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레이더] 신상 털고, 좌표 찍고…도넘은 악성 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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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이 일상" 무리한 민원에 정신적 피해 겪거나 극단 선택 몰리기도
'이름 비공개, 전담팀 운영' 지자체·기관 대책 분주…"투명행정 역행" 지적도 악성 민원으로 인해 공무원들이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거나 극단적 선택까지 내몰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 지자체나 각 기관 등에서는 공무원 이름과 사진을 비공개하거나 전담 대응팀을 운영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직원 비공개 조치가 투명 행정을 저해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 전국 악성 민원인 2천700여 명…"공무원들에게 폭언은 일상"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힘들게 이 자리에 왔는데, 이런 모욕이나 들으려고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
울산 한 지자체에서 8년째 근무 중인 공무원 A씨는 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A씨는 "폭언이나 고성, 욕설은 공무원들에게 기본"이라며 "빈도를 언급할 것도 없이 그런 말 듣고 사는 건 그냥 일상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당한 행정 처분에 대해 고성을 지르며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모욕적인 소리를 하는 민원인을 만나면 분노가 차오른다"며 "동료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 봐 참고 또 참지만, 반복되는 악성 민원에 응어리가 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많이 쌓인다"고 호소했다.
이날 발표된 국민권익위원회 '악성 민원 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악성 민원인은 2천784명에 달했다.
기관별로는 기초 지방자치단체 1천372명, 중앙행정기관 1천124명, 광역 지방자치단체 192명, 교육청 96명 순이었다.
유형별로는 업무 담당자 개인 전화로 문자 수백통을 여러 차례 발송하는 '상습·반복' 유형(48%·1천340명)과 '폭언·폭행·협박' 유형(40%·1천113명)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담당 공무원 실명 공개 후 항의 전화를 독려하는 '좌표 찍기' 유형도 6%(182명)에 달했고, 민원 처리 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과도하게 정보 공개를 청구하거나 비이성적 주장을 하는 유형(3%·80명)도 적지 않았다.
◇ 지역·기관 불문…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들
이러한 악성 민원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지역과 기관을 불문하고 잇따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경기 김포시 소속 9급 공무원 B씨가 인천 한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도로 포트홀 보수 공사로 인한 차량 정체로 항의성 민원에 시달렸고, 온라인 카페에서는 공사를 승인한 주무관이 B씨라며 그의 실명과 소속 부서, 직통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가 공개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경남 밀양에서는 부산교육청 소속 한 장학사가 숨진 채 발견된 일도 있었다.
A씨는 부산 한 학교에서 시행 중이던 내부형 교장 공모제 재지정이 불발된 뒤 관련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말뿐 아니라 실제 물리적 폭행과 위협으로 이어진 악성 민원도 적잖다.
지난해 9월 충남 천안에서는 50대 민원인이 주민등록증 교체를 위해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가 '새 사진을 가져와야 한다'는 공무원 안내에 불만을 품고 흉기 난동을 벌였다.
지난 4월 충북 옥천군청에서는 태양광 발전시설 허가에 불만을 품은 한 민원인이 하루가 멀다고 관련 부서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고함을 치고 난동을 부렸다.
이 민원인은 군청 현관에서 상복 차림으로 술을 마시며 소리를 지르고, 복도에 소변을 보는 등 행패를 부리다가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물러났다.
◇ 직원 비공개·민원 전담반…지자체·교육 당국 보호 총력
일선 지자체와 교육청, 학교는 악성 민원 예방 차원에서 공무원 이름, 직함, 사진 등을 잇달아 비공개로 전환하고 있다.
그간 민원인 편의를 위해 담당 업무와 함께 제공해 왔던 직원 정보를 민원인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구와 경북, 전북, 울산, 부산 등 전국 각지의 일부 기초지자체는 최근 웹사이트의 담당자 이름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경기도는 이달 1일부터 홈페이지 조직도에서 6급 이하 직원 실명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성씨만 조직도에 게시했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5월부터 홈페이지에서 실·국장과 과장·팀장급까지만 이름을 공개하고 그 이하 직원은 이름을 비공개하고 있다
폭언과 폭행으로부터 민원 창구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녹화 장비와 모의 훈련을 제공하거나 안전요원을 배치하기도 한다.
경남 창원시는 앞서 휴대용 보호장비 175대를 배부한 데 이어 이달 중 웨어러블 캠 117대를 추가 보급하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전문 안전요원을 시범 배치하기로 했다.
전북 군산시는 민원 처리가 많은 30곳에 근거리 영상녹화와 음성녹음이 가능한 웨어러블 카메라를 보급하고, 경찰이나 보안업체와 합동으로 매년 두차례 '비상 대응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피해를 본 직원의 소송 비용을 제공하는 기관도 있다.
