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수 "'벚꽃동산' 공연 첫날 클라이막스 대사 통째로 까먹어"
지난달 4일 열린 개막한 <벚꽃동산> 첫 공연에서 박해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작품의 절정을 향해가는 극적인 장면에서 대사를 통째로 잊어버린 것. 이전에도 연극 무대에 올라 실수를 한 경험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대사를 까먹은 건 그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 그를 도와준 건 함께 무대에 올랐던 전도연, 손상규, 유병훈을 포함한 동료들의 재치. 애드리브와 즉흥적인 대사로 메꿔준 덕분에 그는 무사히 장면을 마칠 수 있었다. 박해수는 "동료들이 서로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무대"라고 말했다.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박해수는 출연진에 대한 깊은 애착을 드러냈다. 한 달 넘게 호흡을 맞추며 서로를 밀어주고 도와주는 사이가 됐다고. 무대 위에서 배우 한 명 한 명과 숨 쉬고 있을 때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낄 정도다.

"공연 초반에는 모두가 날카로웠어요. 배우 한 명 한 명이 힘이 넘쳐서 무대 위에서 부딪히는 기분이었죠. 점점 갈수록 서로의 대사를 받아주고 하고 싶은 연기를 하도록 도와주는 공연이 됐어요. 모두가 서로의 에어백이 된 셈이죠. 공연이 끝날 생각에 벌써 마음이 허전합니다."

이 정도로 끈끈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이먼 스톤의 독특한 연출법도 있다. 배우들에게 실수하고 서로에게 긴장감을 주라고 지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흥적인 순간이 무대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이 스톤 연출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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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마다 다른 감정이었어요. 같은 대사를 외칠 때도 슬픔을 느낀 적도 있고, 나 자신을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저 스스로가 정치인 같다고 느껴진 날도 있었고요.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을 담았죠. 어떤 의도나 의미를 담지 않고 그 순간의 느낌을 내뱉었어요"
박해수 "'벚꽃동산' 공연 첫날 클라이막스 대사 통째로 까먹어"
박해수는 연기한 황두식은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해 성공한 사업가. 부와 지위 모두 얻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열등감과 인정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물이다.

"사이먼과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어릴 적 저에게도 아버지는 덩치도 우람하고 무서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런 모습 뒤에 숨겨져 있던 모습을 본 경험을 사이먼과 얘기했죠.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 결핍 이런 점들이 저에게도 있다고 생각해요. 공연 중에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 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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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수많은 연극 무대에 서 왔지만, 이 작품은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무대 위에서 어떤 약속도 하지 않고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기론을 구분해서 규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는 계획적으로 연기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래프를 그린 적도 있고요. <벚꽃동산>에서 새로운 접근을 해보니 저도 모르는 제 연기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서 더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매체 연기에 몸담을 예정이지만. 언젠가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오고 싶어요"

<벚꽃동산>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오는 7일까지 열린다. 서울 공연을 마치고 내년 3월 열리는 호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해외 투어 공연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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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