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신조어만 있고 경제 비전 없는 與 전당대회
“신조어는 계속 나오는데 새로운 정책은 하나도 없네요.”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가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한 여당 관계자는 “전당대회 후보들이 집안싸움에만 매몰된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과의 관계를 두고 격한 설전을 주고받으며 ‘친윤’ ‘반윤’을 넘어 ‘창윤’(윤석열 정권 창출) ‘업윤’(업그레이드 윤석열) 같은 새로운 조어만 판치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당권 경쟁이 막을 올린 지 이제 1주일이 지났지만 당 안팎에서는 벌써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당권을 잡으면 추진하겠다는 정책이나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나경원 후보와 윤상현 후보가 자영업자와 배달 노동자 등을 겨냥해 플랫폼 규제를 언급한 게 전부다. 나 후보는 지난달 31일 서울 광장시장을 방문한 뒤 SNS에 “독과점 배달 플랫폼 기업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이익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썼다. 28일 일일 라이더 체험을 한 윤 후보도 “플랫폼 기업의 횡포를 많이 느꼈다. 이런 삶의 현장을 통해 국회에서 (플랫폼 관련) 입법에 힘을 줄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선 규제 완화와 경제 성장 등 보수 정당이 중점적으로 추진할 아젠다는 아니지 않냐는 지적이 많다. 그나마 한동훈, 원희룡 후보는 전당대회 출마 이후 민생·경제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아예 없다.

그사이 더불어민주당은 경제 정책을 주도하며 국회를 흔들고 있다. 안도걸 의원은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용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근거가 되는 법안을 1일 발의했다. 이상식 의원은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시 국가가 비용의 70% 이상을 지원하는 반도체 지원 법안을 내놨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당 대표 후보 간 기 싸움을 지켜보느라 법안 발의와 정책 토론은 뒷전인 상황”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소수 여당이어서 힘을 받기 어려운데 정책 주도권을 빼앗길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22대 국회 개원 초기만 해도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 경제 이슈가 많았다. 종합부동산세·상속세·법인세·금융투자소득세 등 세제 개혁 이슈가 대표적이다. 21대 국회 막바지 최대 쟁점이던 연금개혁도 새로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당권 후보들이 ‘O윤’ 전쟁을 벌이는 사이 이런 논의는 물밑으로 가라앉은 지 오래다.

“계파 대신 정책 경쟁을 하자”던 총선 이후 개혁파의 목소리도 낡은 구호가 돼 버렸다. 정쟁에 지친 국민에게 피부에 와닿는 경제 정책을 내놓는 당 대표 후보가 더 신선하지 않을까. 신조어 대신 새로운 비전이 나올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