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포르투갈로 건너간 중국 찻주전자의 손잡이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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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새미의 공예의 탄생
주전자의 생애사
주전자의 생애사
격식을 차려서 차를 마시면 일상에서 잠시 멀어질 수 있다. 그 시간만큼은 무용한 것을 상상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도 갖는다. 그 시간을 위해 필요한 도구가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찻주전자이다. 장인이 나무 주걱으로 점토를 두드려 만든 자사호(紫沙壺). 관리를 잘해주면 차의 맛을 한층 끌어올려 주는 도구. 시간이 지날수록 광택을 내며 벗이 되어주는 그 주전자.
자사호는 16세기부터 중국 의흥(宜興市: 이싱)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유약을 발라 재벌한 자기와 달리 약 1200도 정도의 초벌만으로 제작되는 자사호는 기공이 있어 차 맛에 개입한다. 그래서 주전자가 생명이 있거나, 마법을 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치 기분을 헤아려 자사호가 맛을 변화시켜 주는 것 같다고 착각하게 된다. 자사호는 원료가 되는 자사 광석의 색에 따라 보라색의 자니, 붉은색의 주니, 노란색의 단니, 초록색의 청니, 그리고 검은색의 흑니 등으로 나뉜다. 자니와 단니는 기공이 커서 차의 맛을 부드럽게 해주고, 수축률이 높은 주니는 차의 맛을 명쾌하게 한다. 물론 자사의 함량이 얼마나 높은가, 어떤 불로 소성을 했는가(장작불인가 가스 불인가), 숙련된 장인 혹은 연습공이 만들었는가, 심지어 차를 마시는 사람의 그날 기분에 따라 차의 맛을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자사호만큼 차의 맛을 의존하는 차 도구가 또 있을까. 그래서 자사호는 감정적 대상이다.
자사호 명칭은 무엇을 닮았는가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고대 중국의 이름난 미녀 서시의 가슴은 서시호(西施壺), 미인의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어깨는 미인견(美人肩), 차를 담아 물에 띄웠을 때 수평을 유지한다고 하여 수평호(水平壺), 사찰의 범종은 덕종호(德鐘壺), 그리고 용의 알은 용단호(龍蛋壺)로 불린다. 서시호로 차를 우리면 서시와, 수평호로는 물과, 그리고 용단호로는 그 알을 낳은 용과 대화할 수 있고, 덕종호로 차를 우리면 저 멀리 사찰로부터의 종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뮤지엄(이후 V&A)은 장식미술과 응용미술의 보고이다. 1852년 사우스켄싱턴 뮤지엄으로 개관한 이곳은 1851년 세계 최초의 국제박람회를 위해 전 세계에서 런던에 도착한 사물을 연구해 영국이 산업 강국으로 태어나기 위한 아카이브 역할을 하던 공공기관이었다. 1차 소장품은 박람회로부터 구입했고, 이후는 지역적, 시대적, 그리고 재료별로 구분하여 소장품을 확대해 나갔다. V&A의 극동 지역 소장품 중 1700년경 의흥에서 제작된 자사호가 있다. 좀 독특한 이 주전자의 몸통은 주니 자사이다. 보석 세공하듯 섬세하게 연화문과 운문을 조각한 주전자 몸통 장식은 그 표면의 질감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세히 보면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이 주전자는 인간에 비유한다면 절단 환자가 의족을 착용한 상태이다. 부리와 뚜껑 손잡이의 절반가량은 은으로 만들어졌다. 유럽의 은주전자와 유사한 손잡이는 은으로 만든 난집과 같은 구조물에 끼워 자사 몸통에 부착했다. 어떻게 이런 비교예술학적 사물이 탄생하게 되었을까? 어떤 삶을 살았기에 영국 런던에 있는 박물관에서 연장된 삶을 허락받을 수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주전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주니 자사호는 해상 운송으로 유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다. 해상 운송이 대량 운송에 적합했고, 효율적이며,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형 범선이 주요 운송 수단이었으며, 중국에서 출발한 배는 동남아시아의 항구를 경유한 후 인도를 지나 중동 지역으로 이동했다. 수에즈 운하가 1869년 개통했기 때문에 이 자사호가 해상으로 운송되었다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향했을 것이다. 중국의 자사호는 대항해시대 동안 유럽과의 상업적 교역을 통해 서서히 전파되었다. 특히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같은 유럽의 해상 국가에서 고급 상품이었던 자사호는 독특한 재료적 속성과 아름다운 형태로 인해 상류층에서 인기가 높았다. 유럽 어딘가에서 조심스럽게 사용되던 이 자사호는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주두와 손잡이 부분이 유실되었다. 이 자사호의 주인은 이 사물을 처분하는 대신 새로운 생명을 주기로 결정한다. 같은 재료로 보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은 세공사에게 의뢰하여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 사이보그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뚜껑의 구슬 부분을 은과 자사로 반을 나누어 다시 디자인했다. 손잡이 부분은 열전도율을 낮추기 위해 유럽식 은제 찻주전자나 커피 주전자 손잡이에 나무를 조각해 적용했던 형태와 결합 방식을 차용했다. 또한 낡아서 헤어졌을, 뚜껑과 손잡이를 잇는 매듭 부분을 금속 체인으로 교체한 점도 흥미롭다. 고대 동양인에게 서양 중세 귀족의 옷을 입혀 놓은 상황이라 어색할 법도 한데, 대항해 시대의 비교예술학적 사물 안에서 벌어지는 문화 충돌은 의외로 놀랍도록 조화롭다.
