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서울 시청역 근처에서 60대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를 여럿 치는 대형 사고가 나면서 고령 운전자의 '면허 자격 논란'이 재점화했다. 앞서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조건부 면허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2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9시28분께 서울 시청역 교차로에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하는 사고로 9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운전자는 사고 직후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고령 운전자 이슈와 별개로 시청역 사고와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조사하겠다는 입장. 경찰은 "(급발진 주장은) 피의자의 진술일 뿐"이라며 "피의자가 주장하는 부분(급발진)까지 전체적으로 수사 대상에 놓고 있다"고 말했다. 급발진 수사를 위한 사고기록장치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할 경우 길게는 1~2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운전자가 음주나 마약 투약 정황이 없고 65세 이상의 고령인 점 등을 고려해 판단력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CC(폐쇄회로)TV 영상 등을 근거로 급발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면서 고령 운전자 대상으로 한 조건부 면허제도 도입 여부가 다시 쟁점화될 조짐이다.

고령자 더 깐깐하게...'조건부 운전면허' 탄력받나

정부는 지난 5월 국토교통부·경찰청 등 관계부터 합동으로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을 통해 '조건부 면허제 도입 검토'를 발표한 바 있다. 운전자 능력에 따라 야간·고속도로 운전금지, 최고속도 제한, 첨단 안전장치 부착 등 조건을 부여해 운전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해외 사례에서 착안해 △집 반경 50~100㎞ 범위에서 운전하도록 하는 방안 △주간에만 운전을 허용하는 방안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설치 차량에 한해 운전을 허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시 조건부 면허 제도가 '고령 운전자' 대상으로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을 과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반발도 나왔다. 이에 정부는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운전자만 대상으로 한다"고 해명한 바 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해외에선 이미 도입한 '고령자 운전 면허 제도'

미국 등 해외에선 고령 운전자 상황을 판단해 고속도로 등에서의 고속 운전 금지, 야간 시간대 운전 금지 등 조건부 면허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의 '고령자 운전면허 관리제도 해외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고령 운전자 관리를 위해 대다수 주에서 면허 갱신 주기 단축과 의료 평가, 도로 주행시험, 제한 면허 제도를 운용 중이다.

가령 캘리포니아주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 능력에 따라 일정 조건이 부과된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 주행시험을 거쳐 거주지 내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제한 면허를 취득하는 식이다. 일본에선 71세 이상자 면허 갱신 주기는 3년이며 70세 이상은 갱신 시 고령자 강습을 수강해야 한다. 75세 이상은 인지 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75세 이상자의 경우 매년 운전 적합성에 대한 의료 평가 및 운전 실기 평가를 받아야 한다. 운전자는 필요에 따라 운전 실기 평가를 받지 않는 대신 지역 내 운전으로 제한된 수정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뉴질랜드는 80대가 되면 2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데 이때 의사의 운전면허용 진단서가 필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고령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하고 각종 선진국 사례를 취합, 참고해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적 선택을 하는 게 핵심"이라며 "전면적 조건부 면허 도입 이전에 최소한의 규제를 먼저 설정하는 등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진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