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울미술관의 신미경 개인전에 전시된 ‘엔젤 시리즈’ 작품.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북서울미술관의 신미경 개인전에 전시된 ‘엔젤 시리즈’ 작품.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문화 애호가들을 서울 북쪽까지 끌어모으는 곳. 4년 전 노원구에 문을 연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향기가 진동한다. 비누로 조각하는 신미경 작가의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 전시회 덕분이다. 신 작가는 이번 전시에 100여 점의 비누 작품을 내놨다. 대부분이 올해 첫선을 보인 신작이다. 작업에는 투명한 비누 2t, 불투명한 비누 원료 1t을 사용했다.

한국에서 레진으로 조각하던 그는 1998년 학업을 위해 영국으로 넘어가자마자 위기를 맞았다. 런던 슬레이드스쿨에서 독성 때문에 레진 사용을 금지한 것이다. 신 작가는 레진 대신 비누를 골랐다. 비누를 향한 그의 뚝심은 지난해 10월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야외 광장에 전시한 대형 비누 조각 ‘동양의 신들이 강림하다’를 뉴욕타임스가 비중 있게 보도하는 등 세계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북서울미술관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천사. 신 작가는 있는 것 같았다가 사라지는 천사의 존재가 마치 닳아서 없어지는 비누와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원작이 있는 천사 동상을 비누로 재탄생시키는 작업 방식을 택했다.

지하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과 바닥 그리고 작품을 받치는 좌대가 모두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비누 작품이 가진 다채로운 색에만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 오히려 강렬한 색으로 통일시키는 역발상을 꾀했다. 천사 조각 시리즈는 색색의 비누천사 조각이 붉은 계단을 타고 하늘을 향해 승천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벽에 걸린 대형 캔버스 작품은 회화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비누 조각이다. 금속 틀에 비누를 물감처럼 부어 순간적으로 굳힌 작품이다. 신 작가는 “비누 페인팅 작업이 가장 고되고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여러 색의 비누를 끓여서 동시에 부은 뒤 굳혀야 하기 때문에 작업 과정을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물을 만들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비누 페인팅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다음 전시 공간으로 넘어가면 자연광이 관객을 맞이한다. 빛이 들어오는 창가 앞에 마치 창문처럼 네모난 구멍이 뚫린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 사이에 투명 비누로 만든 엔젤 조각 시리즈를 들여놨다.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천사 작품의 투명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구성이다. 마치 성당이나 교회 창문에 쓰이는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전시장에는 어린이 관객을 위한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신 작가가 처음으로 시도한 드로잉 작업을 따라 해볼 수 있다.

작품은 화장실에도 있다. 관람객은 손을 씻을 때 신미경의 비누 작품을 문질러 사용한다. 그리고 그 조각이 닳아 없어진 모습을 다시 전시장 안으로 들여놓는다. 전시는 내년 5월 5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