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동국제강, 대한제강 등 국내 1~3위 철근 기업이 가격 인상에 나섰다. 유통 가격이 원가 밑으로 형성될 정도로 시장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건설 경기 둔화로 철근 수요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실적 악화가 계속되자 철근 유통사들을 상대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

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근 1위 업체인 현대제철은 이날부터 봉·형강 등 철근의 최저 유통가격 범위를 정하고, 이보다 싸게 팔 때는 물량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유통사에 전달했다. 철근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이 이달부터 석 달간 순차로 최저 가격을 높인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철근 2위 업체인 동국제강도 철근 가격 방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국제강은 매달 마감 가격(최저 가격)을 서로 합의한 이후에도 철근을 할인해 파는 유통사에 ‘마감가 고시제’를 다시 실행할 계획이다. 지난 2월 선제적으로 도입했지만, 판매량이 크게 줄어 철회한 바 있다.

동국제강은 철근 제조에 쓰이는 중간재인 빌릿 수출을 확대하기로 했다. 완제품인 철근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게 평소엔 더 이익이지만, 최근 철근이 원가 이하로 팔리자 내놓은 대책이다. 3위 업체인 대한제강도 철근 가격을 내려서 수주하는 가공 업체들에 물량을 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걸었다.

철근 제조사들이 ‘고육지책’에 나선 건 이대로 가다간 적자의 늪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철근 제조사들은 올 1분기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제철의 1분기 영업이익은 5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3.3% 감소했다. 동국제강과 대한제강 영업이익 역시 각각 58.7%, 80.3% 줄었다.
"더는 못 견딘다"…'팔수록 손해' 철근 기업들 '초강수'

철근 유통사와의 힘 대결 불가피

국내 철근 유통 시장에 ‘이중 가격’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 현대제철 등의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회사와 장기 계약으로 판매하는 가격(t당 약 93만원)과 철근 유통사가 중소 건설사 등에 판매하는 유통 가격 간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진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철근 유통 가격은 지난해 4월 초 t당 100만원을 찍은 뒤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 말 철근 가격은 t당 68만5000원으로, 작년 6월 초(t당 97만원)보다 29.4% 떨어졌다. 철강기업들이 대대적으로 철근 감산에 나서며 지난달 21일(t당 67만원)보다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장기 계약자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셈이어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철근 제조사들의 이번 공세가 시장에서 효력을 발휘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철근 생산 규모는 연간 1300만t가량이다. 이 가운데 현대제철(연 335만t), 동국제강(275만t), 대한제강(155만t) 등이 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8%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근 판매량이 떨어지더라도 이를 감내하기 위해 초강수를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원가보다 싼 가격에 팔아 손실이 누적되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의미다.

건설 경기 부진으로 철근 수요가 크게 줄자 철근업체들은 대대적인 감산에 들어가 공급량을 조절하는 방안도 병행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인천공장 특별 보수를 지난 2월부터 이달까지 하고 있다. 통상 2~3주면 끝나는 보수 기간을 늘린 것은 감산을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동국제강은 지난달 3일부터 밤에만 공장을 돌리는 야간 생산 시스템을 가동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