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배임 등 개인 일탈에 따른 금융 사고라도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제재받게 된다. 외국 지점에서 발생한 사고로 임원이 제재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금융사 주요 업무의 최종 책임자를 특정하는 책무구조도 작성이 3일부터 의무화되면서다. 금융사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제재나 검찰 기소를 의식한 금융사 임원들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의사결정만 이어갈 것이란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사의 새로운 도전을 막는 족쇄로 작용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반복된 직원 일탈도 행장 탓?…'책무구조' 논란

금융당국, 해설서 공개

금융위원회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 지배구조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금융사들의 질의에 대한 유권해석을 담은 해설서를 2일 공개했다. 해설서에 따르면 책무는 ‘금융사 또는 금융사 임직원이 준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한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의 집행·운영에 대한 책임’으로 규정됐다.

책무구조도는 대표이사 등이 마련해야 한다. 상위 임원과 하위 임원의 업무가 일치한다면 상위 임원에게 책무를 맡겨야 한다. 다른 회사 임원이라고 해도 회사 임원과 직원에게 사실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책무를 배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금융지주 임원이 자회사 임원의 내부통제 관련 사항에 대해 지시할 수 있다면 책무를 준다는 얘기다.

내부통제에 실패한 임원은 금융당국 제재 대상에 오른다. 특히 은행장 등 CEO는 내부통제 총괄 관리 의무를 부여받기 때문에 사건·사고 장기화 및 반복을 방지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제재를 받는다.

금융위는 해설서에서 외국 지점이 국내 금융사 건전성이 위협될 정도로 현지 법령을 위반한다면 국내 임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사 임원에게 해외 지점의 현지 법령 준수 책무까지 배분할 필요는 없지만, 큰 규모의 위반은 국내 임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해석이다.

“족쇄와 다름없어”

금융지주와 은행들은 책무구조도를 내년 1월까지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자산 5조원 이상 금융투자사와 보험사는 2025년 7월, 5조원 미만은 2026년 7월까지가 제출 기한이다. 저축은행, 여신전문회사를 포함한 모든 금융사는 2027년 7월까지 금융당국에 책무구조도를 내야 한다.

책무구조도 도입을 앞두고 금융사들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금융사 임원을 대상으로 한 제재가 과도해질 것이란 우려다. 한 시중은행장은 “일탈 사고가 일어났다는 이유로 임원을 징계한다면 은행장 상당수가 교도소를 들락거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법에는 상당한 주의를 다해 관리 의무를 수행했다면 제재 조치를 면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아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내부통제 관련 제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제재 운영지침을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책무구조도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절차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사 임원 구성이 변경되거나 책무가 달라질 때마다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해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자고 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얘기부터 나올 것”이라고 했다.

최한종/박재원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