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인근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 사고 수습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인근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 사고 수습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선호텔에서 출발한 차가 한화빌딩 옆 일방통행 길을 역주행했다는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나오면 자연스럽게 우회전해야지 도로 구조상 길 건너편으로 역주행하긴 쉽지 않아요. 반듯한 사거리가 아니거든요. 근처 CCTV, 블랙박스 전부 낱낱이 분석해서 한 치 의혹도 없게 조사해야 합니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도로에서 9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60대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면서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1일 오후 9시 27분께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제네시스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행인 9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쳤다.

목격자와 현장 CCTV 등에 따르면 사고를 낸 제네시스 차량 운전자 A씨는 조선호텔에서 나와 일방통행인 4차선 도로를 역주행하다 차량 2대를 잇달아 들이받고, 인도와 횡단보도에 있던 보행자들을 덮쳤다. 이후에도 100m가량 이동하다 건너편에 있는 시청역 12번 출구 앞에서 스스로 멈춰 섰다.

이 사고로 6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3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가 사망 판정을 받았다. 확인된 사망자는 모두 남성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에는 승진을 축하하려던 은행 직원 4명을 비롯해 병원 직원 2명, 시청 공무원 2명도 포함됐다.
대형 참사를 낸 차량이 사고 후 멈춰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출처=연합뉴스TV
대형 참사를 낸 차량이 사고 후 멈춰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출처=연합뉴스TV
의문점은 크게 세가지다. 해당 일방통행길에서 왜 역주행을 시도했느냐, A 씨 주장대로 급발진이 맞다면 어떻게 차량이 충돌없이 자체적으로 멈출 수 있었냐, 운전자 과실이라면 숙련된 버스운전 기사가 어쩌다 오작동을 했을까다.

A씨가 음주 상태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사고 원인은 A씨의 주장대로 급발전이거나 운전 미숙, 부주의 등 운전자 과실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장에서 사고를 지켜본 목격자들 사이에서는 차량이 뭔가에 추돌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멈췄다는 점을 근거로 '급발진이 아닌 것 같다'는 주장이 나왔다.

만약 목격자들의 주장대로 사고의 원인이 A씨의 과실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고령 운전자의 자격 유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A 씨가 운전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할 수 있는 버스 운전사였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의혹이 증폭됐다. 수십년 운전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이 급박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브레이크와 엑셀을 착각할 수 있냐는 것. 단순히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운전자 과실로 인한 사고라 확신하기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 씨 또한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호텔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차량 상태가 좀 이상했다. 내가 운전을 하기 때문에 이를 알아챌 수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갔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만 급발진 사고가 대체로 전봇대나 구조물 들을 들이받은 후 멈추는 데 비해 해당 제네시스 차량은 인도를 돌진하며 행인을 친 후 스스로 멈췄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급발진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1일 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에 사고 충격으로 부서진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사진=뉴스1
1일 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에 사고 충격으로 부서진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사진=뉴스1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 교수는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급발진은 급가속이 이뤄진다. 그다음에 차량의 구조물을 추돌 또는 충돌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는다"면서 "보통 급발진 차들은 차량의 전자장치 이상으로 인해서 속도에 오히려 가속이 붙는데 이것이 차량이 정상화돼서 이게 속도가 준다든지 차량을 운전자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시 전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급발진 가능성은 0이라고 했다.

염 교수는 "급발진이 보통 브레이크를 밟는데 급발진 차주들은 풋브레이크를 밟아도 브레이크가 딱딱해진다고 말씀들을 많이 한다"며 "일단 브레이크가 밟아지지 않기 때문에 제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가속은 더 붙게 되고 그러니까 결국은 요리조리 피해서 차량을 피하려고 하고 또 보행자를 피하려고 하다가 보면 결국은 어떤 구조물들에 받혀서 속도가 멈추게 되는 그런 상황인데 지금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려면 아마 더 가속하고 나갔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네티즌들은 "저 행인 분들은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저 정도 속도로 치고오니 어떻게 방어해볼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루의 마무리 하려던 평범한 사람들이 당한 사고라 남의 일 같지가 않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편 경찰은 "시청역 사고 운전자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으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급발진 주장에 대해서는 "피의자 진술이며 사고차량을 국과수에 감정의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갈비뼈 부상으로 현재 병원서 치료 중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