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737 맥스 여객기 연쇄추락 사고와 관련해 항공기 제조사 보잉에 유죄를 인정하며 합의할 것을 제안했다.

미 법무부가 346명의 사망자를 낸 두 건의 추락 사고(2018년10월, 2019년3월)에 대해 보잉에 위법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형사 합의안을 1일(현지시간) 통보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잉은 오는 7일까지 법무부의 요구에 답변해야 한다. 만약 보잉이 유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법무부는 기소 절차를 밟아 보잉을 공식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형사 합의안에는 4억8720만달러(약 6750억원)의 벌금을 납부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3년간 사내 안전 및 규정 준수 여부를 점검할 독립적 감사관을 임명하고, 피해자 가족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것도 요구했다. 미 법무부는 추가적인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5~6년 전 사건을 왜 이제야 기소했나?

2018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탄중프리옥항에서 조사관들이 라이온에어 여객기 추락 사고에서 수습된 물품을 확인하고 있다. 보잉 737 맥스 기종인 라이온에어 610편은 2018년 10월 29일 이륙 한지 단 몇 분 만에 추락해 전원 사망했다. /AP연합뉴스
2018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탄중프리옥항에서 조사관들이 라이온에어 여객기 추락 사고에서 수습된 물품을 확인하고 있다. 보잉 737 맥스 기종인 라이온에어 610편은 2018년 10월 29일 이륙 한지 단 몇 분 만에 추락해 전원 사망했다. /AP연합뉴스
이같은 조치는 보잉이 3년 간의 기소유예 기간 중 또다른 사고를 낸 데 따른 것이다. 보잉은 2021년 737 맥스 연쇄추락 사고와 관련해 미 법무부와 25억달러(3조4600억원)에 합의했다. 당시 보잉은 737 맥스의 설계에 결함이 있음을 알고도 미 연방항공청(FAA)을 속인 혐의를 받았다. 이에 관한 형사 기소를 피하는 대신 규정 준수 관행을 점검하고 정기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기소유예는 지난 1월7일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만료를 이틀 앞두고 알래스카항공의 보잉 737 맥스 9 여객기가 5000m 상공 비행 중 동체에 냉장고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리며 비상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예비조사 결과 비행기 조립 시 문을 고정하는 볼트 4개가 누락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지난 5월 보잉이 2021년 합의를 어겼다고 판단해 보잉을 형사 기소했다.

로이터통신은 "보잉의 사법 리스크가 비행기 제조업의 위기를 심화해 추가적인 재정적 파급 효과와 더 엄격한 정부 감독을 불러올 것"이라며 "유죄 판결은 보잉이 거둬들이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미군 등 정부와의 계약(방위산업) 체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피해자 유가족 "이건 연인 간 거래격렬히 반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국토안보·정무위원회 조사소위원회에 데이브 칼훈 보잉 최고경영자(CEO)가 출석했다.
그의 뒤에서 2018~2019년 보잉 비행기 연쇄추락사고 유가족들이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국토안보·정무위원회 조사소위원회에 데이브 칼훈 보잉 최고경영자(CEO)가 출석했다. 그의 뒤에서 2018~2019년 보잉 비행기 연쇄추락사고 유가족들이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보잉 737 맥스 여객기 연쇄추락 사고 피해자 유가족들은 미 법무부의 협상 제안에 분노하고 있다. 사고 피해자 유가족을 대리하는 폴 카셀 변호사는 법무부가 보잉에 한 제안을 "연인 간의 형량 거래"라 불렀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그는 "이번 합의안은 보잉의 범죄로 346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가족들은 이 유죄 협상에 격렬하게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희생자 유가족을 대리하는 에린 애플바움 변호사도 이번 제안이 "수치스럽다"며 "희생자들의 "존엄성을 전혀 언급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협상이 결렬되도록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1년에도 법무부는 보잉과 형사 처벌 없이 3년의 기소유예로 합의하면서 보잉을 과도하게 보호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유가족들은 보잉이 250억달러(약 34조5000억원) 벌금을 물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 법무부가 제안한 벌금 약 5억달러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와 함께 당시 경영진을 기소할 것도 요구했다. 지난달 18일 미국 보잉에 대한 미 상원 국토안보·정무위원회 청문회에서 데이비드 칼훈 보잉 최고경영자(CEO)를 향해 한 유가족은 "보잉의 CEO, 경영진들이 여전히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있는데 책임이 어딨느냐"고 질책했다.

이날도 '또' 보잉 비행기 비상착륙

지난 1일(현지시간) 스페인 항공사 에어유로파의 보잉 787-9 드림라이너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우루과이로 향하던 중 강한 난기류를 만나 브라질 북부 나탈에 비상 착륙했다. 사진은 기체 내 천장이 파손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날 총 30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AFP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스페인 항공사 에어유로파의 보잉 787-9 드림라이너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우루과이로 향하던 중 강한 난기류를 만나 브라질 북부 나탈에 비상 착륙했다. 사진은 기체 내 천장이 파손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날 총 30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AFP연합뉴스
미 법무부가 보잉에 유죄를 인정하라는 최후통첩을 날린 이날, 남미 우루과이로 향하던 스페인 항공사 에어유로파의 보잉 787-9 드림라이너 여객기가 비행 중 강한 난기류를 만나 브라질 동부의 나탈 국제공항에 비상착륙했다. 이 사고로 탑승객 30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앞서 같은 기종인 카타르항공의 보잉 787-9 드림라이너 여객기가 지난달 26일 카타르 도하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향하던 중 난기류를 만나 탑승자 12명이 다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지난달 21일에는 런던발 싱가포르항공 보잉 777-300ER 여객기가 싱가포르로 향하던 중 미얀마 상공에서 난기류를 만나 급강하해 승객 1명이 사망하고 85명이 다친 바 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