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방위산업 업체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차세대 전투기 엔진 독자 개발에 나섰다. 국내 최고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화나 두산이 개발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자체 전투기 엔진 보유국이 된다.

1일 방위산업계에 따르면 한화와 두산은 최근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발주한 첨단엔진 개발 관련 ‘개념설계’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참여해 지난달 검증을 마쳤다. 두 회사는 본격적인 연구개발(R&D)을 의미하는 ‘기본설계’ 과정에 각각 뛰어들어 방위사업청 일감을 따낸다는 계획이다. 방위사업청은 향후 10년간 최소 3조원을 투입해 추력 1만5000파운드급 엔진을 개발하기로 했다. 지난달 생산에 들어간 한국형 전투기인 KF-21 엔진과 같은 급이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전투기 엔진 국산화 프로젝트에 항공기 엔진 부품 제조 노하우를 지닌 한화와 발전용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한 두산이 뛰어들었다”며 “엔진을 뺀 나머지 전투기 부품은 국산화가 완료된 만큼 독자 엔진 개발에 성공하면 한국도 자체 개발 전투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사업청은 한화와 두산이 서로 경쟁하는 대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합작 개발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 엔진을 독자 개발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 6개국뿐이다. 전투기 엔진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주요국이 전략자산으로 지정해 핵심 기술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아서다. 민간 기업으로는 미국 프랫&휘트니(P&W), 제너럴일렉트릭(GE), 영국 롤스로이스PLC 등 세 개 업체가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엔진 기술 확보는 한국 방위산업 포트폴리오가 전차, 미사일, 잠수함에 이어 전투기로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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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력 제품인 ‘K9 자주포’를 수출할 때마다 독일 눈치를 봐야 했다. K9 자주포에 장착된 MTU 엔진이 독일의 ‘국가 전략자산’으로 지정된 까닭에 자주포를 수출할 때마다 독일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와 도장을 찍기 직전까지 갔던 수출 계약이 무산된 것도 독일이 어깃장을 놓아서다.

이를 갈던 한화는 지난 2월 1000마력급 전차용 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해 K9 자주포에 장착하기 시작했다. 이제 K9 자주포를 수출할 때 독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독자 엔진’ 개발 나선 한화·두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전차 엔진에 이어 전투기 엔진도 개발에 나섰다. 한화는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이 만든 설계도 등을 토대로 항공기 엔진 핵심 부품을 제조하고 있다. 45년 동안 이 분야에 몸담은 만큼 상당한 제조 노하우를 쌓았다. 이를 기반으로 설계 능력을 갖춘 개발사로 진화한다는 계획이다.

가스터빈 시장의 강자인 두산에너빌리티도 엔진 개발에 합류했다. 두산이 2019년 세계 다섯 번째로 개발한 가스터빈은 국내 여러 화력발전소에 들어서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투기 엔진은 응축된 공기에 연료를 태워 터빈을 돌린다는 점에서 가스터빈 발전 방식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항공기 부품 제조 역량을 갖춘 한화와 터빈 기술을 보유한 두산이 힘을 합치면 전투기 엔진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점을 들어 합작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차세대 전투기에 들어갈 엔진 개발 관련 ‘개념설계’에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는 ‘기본설계’ 단계부터는 두 회사 모두 단독 참여한다는 의사를 방위사업청에 건넸다.

연구개발(R&D)에 드는 돈은 방사청이 댄다. 업계에선 사업비가 향후 10년간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재 개발과 부품 가공기술 내재화를 포함하면 사업비는 5조원 이상으로 훌쩍 뛴다. 엔진 개발에 성공하면 한국형 전투기 KF-21을 개량한 기체에 실린다.

한화와 두산이 자체 엔진 개발에 뛰어든 건 각국의 수출 통제 때문이다. 미국 등 35개국이 참여한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에 따라 첨단 무기와 부품은 개발사 승인 없이 수출할 수 없다. KF-21에 장착되는 엔진도 GE가 라이선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마음대로 수출할 수 없다. 해외에 기술을 이전할 수 없는 구조다 보니 항공 엔진의 핵심 기술은 영국 롤스로이스PLC와 미국 GE 및 프랫&휘트니(P&W) 등 3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M&A로 핵심 기술 확보

전투기 엔진 독자 개발은 한화가 오랫동안 공들여온 프로젝트다. 2019년 미국 항공 엔진 부품 업체 이닥(EDAC)을 3억달러에 인수한 것도 독자 엔진을 개발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한화는 이닥을 손에 넣으면서 엔진 외형인 고형체 제조 기술에 이어 핵심 부품인 엔진 회전체 제조 역량도 확보했다.

김종훈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 글로벌엔지니어링팀장은 “회전체 기술을 확보하면서 항공 엔진에 들어가는 모든 철강 부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됐다”며 “덤으로 110여 개에 달하는 미국 항공 엔진 부품 제조 네트워크도 갖췄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한화가 항공 엔진과 관련한 기술을 대부분 터득한 만큼 몇몇 부족한 기술만 채우면 독자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화는 엔진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현재 250명 정도인 연구 인력을 2028년 800여 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1일 엔진부품사업부와 항공사업부, 미래항공연구소를 통합한 ‘항공엔진사업부’를 출범했다.

두산도 3월 주주총회에서 ‘항공기 엔진 제작’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등 독자 엔진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발전용 가스터빈 제조 기술을 전투기 엔진에 접목한다는 구상이다. 엔진이 뿜어내는 1500도 이상 초고열을 이겨낼 수 있는 냉각 및 코팅 기술을 확보한 것도 두산이 독자 엔진 개발에 뛰어든 배경으로 꼽힌다.

오현우/김형규/김우섭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