 않다는 확신을 얻었기에, 이번 <적벽가> 완창은 전체 3시간 20분 정도의 길이를 1회 공연 약 100분 길이로 이틀에 걸쳐, 더불어 양일 사이에 하루의 쉬는 시간을 확보해 두고 진행했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소리꾼 동료에게 “고마워요. 박동진 선생님이 완창을 만들었으면 언니가 완창을 나눠서 하는 일을 시작해 줬어요. 소리꾼들이 꼭 완창하면서 무대 위에서 죽기 살기로 할 건 아니잖아요.”라는 인사와 “두 시간 넘으면 소리꾼도 힘들지만 사실 관객으로서도 힘들었어요.”라는 인사들을 들었으니, 전통 판소리 전 바탕 완창을 반으로 나누어 진행한 이번 완창 공연으로 소리꾼인 나 자신과 여타 소리꾼들의 완창 문화에 도움되는 선례를 시작한 것이라 자부한다.
<적벽가>가 전통 판소리 5대가 중에서도 얼마나 매서울 만큼 힘든 작품인지는 판소리 조금 아는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본 사실이다. 뭐가 힘드냐고? 가장 힘든 것은 소리꾼의 체력이다. 신체에 힘이 많이 쓰이는 음악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음악 구성이 장중하고 엄숙하다고 일컬어지는 동편제를 기반으로 짜여 있다. 전쟁 이야기를 음악으로 짜 놓았기에 높은음으로 계속 소리를 ‘들어서 내야’**하는 대목이 많고, 크고 강력한 음압으로 단어나 문장을 시작하여 내는 경우가 많다.(펑, 쿵, 쾅, 피르르르와 같이 전쟁 속에서 들을 법한 수많은 큰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 쉬운 예이다.) 이러한 음악적 짜임새와 소리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계속 높은 복압을 사용해서 소리를 진행해야 한다. 또 다른 힘든 점은 조선시대 양반 지식층의 화려한 글짓기로 지어진, 현대 구어와 완전히 동떨어진 가사로 이루어진 특징이다. 뜻을 숙지하고 입으로 내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생활 속에서 입에 완전히 붙어있는 언어들이 아니기에 연습 중에 멀쩡하게 내뱉고 있다가도 갑자기 ‘어라? 이게 ‘계’ 자로 시작해야 하던가 ‘대’ 자로 시작해야 하던가?’하고 스스로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부르는 내가 확신이 가득해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기에 어려운 한자어들 앞에서 정신 꽉 붙잡고 말을 뱉으며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많은 명창 어르신들이 “<적벽가>가 참 어려운 소리제.”라 말씀하시는 이유를 짐작해 보자면, 일반적으로 내는 판소리 발성과 달리 ‘일부러 눌러내지 않으면서도 힘 있는 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근자에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주겠다.
얼마 전 출강 중인 학교의 기말고사 심사를 위해 심청가 보유자이신 선생님과 함께 시험에 참관했다. <적벽가>를 하러 들어온 학생의 소리를 들은 후 쉬는 시간에 필자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거 예전에 아쟁 명인이 박봉술 선생한테 <적벽가>를 배우러 갔었단 말야. 근데 첫 아니리를 다 하고서 ‘도원이’라고 중머리 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그 명인이 ‘(목을 잔뜩 눌러서 억지로 찌그러트린 소리를 내며)도원이’하고 받아서 박봉술 선생이 버럭 화를 냈다는 거야. 자네 목소리로 하라고. 근데 그게 잘 안돼서 글쎄 ‘도원이’만 배우고 때려치웠다고 하더라고.”
우스개 옛이야기를 하시듯 말씀하셨으나 그 안에는 가르침이 있었다. <적벽가>를 전수하고 있는 필자에게 학생들을 가르칠 때 목을 눌러 내도록 가르치지 않는가 점검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날, 집에서 <적벽가>를 연습하며 내가 혹 내가 가진 본연의 목소리 이상으로 힘 있는 목소리인 척하느라고 목을 부러 눌러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음을 잘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승님의 목소리를 그저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민한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러한 이유들로 <적벽가>는 여러모로 다른 전통 판소리 들에 비해 어렵다고 한다. 필자는 <적벽가> 연습하는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기에 이러한 어려움 정도야 그 명성에 참 어울리는 정도지, 하고 생각했었다. 허나 양일의 공연을 진행하면서 ‘아… 이거구나. 이래서 <적벽가> 너무도 어렵구나.’ 하고 여실히 느낀 것이 있다. 첫날 100분가량의 <적벽가> 전반부 공연을 한 후 휴식을 취하던 익일이었다. 예상했던 몸 상태는 ‘사지가 무거워 땅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통증’ 정도였다. 한데 예상 밖의 기이한 통증이 찾아왔으니, 앉지도 서지도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지는 이상한 통증이었다. 몸에서는 계속 열이 나 덥고도 땀이 나고 서늘하고도 더운, 몸의 온도계가 고장 난 듯한 기분이었다.
