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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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각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며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중이다.

미국 월가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이 11월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공격적인 관세 부과로 수입 물가가 올라가고, 이민 제한에 따른 인건비 상승 가능성도 커서다. 소득세 폐지 등 감세 정책과 이를 감당하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도 국채금리 상승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프랑스 또한 극우 강경파가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국채 금리가 뛰어올랐다. 과거 남유럽 재정위기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인플레 둔화 조짐에도 국채금리 상승

1일(현지시간) 미 국채금리 상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 외엔 원인을 찾기 힘들었다. 이날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에 따르면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6월 48.5로 전달(48.7) 보다 약간 하락했기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 경기 둔화에 따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PMI 지수가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 그 아래면 경기 위축으로 해석된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버 앨런은 “제조업 부문이 앞으로 몇분기 동안 약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통화정책의 척도로 삼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5월 수치도 전년 동월 대비 2.6% 오르며 전월 상승률 2.7%에서 0.1%포인트 낮아졌다.
인플레이션 둔화 조짐은 보통 장기 국채금리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Fed의 금리 인하 명분이 생겨서다. 하지만 이날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4.5% 인근까지 급등했다.
채권 시장에선 지난주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토론에서 사실상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승을 거둔 것으로 판단해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2기를 시작할 경우 예전처럼 세금을 낮추고 이에 따른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릴 것으로 본 것이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에는 60%의 고율 관세를, 그 밖에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 관세를 물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같은 예상은 학계에서도 퍼져 있다. 최근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등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16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미국과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서한에 서명한 사실이 알려졌다. 경제학자들은 서한에 “도널드 트럼프가 재정적으로 무책임한 예산으로 인플레이션을 재점화할 것이라는 우려는 당연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프랑스, 극우 정권 우려에 국채금리 상승

프랑스도 비슷한 처지다. 1차 조기 총선에서 강경 우파가 압승하면서 일부 시장 참가자들이 프랑스의 재정 위기를 우려하기 시작해서다. 프랑스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치러진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이 33.1%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좌파 연합체 신민중전선(NFP)은 28%를 얻어 2위를 기록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 르네상스를 비롯한 범여권(앙상블)은 20%를 득표해 3위로 참패했다.

이미 프랑스는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중이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최근 프랑스가 국내총생산(GDP)의 5.5%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초과 재정적자 시정 절차(EDP)’ 개시를 EU 이사회에 제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연합(EU)이 정한 재정적자 한도 3%를 훨씬 넘는 수준이다.

이 상황에서 강경 우파가 정권을 잡으면 극우 포퓰리즘으로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처럼 프랑스 국채금리가 폭등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실제 1일 프랑스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3.302%로 4.9bp 상승했다.

유럽 금융시장에선 프랑스 국채 매도세가 다른 유럽 국가로 번지게 되면 유럽중앙은행(ECB)이 나설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의 수석 경제학자 루도빅 수브란은 “프랑스가 어려워지면 이탈리아도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고 ECB는 조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