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동산'서 저택 지키려는 사업가 역…"전도연, 사랑 많은 사람"
"실수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져…삶의 철학도 바꾸게 해준 작품"
박해수 "연극 통해 민낯 드러내며 성장…순간의 소중함 느껴"
"아, XX, 기훈이 형!"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시청자에게 각인된 명대사 중 하나다.

거액을 놓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한 기훈(이정재 분)이 참가자들과 협력하자는 취지로 말하자 참다못한 상우(박해수)가 비속어를 섞어가며 소리치는 장면에서 나온다.

듣기 좋은 꽃노래만 하는 이상주의자에게 제발 현실을 직시하라며 일갈하는 그의 모습에 일부 시청자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지난달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사이먼 스톤 연출의 연극 '벚꽃동산'에서도 박해수의 이런 연기를 볼 수 있다.

그는 사세가 기울어 저택이 넘어갈 위기에 처한 재벌 3세 도영(전도연)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집을 지킬 방법을 조언하는 자수성가 사업가 두식 역을 맡았다.

두식은 대책 없이 손 놓고 있는 이들 가족을 처음엔 논리적으로 설득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욕하며 화를 내고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한다.

"좀 더 절실하고 강력하게 이 가족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제 온몸과 에너지를 끌어올려서 집을 구하려는 간절함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
2일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박해수는 두식을 연기하며 방점을 찍은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전도연 선배님이 등장인물 중 이 집을 가장 사랑하는 건 (집주인 가족이 아닌) 두식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더라"면서 "어쩌면 두식이 집을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박해수 "연극 통해 민낯 드러내며 성장…순간의 소중함 느껴"
도영네에서 운전기사로 일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식은 어릴 적 추억이 남아 있는 이 저택에 성공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곤 도영에게 회사를 쪼개 팔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박해수는 "처음엔 두식이 ('오징어 게임'의) 상우처럼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로 보였다"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의 부재에 따른 공허함에서 해방되고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은 불쌍한 사람 같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두식은 스톤 연출이 인터뷰와 워크숍을 통해 관찰한 박해수의 모습을 토대로 만든 캐릭터다.

박해수는 실제로 자신이 두식과 닮은 면이 있다고 했다.

"저희 아버지는 폭력적이진 않았지만 굉장히 거친 분이었고, 저는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이었어요.

처음에 제가 연극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딴따라' 취급하는 눈빛을 보이시기도 했지요.

(공연하는 동안) 연극으로 아버지께 인정받고 저를 증명하려고 했던 순간이 많이 떠올랐어요.

"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2007년 '안나푸르나'로 프로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대중매체 콘텐츠로 인기를 얻은 이후에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연극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박해수는 "연극을 하면 저의 민낯과 성숙하지 못한 점이 보인다.

그걸 깨닫고 성장하는 제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연기하는 동안) 그 순간을 사는 것에 소중함이 느껴져요.

마법 같은 시간이랄까요.

특히 '벚꽃동산'은 좀 더 특별해요.

10명의 배우와 함께하면서 마치 유기체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거든요.

파도에 휩쓸리는 것처럼 떨려도 같이 떨리고, 고점을 맛봐도 같이 맛보죠."
박해수 "연극 통해 민낯 드러내며 성장…순간의 소중함 느껴"
그는 그동안 수많은 무대에 섰지만, 이번 작품처럼 동료 배우들에게 기대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해수가 '벚꽃동산'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전도연에게 의지가 많이 됐다고 했다.

박해수는 "이렇게 장기간 선배님과 무대 위에서 눈을 맞추며 연기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아우라 있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동료 배우들을) 보듬어주는 사랑이 크신 분"이라고 말했다.

박해수가 첫 공연 당시 중요한 대사 8줄을 빠뜨렸을 때도 전도연을 비롯한 배우들의 재치 있는 도움 덕분에 1부가 끝나기 전 대사를 다시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는 "실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수가 저를 무대에서 살아 있게 하더라"라며 "이 작품을 통해 실수는 공연을 망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됐고, 나아가 인생의 철학도 바뀌게 됐다"고 돌아봤다.

"스톤의 연출 방향이 '자유롭게 하라 그리고 실수하라'였어요.

공연 중 작은 사고들이 배우의 연기를 살게 해줄 거라면서요.

처음엔 두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모두가 스톤의 말을 믿게 됐지요.

삶에도 많은 실수가 존재하지만, 그 순간조차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실수를 예술로 승화한 게 '벚꽃동산'입니다.

"
박해수 "연극 통해 민낯 드러내며 성장…순간의 소중함 느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