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핵무장론에 앞서 짚어봐야 할 것들
핵무장론은 대체로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 “우리라고 못 할 것 없다”는 기류다. 경제력 세계 10위권, 국방력 세계 5위권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기저에는 오랜 세월 약소국으로 살아오며 강대국들로부터 핍박받은 데 따른 감정적 반발심도 있다. 현실은 생각보다 차갑고 엄중하다. 우리는 북한처럼 국제적 고립을 감수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국제 제재로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길이 막히고 원유와 농산물 수입이 금지된다면 모든 국민이 핵을 포기하라고 나설 것이다. 바로 그런 연유로 핵무장론은 단 한 번도 공론의 장에 나오지 못했다.

과연 우리가 핵무장을 할 수 있느냐 여부는 대단히 복잡한 국제적 역학관계, 국내 정치 지형과 기술적 역량을 따져봐야 할 문제다. 국민의 지식과 판단 능력이 전문가의 영역으로 올라서야 공론화가 가능하다. 기술적 문제보다 의외로 안보 지형을 살펴보는 논의가 어렵다. 핵무기 원료는 두 가지다. 자연계의 우라늄과 비자연계의 플루토늄이다. 우라늄은 엄청난 밀도로 농축하면 되지만 플루토늄은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원전 가동을 통해 얻는다. 만약 우리나라가 핵무기 제조에 나선다면 플루토늄 추출이 빠르고 경제적이다. 원전은 26기나 가동하고 있는 반면 우라늄 농축 시설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원전 중에서도 중수로 원자로를 채택하고 있는 월성 1, 2, 3, 4호기가 최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온갖 무리수를 써가며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했을 때 “장차 한국의 핵무장 능력을 원천 봉쇄하려는 좌파들의 공작”이라는 음모론이 나온 이유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플루토늄을 뽑아낼 수 있다. 탄두를 쏘아 올릴 로켓 기술도 충분하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핵연료 추출 자체를 핵 개발로 간주하고 전면적 규제에 나설 것이다. 중국, 러시아도 길길이 날뛸 것이다. 유일한 틈은 미국의 허락 내지 용인이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해 한국을 핵무장시켜야 한다는 판단이 섰을 때 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전제가 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이 항상 자유 진영에 설 것이라는 믿음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는 친미와 반미가 혼재한다. 미국은 대북 유화책과 친중 노선을 펴는 좌파 정권이 번갈아가며 집권하는 정치 지형을 미더워하지 않는다. 자체 핵을 보유한 좌파 정권이 어느 날 갑자기 중국 쪽에 서버릴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실제 종북 좌파들은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도입 과정 등에서 끊임없이 반미 선동을 획책했다. 북핵 개발 초기에는 “북한은 능력도, 의도도 없다”고 하다가 핵이 완성 단계에 들어가자 “어차피 통일되면 우리 것”이라고 두둔해 왔다.

일본도 큰 변수다. 한국 좌파에 대한 의심은 일본도 미국 못지않다. 좌파들의 반일 캠페인은 조금도 수그러들줄 모른다. 미국이 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기지로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선택한 것, 한국 첨단기업들이 거액의 보조금을 앞세운 일본 정부의 투자 요청을 받고도 친일 논란이 두려워 거절한 것이 우리가 당면한 안팎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일본은 한국의 핵 보유를 안보 위협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도 자명하다. 남북한이 동시에 핵을 갖게 되면 일본의 선택은 뻔하다. 미국의 양해를 얻어 일찌감치 확보해 놓은 플루토늄을 기반으로 조기 핵무장에 나설 것이다. 핵확산으로 동북아시아 전체가 화약고로 변하는 것은 미국도 감당할 수 없는 사태다. 이 경우 미국은 일본을 설득하기 위해 한국의 핵무장을 무조건 막으려들 공산이 크다.

현 단계에서 핵무장론은 거칠고 무모하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국민은 이런 현실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핵무장의 우선적 조건은 자유주의를 구성 원리로 삼은 국가의 정체성을 확고히 지키는 일이다. 경제 부문에서의 좌우 대립과 갈등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경쟁이라는 대의가 있다. 하지만 국민이 죽고 사는 안보 문제는 이념이 최우선이다. 공동의 적 앞에서 정파성을 거두고 확고한 안보 태세와 국민 통합을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 설령 핵을 갖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와 국민은 아직 그런 수준이 못 된다. 오히려 점점 퇴행의 길로 빠져든다. 역설적으로 핵무장론은 재앙과도 같은 대한민국의 내부 분열을 새삼 일깨우고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