파주시는 고문변호사 및 변리사 운영 조례를 개정해, 소속 공무원이 폭언과 폭행 등 특이 민원에 노출될 경우 시 소속 고문변호사를 통해 고소·고발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 당국은 교직원 개인이 아닌 기관 차원에서 민원에 대응하도록 창구를 일원화하는 추세다.
대구시교육청은 본청과 5개 교육지원청에 통합 민원팀 15개를 새로 설치해 학교 차원에서 대응이 어려운 민원을 전담하도록 했다.
제주도교육청도 일선 학교는 학교장 책임하에 민원 대응팀을, 교육지원청은 교육장 직속 통합 민원팀을 운영해 학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민원을 처리하도록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수업 중인 교사를 예고 없이 방문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학교 방문 사전 예약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인공지능(AI) 기본 민원 상담 챗봇도 도입했다.
경남도교육청은 교육감 직속 교육활동 보호 담당관을 설치하고, 대전교육청은 학교별 변호사를 배정해 피해를 본 교직원에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모든 학교에 녹음 전화기를 설치한다.
◇ 직원 비공개에 '투명행정 역행' 지적도
일각에서는 공무원 이름 비공개 조치가 이른바 '열린 행정'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민원을 핑계로 담당자 이름을 가리는 것은 과거 공무원들의 '업무 돌리기' 등 구시대에 겪었던 불편을 다시 야기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에게는 내 불편에 대한 업무를 공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다"며 "당장 공무원들이 힘들다는 걸 이유로 이름을 가리자는 것은 100개 중 99개의 정상 민원에 대한 공공기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악성 민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상급자나 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의 경우 낮은 연차인 경우가 많다"며 "경험과 권한이 없고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는 낮은 연차 공무원 대신 상급자가 유연하고 엄정하게 민원인을 상대해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민원 업무 과중의 근본적인 원인은 공무 범위 확대라는 분석도 잇다.
정준금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 서비스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돼 민원의 대상이 아닌 것까지 공무원들 업무가 돼버린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아파트에 이삿짐을 넣어야 하는데 불법 주차 때문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구청에 전화하는 등 공무가 아닌 일에 공무원이 투입되는 경우가 꽤 많다"며 "개인 간의 문제에 행정기관이 개입해 불필요한 민원이 늘어나게 되는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호 박병기 고성식 백도인 김선호 노승혁 한무선 양지웅 홍현기 형민우 이주형 김동민 장지현 기자)
/연합뉴스
'이름 비공개, 전담팀 운영' 지자체·기관 대책 분주…"투명행정 역행" 지적도 악성 민원으로 인해 공무원들이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거나 극단적 선택까지 내몰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 지자체나 각 기관 등에서는 공무원 이름과 사진을 비공개하거나 전담 대응팀을 운영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직원 비공개 조치가 투명 행정을 저해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 전국 악성 민원인 2천700여 명…"공무원들에게 폭언은 일상"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힘들게 이 자리에 왔는데, 이런 모욕이나 들으려고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
울산 한 지자체에서 8년째 근무 중인 공무원 A씨는 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A씨는 "폭언이나 고성, 욕설은 공무원들에게 기본"이라며 "빈도를 언급할 것도 없이 그런 말 듣고 사는 건 그냥 일상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당한 행정 처분에 대해 고성을 지르며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모욕적인 소리를 하는 민원인을 만나면 분노가 차오른다"며 "동료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 봐 참고 또 참지만, 반복되는 악성 민원에 응어리가 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많이 쌓인다"고 호소했다.
이날 발표된 국민권익위원회 '악성 민원 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악성 민원인은 2천784명에 달했다.
기관별로는 기초 지방자치단체 1천372명, 중앙행정기관 1천124명, 광역 지방자치단체 192명, 교육청 96명 순이었다.
유형별로는 업무 담당자 개인 전화로 문자 수백통을 여러 차례 발송하는 '상습·반복' 유형(48%·1천340명)과 '폭언·폭행·협박' 유형(40%·1천113명)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담당 공무원 실명 공개 후 항의 전화를 독려하는 '좌표 찍기' 유형도 6%(182명)에 달했고, 민원 처리 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과도하게 정보 공개를 청구하거나 비이성적 주장을 하는 유형(3%·80명)도 적지 않았다.
◇ 지역·기관 불문…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들
이러한 악성 민원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지역과 기관을 불문하고 잇따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경기 김포시 소속 9급 공무원 B씨가 인천 한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도로 포트홀 보수 공사로 인한 차량 정체로 항의성 민원에 시달렸고, 온라인 카페에서는 공사를 승인한 주무관이 B씨라며 그의 실명과 소속 부서, 직통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가 공개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경남 밀양에서는 부산교육청 소속 한 장학사가 숨진 채 발견된 일도 있었다.
