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일대로 꼬인 수능의 문제를 정리하다, 해답은 없더라도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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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해킹
문호진·단요 지음
창비
504쪽│2만3000원
문호진·단요 지음
창비
504쪽│2만3000원
해마다 이맘때쯤 비슷한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1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를 발표했다. 이른바 '킬러 문항'이 빠졌다는 평가에도 국어·수학·영어 모두 어려워 수험생들이 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땀을 흘리는 건 수험생만이 아니다. 역대 평가원장 11명 중 8명이 3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퇴했다. 학부모와 교육계, 본인의 입시를 회상하는 선배 세대,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한마디씩 거든다. '불수능이 양극화를 부추긴다' '물수능이 변별력을 없앤다' '입시제도 전반이 문제다'. 무엇이 문제길래 매년 되풀이되는 걸까. '수능 콘텐츠'의 공급자 역할을 맡았던 저자들이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맹공하고 나섰다. <수능 해킹>를 펴낸 의사 문호진과 소설가 단요는 각각 실전 모의고사를 출제하고 학원을 운영한 이력이 있다. 이들이 강사와 수강생, 교사 등을 인터뷰한 내용의 골자는 '수능의 퍼즐화', 그리고 이에 따라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사고의 외주화'다.
저자들은 최근 10년간의 수능을 루빅스 퍼즐에 비유한다. 초심자는 풀어내기가 불가능에 가깝지만, 해법을 외우면 손쉽게 공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평가원 내외부의 정치적 압력과 난이도 조절, 변별력 유지 등 여러 문제가 얽히다 보니 문제 유형이 정형화됐다는 분석이다. 대학 교육을 이수하기 위한 사고력을 평가하겠다는 수능의 본래 취지는 형해화됐다.
사교육계는 수능의 출제 원리를 분석한 각종 모의고사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수능 해킹'이라고 부른다.
"고통스러운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스도쿠를 푸는 능력에 불과하다면, 심지어 그 능력마저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 풀이 위주 학습을 통해 '패턴을 체화하는' 것이라면 이 노력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입시 허들은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저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서울권 학생의 수학 1등급 비율은 비서울권에 비해 3배가량 높다. 코로나19 이후 확산한 인터넷강의도 한몫했다. 대치동 유명 강사들이 출연한 인터넷강의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며 지방 사교육 인프라가 위축됐지만, 핵심 정보는 여전히 서울권 학생들한테 편중됐다는 주장이다.
사교육계의 과잉 경쟁이 악순환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타 강사들은 많게는 수십명의 조교 군단을 거느린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년도의 우수한 재원생이거나 입시에 도가 튼 N수생이다. 저자들은 "N수생이 N수생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말한다.
현행 제도에 대한 묵직한 비판과 별개로, 저자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다소 공허하다.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공교육 강화, 입시의 투명성 보장 등 원론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한국만의 난제는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N수생이 화두 되고, 미국에서조차 SAT 등 표준화 시험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한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의 N수생 비율은 35.2%로 28년 만에 최고였습니다. 의대 정시 합격자 중 4수 이상 비율은 지난 3년간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재필삼선'을 넘어 '무한N수'가 당연해진 가운데, 올해 수능이 13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안시욱 기자
진땀을 흘리는 건 수험생만이 아니다. 역대 평가원장 11명 중 8명이 3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퇴했다. 학부모와 교육계, 본인의 입시를 회상하는 선배 세대,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한마디씩 거든다. '불수능이 양극화를 부추긴다' '물수능이 변별력을 없앤다' '입시제도 전반이 문제다'. 무엇이 문제길래 매년 되풀이되는 걸까. '수능 콘텐츠'의 공급자 역할을 맡았던 저자들이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맹공하고 나섰다. <수능 해킹>를 펴낸 의사 문호진과 소설가 단요는 각각 실전 모의고사를 출제하고 학원을 운영한 이력이 있다. 이들이 강사와 수강생, 교사 등을 인터뷰한 내용의 골자는 '수능의 퍼즐화', 그리고 이에 따라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사고의 외주화'다.
저자들은 최근 10년간의 수능을 루빅스 퍼즐에 비유한다. 초심자는 풀어내기가 불가능에 가깝지만, 해법을 외우면 손쉽게 공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평가원 내외부의 정치적 압력과 난이도 조절, 변별력 유지 등 여러 문제가 얽히다 보니 문제 유형이 정형화됐다는 분석이다. 대학 교육을 이수하기 위한 사고력을 평가하겠다는 수능의 본래 취지는 형해화됐다.
사교육계는 수능의 출제 원리를 분석한 각종 모의고사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수능 해킹'이라고 부른다.
"고통스러운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스도쿠를 푸는 능력에 불과하다면, 심지어 그 능력마저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 풀이 위주 학습을 통해 '패턴을 체화하는' 것이라면 이 노력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입시 허들은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저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서울권 학생의 수학 1등급 비율은 비서울권에 비해 3배가량 높다. 코로나19 이후 확산한 인터넷강의도 한몫했다. 대치동 유명 강사들이 출연한 인터넷강의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며 지방 사교육 인프라가 위축됐지만, 핵심 정보는 여전히 서울권 학생들한테 편중됐다는 주장이다.
사교육계의 과잉 경쟁이 악순환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타 강사들은 많게는 수십명의 조교 군단을 거느린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년도의 우수한 재원생이거나 입시에 도가 튼 N수생이다. 저자들은 "N수생이 N수생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말한다.
현행 제도에 대한 묵직한 비판과 별개로, 저자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다소 공허하다.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공교육 강화, 입시의 투명성 보장 등 원론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한국만의 난제는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N수생이 화두 되고, 미국에서조차 SAT 등 표준화 시험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한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의 N수생 비율은 35.2%로 28년 만에 최고였습니다. 의대 정시 합격자 중 4수 이상 비율은 지난 3년간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재필삼선'을 넘어 '무한N수'가 당연해진 가운데, 올해 수능이 13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