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에서 한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최소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 가해 차량이 현장에서 견인되고 있다./사진=뉴스1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에서 한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최소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 가해 차량이 현장에서 견인되고 있다./사진=뉴스1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보행자들을 덮쳐 9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대형 사고와 관련해 가해 차량 운전자가 급발진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사고 목격자나 전문가들은 정황상 급발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이 눈길이 쏠린다.

사고 당시 장면이 찍힌 CC(폐쇄회로)TV 영상과 목격자들 진술을 종합하면 1일 오후 9시27분께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을 빠져나온 제네시스 차량은 일방통행인 4차선 도로를 역주행, 도로상 BMW와 소나타를 추돌한 뒤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

사고 차량 운전자 A씨는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고 현장을 목격한 일부 시민들은 "급발진은 아닐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시민은 "급발진할 때는 (차량 운행이) 끝날 때까지 박았어야 했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멈췄다"고 했다.

실제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을 보면 사고를 낸 차량은 마지막에 감속하면서 멈췄다. 일반적으로 급발진 차량이 도로상 구조물 등과 부딪히며 억지로 감속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고 영상을 접한 이들은 급발진이 아니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브레이크로 멈추는 급발진도 있느냐", "역주행 해놓고 급발진이라고 한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급발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전문가 의견도 나온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급발진은 급가속이 이뤄진 후 구조물을 추돌 또는 충돌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는다"며 "보통 급발진은 차량의 전자장치 이상으로 인해 가속이 붙는다. 속도가 줄어들거나 운전자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시 전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운전자가 주장하는 급발진이었다면 아마 차량이 더 가속하고 더 나아갔어야 하는 것"이라며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차량이 역주행 진입을 해버려 당황한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 페달을 헷갈려 과속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급발진 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운전 실수 가능성도 있지만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는 만큼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령 운전자가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착각하고 급발진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운전자 실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이번 사고 운전자는 주직업이 운전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어 일반인보다 운전 시 실수할 가능성이 낮다. 실제 급발진 여부는 조사해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급발진 여부 판단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국내에선 40여년간 급발진을 주장해 승소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며 "제조물피해법 자체에 운전자가 자동차 결함을 밝혀야 하는 것으로 돼 있어 그런 부분은 소비자가 굉장히 불리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운전자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경위와 원인에 대해서 운전자 진술과 CCTV, 블랙박스 등을 통해서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