A씨는 부산 한 학교에서 시행 중이던 내부형 교장 공모제 재지정이 불발된 뒤 관련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말뿐 아니라 실제 물리적 폭행과 위협으로 이어진 악성 민원도 적잖다.
지난해 9월 충남 천안에서는 50대 민원인이 주민등록증 교체를 위해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가 '새 사진을 가져와야 한다'는 공무원 안내에 불만을 품고 흉기 난동을 벌였다.
지난 4월 충북 옥천군청에서는 태양광 발전시설 허가에 불만을 품은 한 민원인이 하루가 멀다고 관련 부서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고함을 치고 난동을 부렸다.
이 민원인은 군청 현관에서 상복 차림으로 술을 마시며 소리를 지르고, 복도에 소변을 보는 등 행패를 부리다가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물러났다.
◇ 직원 비공개·민원 전담반…지자체·교육 당국 보호 총력
일선 지자체와 교육청, 학교는 악성 민원 예방 차원에서 공무원 이름, 직함, 사진 등을 잇달아 비공개로 전환하고 있다.
그간 민원인 편의를 위해 담당 업무와 함께 제공해 왔던 직원 정보를 민원인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구와 경북, 전북, 울산, 부산 등 전국 각지의 일부 기초지자체는 최근 웹사이트의 담당자 이름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경기도는 이달 1일부터 홈페이지 조직도에서 6급 이하 직원 실명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성씨만 조직도에 게시했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5월부터 홈페이지에서 실·국장과 과장·팀장급까지만 이름을 공개하고 그 이하 직원은 이름을 비공개하고 있다
폭언과 폭행으로부터 민원 창구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녹화 장비와 모의 훈련을 제공하거나 안전요원을 배치하기도 한다.
경남 창원시는 앞서 휴대용 보호장비 175대를 배부한 데 이어 이달 중 웨어러블 캠 117대를 추가 보급하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전문 안전요원을 시범 배치하기로 했다.
전북 군산시는 민원 처리가 많은 30곳에 근거리 영상녹화와 음성녹음이 가능한 웨어러블 카메라를 보급하고, 경찰이나 보안업체와 합동으로 매년 두차례 '비상 대응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피해를 본 직원의 소송 비용을 제공하는 기관도 있다.
파주시는 고문변호사 및 변리사 운영 조례를 개정해, 소속 공무원이 폭언과 폭행 등 특이 민원에 노출될 경우 시 소속 고문변호사를 통해 고소·고발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 당국은 교직원 개인이 아닌 기관 차원에서 민원에 대응하도록 창구를 일원화하는 추세다.
대구시교육청은 본청과 5개 교육지원청에 통합 민원팀 15개를 새로 설치해 학교 차원에서 대응이 어려운 민원을 전담하도록 했다.
제주도교육청도 일선 학교는 학교장 책임하에 민원 대응팀을, 교육지원청은 교육장 직속 통합 민원팀을 운영해 학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민원을 처리하도록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수업 중인 교사를 예고 없이 방문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학교 방문 사전 예약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인공지능(AI) 기본 민원 상담 챗봇도 도입했다.
경남도교육청은 교육감 직속 교육활동 보호 담당관을 설치하고, 대전교육청은 학교별 변호사를 배정해 피해를 본 교직원에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모든 학교에 녹음 전화기를 설치한다.
◇ 직원 비공개에 '투명행정 역행' 지적도
일각에서는 공무원 이름 비공개 조치가 이른바 '열린 행정'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민원을 핑계로 담당자 이름을 가리는 것은 과거 공무원들의 '업무 돌리기' 등 구시대에 겪었던 불편을 다시 야기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에게는 내 불편에 대한 업무를 공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다"며 "당장 공무원들이 힘들다는 걸 이유로 이름을 가리자는 것은 100개 중 99개의 정상 민원에 대한 공공기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악성 민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상급자나 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의 경우 낮은 연차인 경우가 많다"며 "경험과 권한이 없고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는 낮은 연차 공무원 대신 상급자가 유연하고 엄정하게 민원인을 상대해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민원 업무 과중의 근본적인 원인은 공무 범위 확대라는 분석도 잇다.
정준금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 서비스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돼 민원의 대상이 아닌 것까지 공무원들 업무가 돼버린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아파트에 이삿짐을 넣어야 하는데 불법 주차 때문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구청에 전화하는 등 공무가 아닌 일에 공무원이 투입되는 경우가 꽤 많다"며 "개인 간의 문제에 행정기관이 개입해 불필요한 민원이 늘어나게 되는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호 박병기 고성식 백도인 김선호 노승혁 한무선 양지웅 홍현기 형민우 이주형 김동민 장지현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