‘어라, 이거 뭔가 익숙한데? 어라, 이거 8시간 완창 후에 겪었던 그 통증이랑 비슷한걸? 아, 이거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맞다 맞다 잊고 있었다. <적벽가>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은 사실 맨 앞 1시간이었다. 그걸 잊고 어제 힘 조절 없이 다 쏟아버렸다. 이래서는 어떻게 내일 공연을 이어가지. 이 몸으로 어떻게 적벽대전을 한담.’ 신장이 8척 9척 되는, 각기 기개가 넘치는 장수들을 표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표현하느라 힘을 넘치도록 쓴 후유증인 것이다. 어떻게 이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닥치는 대로 몸에 힘이 된다는 것들을 먹고 마시면서도, 잠은 쉬이 들지 않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깨어난 다음 날은 어떻게 무대에 섰는지도 모르게 서 있었다. 단단하게 자리잡혀있던 수많은 한자어 들이 자꾸 부스스하고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이다음 가사가 뭐더라, 틀리려나? 아아 다행이다 무사히 넘어간다. 근데 이다음은 뭐더라? 틀리려나? 아니 이자람아, 왜 이러니? 너는 이걸 수백 번 입으로 내뱉었었고 네 몸 안에 다 있는 이야기와 가사들이다. 너는 어째서 지금 그 모든 것들을 놓아 버리려고 하는 거지? 그간의 노력을, 너의 스승님을, 지켜보는 관객을 생각해 보자. 힘든 너의 몸을 생각하지 말고, 괜히 가사들에게 시비 걸지 말고 말이다.’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20년의 노하우로 방패를 쳐 가리고선, 내 안의 ‘지쳐서 도망가고 싶어 하는 나 자신’과의 큰 싸움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나는 관객의 도움을 받고, 고수의 응원을 받고, 동문수학하는 소리꾼의 도움(필자의 스승님인 송순섭 선생님께 <적벽가>를 사사한 문하생 지인이 양일간 가사가 막히는 순간마다 다음 가사를 객석에서 시원하게 불러주어 순간순간을 면했다. 이 또한 완창 공연의 하나의 문화이자 미덕이자 재미라 생각한다.)을 받아 가며 도망하려는 나의 멱살을 잡아끌고 와 무대 위에서 함께 손을 잡고 지나갔다. 완창은 큰 축제처럼 내 삶을 한바탕 신나게 춤추게 하면서 무사히 지나갔다. 아직도 완창 공연 기간에 주고받은 사랑과 응원, 기쁘고 즐거움 마음들이 몸에 남아 마음 어두울 새 없이 매일이 행복한 상태다. 예상했던 어려움과 예상을 넘어선 괴로움, 예상했던 고마운 응원들과 예상을 넘어선 소중한 손길들이 마치 인생에서 겪게 되는 관혼상제를 겪는 듯 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이래서 완창을 하는구나. 준비 기간에는 이 소리, 이 가사, 이 문화 속으로 홀로 헤엄쳐 들어가 내 몸에 축적된 - 내가 이 전통 판소리 한바탕과 마주해 온 시간을 점검한다면, 공연이 올라가는 시간에는 조상들이 마련한 호수에서, 물 위에 뜬 건더기를 내 손으로 일일이 치우고 물 온도를 조절해가며 손님맞이를 하는 것이구나. 이 호수에 놀러 온 사람들과 함께 헤엄치며 노는 거구나. 헤엄치다가 숨이 가쁘고 몸에 힘이 빠져 꼬르륵거리다가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야야 힘 좀 내봐라!” 하고 나를 건져 올려놔 주는 일이구나. 이 기쁨이 일상으로 흘러들어와 몇 날 며칠이나 머무는 것이구나.
소리를 마주한 시간이 이전보다 더 쌓인 채로 준비하고 경험했던 완창 공연은 이전보다도 더 값지고 기쁜 일로서 내 인생을 채우고 지나갔다. 이렇게 내 삶의 뿌리가 되는 전통 판소리를 점검했으니, 아마 이다음은 또 새로운 이야기로 창작 판소리를 짓는 일일 것이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이 기쁨이 기억으로 희석되어 나는 또 캄캄해져 길을 헤맬 것이고, 그러면 그때 또 새삼스레 전통 판소리의 호수로, 바다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판소리 공부하길 참 잘했다.
소리꾼 이자람
* [이전 칼럼] 소리꾼의 직업병
** 곡의 주 선율들이 본청이 되는 음의 옥타브 위의 음과 그 주변 음들로 짜여서 높은 음가로 진행되는 소리들에 대해 하는 말이다. “적벽가는 소리를 계속 들어서 내니까 힘들지”와 같은 말은 명창 어르신들에게 자주 들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