조새미 공예 연구가•미술비평가
자사호는 16세기부터 중국 의흥(宜興市: 이싱)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유약을 발라 재벌한 자기와 달리 약 1200도 정도의 초벌만으로 제작되는 자사호는 기공이 있어 차 맛에 개입한다. 그래서 주전자가 생명이 있거나, 마법을 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치 기분을 헤아려 자사호가 맛을 변화시켜 주는 것 같다고 착각하게 된다. 자사호는 원료가 되는 자사 광석의 색에 따라 보라색의 자니, 붉은색의 주니, 노란색의 단니, 초록색의 청니, 그리고 검은색의 흑니 등으로 나뉜다. 자니와 단니는 기공이 커서 차의 맛을 부드럽게 해주고, 수축률이 높은 주니는 차의 맛을 명쾌하게 한다. 물론 자사의 함량이 얼마나 높은가, 어떤 불로 소성을 했는가(장작불인가 가스 불인가), 숙련된 장인 혹은 연습공이 만들었는가, 심지어 차를 마시는 사람의 그날 기분에 따라 차의 맛을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자사호만큼 차의 맛을 의존하는 차 도구가 또 있을까. 그래서 자사호는 감정적 대상이다.
자사호 명칭은 무엇을 닮았는가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고대 중국의 이름난 미녀 서시의 가슴은 서시호(西施壺), 미인의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어깨는 미인견(美人肩), 차를 담아 물에 띄웠을 때 수평을 유지한다고 하여 수평호(水平壺), 사찰의 범종은 덕종호(德鐘壺), 그리고 용의 알은 용단호(龍蛋壺)로 불린다. 서시호로 차를 우리면 서시와, 수평호로는 물과, 그리고 용단호로는 그 알을 낳은 용과 대화할 수 있고, 덕종호로 차를 우리면 저 멀리 사찰로부터의 종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뮤지엄(이후 V&A)은 장식미술과 응용미술의 보고이다. 1852년 사우스켄싱턴 뮤지엄으로 개관한 이곳은 1851년 세계 최초의 국제박람회를 위해 전 세계에서 런던에 도착한 사물을 연구해 영국이 산업 강국으로 태어나기 위한 아카이브 역할을 하던 공공기관이었다. 1차 소장품은 박람회로부터 구입했고, 이후는 지역적, 시대적, 그리고 재료별로 구분하여 소장품을 확대해 나갔다. V&A의 극동 지역 소장품 중 1700년경 의흥에서 제작된 자사호가 있다. 좀 독특한 이 주전자의 몸통은 주니 자사이다. 보석 세공하듯 섬세하게 연화문과 운문을 조각한 주전자 몸통 장식은 그 표면의 질감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세히 보면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이 주전자는 인간에 비유한다면 절단 환자가 의족을 착용한 상태이다. 부리와 뚜껑 손잡이의 절반가량은 은으로 만들어졌다. 유럽의 은주전자와 유사한 손잡이는 은으로 만든 난집과 같은 구조물에 끼워 자사 몸통에 부착했다. 어떻게 이런 비교예술학적 사물이 탄생하게 되었을까? 어떤 삶을 살았기에 영국 런던에 있는 박물관에서 연장된 삶을 허락받을 수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주전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주니 자사호는 해상 운송으로 유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다. 해상 운송이 대량 운송에 적합했고, 효율적이며,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형 범선이 주요 운송 수단이었으며, 중국에서 출발한 배는 동남아시아의 항구를 경유한 후 인도를 지나 중동 지역으로 이동했다. 수에즈 운하가 1869년 개통했기 때문에 이 자사호가 해상으로 운송되었다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향했을 것이다. 중국의 자사호는 대항해시대 동안 유럽과의 상업적 교역을 통해 서서히 전파되었다. 특히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같은 유럽의 해상 국가에서 고급 상품이었던 자사호는 독특한 재료적 속성과 아름다운 형태로 인해 상류층에서 인기가 높았다. 유럽 어딘가에서 조심스럽게 사용되던 이 자사호는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주두와 손잡이 부분이 유실되었다. 이 자사호의 주인은 이 사물을 처분하는 대신 새로운 생명을 주기로 결정한다. 같은 재료로 보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은 세공사에게 의뢰하여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 사이보그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뚜껑의 구슬 부분을 은과 자사로 반을 나누어 다시 디자인했다. 손잡이 부분은 열전도율을 낮추기 위해 유럽식 은제 찻주전자나 커피 주전자 손잡이에 나무를 조각해 적용했던 형태와 결합 방식을 차용했다. 또한 낡아서 헤어졌을, 뚜껑과 손잡이를 잇는 매듭 부분을 금속 체인으로 교체한 점도 흥미롭다. 고대 동양인에게 서양 중세 귀족의 옷을 입혀 놓은 상황이라 어색할 법도 한데, 대항해 시대의 비교예술학적 사물 안에서 벌어지는 문화 충돌은 의외로 놀랍도록 조화롭다.
조새미 공예 연구가•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