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네덜란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하나 베르부츠의 베스트셀러 <우리가 본 것>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하나 베르부츠가 2021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며 집필한 소설로, 콘텐츠 감수자들의 세계를 생생하고도 인상적으로 묘사하며 화제를 모았다. 네덜란드에서만 65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중국 등 14개국에 번역 소개되었으며, 현재 텔레비전 드라마를 위한 각색이 진행 중이다.
하나 베르부츠 『우리가 본 것』(북하우스)
하나 베르부츠 『우리가 본 것』(북하우스)
<우리가 본 것>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거대 플랫폼 회사의 하청 회사인 ‘헥사’에 소속되어 유해 게시물로 신고된 게시물들을 검토하고 삭제하는 콘텐츠 감수자들의 세계를 속도감 있는 문체로 묘사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온/오프라인 세계의 무른 경계를 꼬집고, 우리가 세워놓은 도덕적 기준의 약한 근거를 들추는 이 작품은 오늘날 세상을 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매혹적이고 불안한 소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업무
온라인 플랫폼을 청소하는 사람들


선정적인 묘사, 혐오 표현, 강간, 자살 시도, 학대, 참수 장면… 온라인 세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가득하다. 소위 온라인 청소부인 콘텐츠 감수자들은 이러한 콘텐츠를 평가하여 ‘디지털 쓰레기’에 해당하는 경우 플랫폼에서 삭제한다. 전 세계에는 사람들이 신고한 게시물을 면밀히 검토하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 케일리도 그중 한 명이다.

케일리는 옛 연인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퍼주다 빈털터리가 되어 콜센터보다 높은 시급을 주는 ‘헥사’에 취직한다. 그리고 하루에 500개의 클립을 확인하고 평가해야 하며 화장실에 가려고 책상에서 일어서면 곧장 스톱워치가 작동하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일하게 된다. 게다가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회사 때문에 사무실에는 필기도구를 비롯해 그 어떤 물건도 들일 수 없다. 그러나 케일리는 이전 직장에서와 달리 ‘헥사’에서는 아무도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아서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헥사’를 그만두고 난 지금도 콘텐츠 삭제 규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외울 수 있다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회상한다. 동영상은 언제 삭제해야 할까? 피가 보인다면 삭제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이 명백히 웃긴다면 괜찮다. 가학성이 개입되어 있으면 삭제해야 한다. 하지만 게시물의 내용이 교육적 가치가 있는 경우는 또 괜찮다. 이 모든 규정을 지금까지 외우고 있는 케일리가 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독자들은 그녀의 말속에서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녀의 냉정한 태도는 보호 기제 또는 억압 메커니즘일 뿐이라는 것을.

매일같이 ‘유해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
그들이 보는 화면은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케일리의 동료들은 매일같이 폭력적인 게시물을 접하면서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되고, 결국 ‘헥사’에게 하청을 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거대 플랫폼 회사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케일리의 눈을 통해 케일리의 동료들이 서서히 미쳐가는 세계, 취한 상태에서만 일상을 견디며 점차 음모 서사의 세계로 빠져드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동료들은 우울해하고, 편집증으로 인해 테이저건을 들고 잠자리에 들고, 슈퍼마켓에서 누군가 뒤에 서 있으면 움찔한다.

케일리는 어떨까? 케일리는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헥사’에서 다섯 살 연상의 아름다운 동료 시흐리트와 사귀게 되면서 끔찍한 장면들을 보고도 치워둘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폭한 게시물들은 곧 두 사람의 사생활과 연애에 침입하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삭제한다고 해서 머릿속에서도 지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접하는 잔인한 게시물에 심한 충격을 받은 시흐리트는 구기자 열매, 치아시드, 알코올을 섞어 스스로를 치료하려고 한다. 케일리는 그 행동들을 외면한다.

시흐리트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서사의 전환점이 된다. 이제 케일리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아니, 오직 충격적인 상황만이 그녀를 깨우고 그녀가 오랫동안 빠져 있던 심연의 깊이를 깨닫게 할 수 있다. 게시물 속 주인공을 찾아 떠나는 결말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고 소설은 클라이맥스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속도감 있는 문체는 케일리의 비참함을 칼로 끊어내듯 보여준다.

인터넷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디지털 세계의 어두운 이면을 그려낸 수작


하나 베르부츠는 비교적 짧은 분량의 작품에서 심리적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빠른 서사 속도로 압축해냈고, 이를 통해 디지털 커뮤니티가 품고 있는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측면들을 독자들 앞으로 끌어냈다. 인터넷에서 ‘정상’은 누가 결정할까? 무엇이 우리의 필터에 걸리는 것일까? 도덕적 개념을 무디게 하고 사용자를 감정적 좀비로 만드는 이미지들은 비단 케일리를 건드리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전체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소설은 재미와 속도감으로 읽는 즐거움을 추동하면서도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작가 하나 베르부츠는 이 소설은 모두 허구이지만 현실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현실에서 자료를 찾고 탐색하면서 빚어낸 소설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본 것>은 우리가 디지털 세계를 매일같이 경험하며 겪는 문제들을 날카롭게 다루어 독자들을 디지털 세계의 심연으로 깊숙이 끌어들일 것이다.

북하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