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에 고향 떠난 모험가, 전설 속 이야기로 '동방 원정'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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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출신 영국 화가 파토 보시치
선화랑 개인전 '마술적 균형' 열어
선화랑 개인전 '마술적 균형' 열어
그리스·로마 신화의 한 장면 같다. 헬멧을 쓴 전사가 군마를 타고 평원을 질주하고 있다. 신체 일부는 안개 속에 파묻힌 것처럼 가려졌다. 세월이 흐르며 지워진 고건물 벽화, 파편 일부가 떨어진 그리스 조각상 같은 모양새다. 기원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을 묘사한 '동쪽으로의 도착'(2021)이다.
칠레 출신 영국 화가 파토 보시치(46)가 '동방 원정'에 나섰다. 10대 때 고향 남미를 떠난 작가는 독일과 헝가리, 러시아 등을 여행한 모험가다. 최근 신화와 전설에 관한 은유를 담은 풍경화를 들고 서울 인사동의 터줏대감 선화랑을 찾았다. 그의 첫 한국 여행이자 아시아에서 처음 연 개인전 '마법적 균형'이다.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체크무늬 남방을 걸치고 나타난 작가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농담을 곁들이며 작품을 소개했다. "제 작업의 핵심은 세상을 여행하는 겁니다. 유럽의 '앤티크'적인 요소들이 서로 다른 문화권을 융합하는 매개가 됐습니다."
칠레에서 태어난 작가는 깎아지른 듯한 안데스산맥과 거친 태평양 파도를 보며 자랐다. 18세에 홀로 유럽으로 건너갔다. '풍랑에 휘말린 듯 영국에 난파했다'는 저자는 1906년경 지어진 런던 북부의 교회 건물에 정착했다. 도시를 비추는 창문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포탈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작가는 일주일에 하루는 종일 박물관에 머무른다. 시리아와 중국, 이집트 관련 유물을 관찰하며 스케치하기 위해서다. 이후 화폭을 스튜디오에 가져온 뒤, 빈자리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우면서 작업이 완성된다. 그의 풍경화에 고대 유물과 남미의 자연, 현대 런던의 길거리가 뒤섞이게 된 배경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 안팎을 그린 회화가 배치됐다. 현실과 상상이 혼재한다. 탁자 위에 놓인 화구와 캔버스 옆에 고대 조각상의 잔상이 보인다. 창밖으로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영웅들이 헤쳐 나갔을 법한 거대한 파도가 일렁인다. 작가는 "관람객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법 같은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전설 속의 영웅들과 이들이 타고 다니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파도를 가르며 질주하는 백마 두 마리를 그린 '전차'(2022)도 그중 하나다. 타로에서 '전차'는 진취적인 에너지를 상징하곤 한다. "중국과 유럽의 말 등 다양한 관련 설화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가끔은 저 자신이 말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하하." 1~2층에 전시된 유화 작업을 지나면 3층의 흑백 드로잉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여행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조각상 특유의 대리석 질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을 고민하던 그는 평소 즐기던 와인과 잉크를 섞었다. 잘 섞이지 않은 물감이 등고선처럼 펼쳐진 드로잉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번 전시는 1977년 설립된 선화랑이 소더비 인스티튜트 학장을 역임한 이언 로버트슨 홍익대 교수, 영국의 미술기획자 클레어 맥캐슬린이 함께 기획했다. 2020~2023년 사이 제작된 보시치의 회화 22점과 드로잉 46점이 걸렸다. 전시는 8월 3일까지. 안시욱 기자
칠레 출신 영국 화가 파토 보시치(46)가 '동방 원정'에 나섰다. 10대 때 고향 남미를 떠난 작가는 독일과 헝가리, 러시아 등을 여행한 모험가다. 최근 신화와 전설에 관한 은유를 담은 풍경화를 들고 서울 인사동의 터줏대감 선화랑을 찾았다. 그의 첫 한국 여행이자 아시아에서 처음 연 개인전 '마법적 균형'이다.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체크무늬 남방을 걸치고 나타난 작가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농담을 곁들이며 작품을 소개했다. "제 작업의 핵심은 세상을 여행하는 겁니다. 유럽의 '앤티크'적인 요소들이 서로 다른 문화권을 융합하는 매개가 됐습니다."
칠레에서 태어난 작가는 깎아지른 듯한 안데스산맥과 거친 태평양 파도를 보며 자랐다. 18세에 홀로 유럽으로 건너갔다. '풍랑에 휘말린 듯 영국에 난파했다'는 저자는 1906년경 지어진 런던 북부의 교회 건물에 정착했다. 도시를 비추는 창문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포탈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작가는 일주일에 하루는 종일 박물관에 머무른다. 시리아와 중국, 이집트 관련 유물을 관찰하며 스케치하기 위해서다. 이후 화폭을 스튜디오에 가져온 뒤, 빈자리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우면서 작업이 완성된다. 그의 풍경화에 고대 유물과 남미의 자연, 현대 런던의 길거리가 뒤섞이게 된 배경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 안팎을 그린 회화가 배치됐다. 현실과 상상이 혼재한다. 탁자 위에 놓인 화구와 캔버스 옆에 고대 조각상의 잔상이 보인다. 창밖으로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영웅들이 헤쳐 나갔을 법한 거대한 파도가 일렁인다. 작가는 "관람객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법 같은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전설 속의 영웅들과 이들이 타고 다니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파도를 가르며 질주하는 백마 두 마리를 그린 '전차'(2022)도 그중 하나다. 타로에서 '전차'는 진취적인 에너지를 상징하곤 한다. "중국과 유럽의 말 등 다양한 관련 설화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가끔은 저 자신이 말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하하." 1~2층에 전시된 유화 작업을 지나면 3층의 흑백 드로잉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여행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조각상 특유의 대리석 질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을 고민하던 그는 평소 즐기던 와인과 잉크를 섞었다. 잘 섞이지 않은 물감이 등고선처럼 펼쳐진 드로잉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번 전시는 1977년 설립된 선화랑이 소더비 인스티튜트 학장을 역임한 이언 로버트슨 홍익대 교수, 영국의 미술기획자 클레어 맥캐슬린이 함께 기획했다. 2020~2023년 사이 제작된 보시치의 회화 22점과 드로잉 46점이 걸렸다. 전시는 8월 3일까지.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