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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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부근에서 지난 1일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에서 급발진이 쟁점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페달 블랙박스’가 주목받고 있다. 페달 블랙박스는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촬영해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은 시점을 증명하는 영상 장비로, 급발진을 입증할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3일 네이버 데이터랩의 월별 검색량 추이에 따르면, ‘페달 블랙박스’ 검색량 지수는 6월 2일 2에서 7월 2일 100으로 50배 급증했다. 시청역 역주행 사고 가해자가 '급발진이다'고 주장한 여파로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운전자들의 불안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방, 후방, 페달을 촬영하는 '3채널 급발진 블랙박스' 실사용 모습./영상=지넷시스템 제공
전방, 후방, 페달을 촬영하는 '3채널 급발진 블랙박스' 실사용 모습./영상=지넷시스템 제공
급발진 사고는 인정받기가 어렵다. 현행법은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 발생 시 그 입증책임을 제조사가 아닌 운전자가 지도록 하고 있어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 5월까지 15년여간 급발진 의심 차량 신고 건수는 총 793건이다. 하지만 제조사 과실을 인정한 대법원 확정 판례는 지금껏 전무한 실정이다.

2022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12살 이도현 군이 숨진 급발진 의심 사고의 손해배상 소송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운전자인 할머니가 “아이고 이게 왜 안 돼”라고 외치는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지만, 자동차 제조사인 KG모빌리티는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도현 군 가족은 '급발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차량 감정과 급발진 재연시험에 수천만 원을 썼다.

2016년 부산에서 물놀이를 가던 일가족 4명이 숨진 부산 싼타페 사고 관련, 유족 측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2심 모두 패소했다. 운전자가 택시 기사 출신이고 정상 주행하던 차량이 갑자기 빨라지는 블랙박스 영상도 공개됐으나 법원은 “착오로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고 전·후 일정 시간 동안 자동차의 운행 정보를 저장하고 저장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인 사고기록장치(EDR)도 급발진 증명에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문철 변호사는 “(EDR은) 당시 상황을 기록할 뿐 운전자의 행태를 알 수는 없다”며 “운전자가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영상”이라고 강조했다.
페달 블랙박스가 차내에 부착된 모습./사진=지넷시스템 제공
페달 블랙박스가 차내에 부착된 모습./사진=지넷시스템 제공
결국 운전자가 정상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서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페달 블랙박스가 관심을 모은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최초로 급발진 블랙박스 특허를 취득한 지넷시스템 관계자는 “전방, 후방, 페달을 동시에 촬영하는 신제품 블랙박스의 초동 물량 5000개가 완판됐다”고 전했다.

정부도 페달 블랙박스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도입을 검토했지만, 자동차 제조사의 반발에 가로막혔다.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자동차 페달용 블랙박스 설치를 제조업체에 권고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은 국토부에 "소비자가 페달용 블랙박스 옵션 판매를 공감할지 의문", "빌트인캠 형식의 페달 블랙박스 개발은 최소 3~5년 정도 소요된다"고 국토부의 권고를 사실상 거부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