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와 경영계의 극한 대치 속에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가 또 무산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법정 심의 마감일을 닷새나 넘긴 어제서야 실시한 찬반 투표에서 찬성 11, 반대 15로 내년 차등적용안을 부결시켰다. 노동계 결사반대에 판이 깨질 것을 우려한 공익위원 일부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제발 추락한 임금 지급 능력을 고려해달라’던 중소기업과 소상공업계의 호소는 또 한 번 허공의 메아리로 흩어졌다. 경영계는 음식점업, 택시 운송업, 체인화 편의점 등 최소한의 업종만 차등 대상으로 제시했다. 음식점업은 종업원 1인당 창출 부가가치가 제조업의 20.7%에 불과하다. 택시 편의점도 사정이 비슷해 차등화가 필수지만 막무가내식 노동계 반대에 또 좌절됐다.

노동계가 반대 논리로 앞세운 ‘낙인 효과’는 납득하기 어렵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 비중은 업종에 따라 최대 41.2%포인트까지 차이 난다. 누구나 이런 임금 격차를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낙인 효과 거론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선진국에선 최저임금보다 더 많이 주는 방식으로 구분 적용한다는 노동계 주장도 오해이거나 왜곡이다. 스위스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최저임금보다 낮은 하향식 차등화를 시행 중이다.

차등화의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올해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65.8%까지 높아졌다. 상한으로 간주되는 60%를 한참 웃돈다. 일부 업종의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90%에 육박한다. 자영업자 네 명 중 한 명(25.4%)은 최저임금 수준인 월 206만740원도 못 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노동계는 지금 최저임금으로도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데 차등화가 웬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올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206만740원(주휴수당 포함)으로 서울시 지방직 9급 공무원(181만5070원)보다 많다.

정부의 의지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수차례 차등화를 약속했지만 3년째 협상 기회를 흘려보냈다. 이번 심사 과정에선 경영계의 차등 적용 관련 자료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러고도 노동개혁을 국정 핵심 과제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