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빛내준 '어느 멋진 날, 완벽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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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옥미나의 아트하우스 칼럼
영화 <퍼펙트 데이즈>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주연 야쿠쇼 코지, 제76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영화 <퍼펙트 데이즈>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주연 야쿠쇼 코지, 제76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일본 재단(Nippon Foundation)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브랜딩 사업으로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안도 타다오, 쿠마 켄고, 반 시게루 등 저명한 일본 건축가들에게 시부야 일대 공중화장실 17곳의 설계를 맡긴 것. 올림픽 기간 동안 도쿄를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들에게 공중화장실을 통해 일본의 ‘환대 문화’를 보여주겠다는 야심 찬 기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의 창궐로 도쿄 올림픽이 무관중으로 개최되면서 6년 만에 완공한 회심의 화장실 프로젝트를 세계 언론에 노출할 기회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몇 년 후 들려온 소식은 얼핏 고약한 농담 같았다. 일본 재단이 도쿄 화장실을 소재로 삼는 조건으로 제작비를 부담하고 빔 벤더스가 ‘무언가’를 만든다고 했다. <도쿄가>(1985), <도시와 옷에 놓인 공책>(1989)을 떠올리면 빔 벤더스는 분명 도쿄라는 도시 묘사의 적임자 같았지만, 자칫 블록버스터급 홍보 영상물이 되는 건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일본 재단이 애초에 요구했던 ‘사진 혹은 4개의 단편 옴니버스 중 1편’ 대신 장편 영화로 형식이 달라지고, 야쿠쇼 코지가 주연으로 합류하면서 마침내 도쿄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자의 일과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포착한 <퍼펙트 데이즈>가 완성되었다.
▶▶▶ [관련 리뷰] 일상 속에서 빛나는 생의 찬미,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영화의 워킹 타이틀은 고모레비(木漏れ日) -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다. 한국어에도 ‘볕뉘’라는 비슷한 단어가 있다. 작은 틈을 통해 잠시 비치는 햇볕,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 볕의 그림자를 의미한다. 이 유사한 단어들은 모두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모레비도 볕뉘도 잠시 반짝이는 찰나에만 존재한다. 히라야마가 실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나뭇가지와 그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그날 그 오후 그 순간에만 잠깐 존재하는 것들이다. 히라야마는 ‘지금’의 각별한 소중함을 잘 안다. 바다를 보러 가자는 조카에게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고 대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이 정확히 언제일지 모르는 막연한 미래라면, 대신 집중해야 하는 것은 지금이다. 지금은 성실하게, 충만하게 – 기필코 잘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에 대한 정보는 적다. 그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낼뿐 아니라 원래 말이 없는 사람 같다. 반복되는 일과를 관찰하는 동안 확실해지는 것은 그가 성실하고 건강하게 하루를 보낸다는 것. 새벽 길가의 마른 비질 소리에 잠을 깨고, 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뭔가 좋은 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웃는 얼굴로 하늘을 올려보고, 곧 더러워질 것이 뻔한 화장실을 몹시 꼼꼼히 청소하고, 공중목욕탕에 들렀다가 지하철 개찰구 옆 단골 술집에서 딱 한 잔을 마시고, 책을 읽다 잠드는 것이 단조로운 일상의 거의 전부다.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 <피안화><1958), <꽁치의 맛>(1962) 등에 등장했던 히라야마가 이제는 동경의 변두리에 혼자 사는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된 것 같다. 오즈의 히라야마들을 떠올리면 4:3의 화면 비율도 낯설지 않다. <퍼펙트 데이즈>는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해 질문한다. 길모퉁이에서 만난 노인은 공터에 서서 여기 있었던 건물이 뭐였냐고 묻는다. 카메라가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어떤 목소리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림자에 대해 묻는 남자도 있다. 그는 ‘다음’으로 기약할 수 있는 미래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뭇잎 사이의) 햇빛’에 집중하는 히라야마에게 그는 그늘에 대해 혼잣말처럼 묻는다. 그를 위해 좌우로 몸을 움직여가며 그림자의 농도 차이를 주장하는 히라야마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열심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히라야마의 목소리가 유일하게 높아진 순간에는 그 균열 사이로 잠깐 그의 과거가 드러난 것도 같다. 시간은 흐르고 어떤 것들은 사라지며 또 어떤 것들은 영영 잊힐 것이다. 우리의 삶도 아마 (애석하지만) 그럴 것이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을 은밀한 구호로 삼고 딱 지금만 충만하게, 성실하게 사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그간 몇몇 일본 영화들이 이를 악물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 외치거나 남은 삶을 담담하게 – 속죄의 방식으로 삼아 견디고 참아낼 것을 요구했다면 <퍼펙트 데이즈>는 대단한 결심이나 각오를 들먹이지 않는다. 그저 이어지는 소박하고 단정한 삶을 하루 단위로 묘사할 뿐이다. 야쿠쇼 코지의 마지막 롱테이크에서 기어코 뭉클해졌다면, 연기력에 대한 감탄에 앞서 사실은 똑같은 마음이 되어본 적이 있어 그럴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옥미나 영화평론가
몇 년 후 들려온 소식은 얼핏 고약한 농담 같았다. 일본 재단이 도쿄 화장실을 소재로 삼는 조건으로 제작비를 부담하고 빔 벤더스가 ‘무언가’를 만든다고 했다. <도쿄가>(1985), <도시와 옷에 놓인 공책>(1989)을 떠올리면 빔 벤더스는 분명 도쿄라는 도시 묘사의 적임자 같았지만, 자칫 블록버스터급 홍보 영상물이 되는 건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일본 재단이 애초에 요구했던 ‘사진 혹은 4개의 단편 옴니버스 중 1편’ 대신 장편 영화로 형식이 달라지고, 야쿠쇼 코지가 주연으로 합류하면서 마침내 도쿄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자의 일과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포착한 <퍼펙트 데이즈>가 완성되었다.
▶▶▶ [관련 리뷰] 일상 속에서 빛나는 생의 찬미,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영화의 워킹 타이틀은 고모레비(木漏れ日) -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다. 한국어에도 ‘볕뉘’라는 비슷한 단어가 있다. 작은 틈을 통해 잠시 비치는 햇볕,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 볕의 그림자를 의미한다. 이 유사한 단어들은 모두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모레비도 볕뉘도 잠시 반짝이는 찰나에만 존재한다. 히라야마가 실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나뭇가지와 그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그날 그 오후 그 순간에만 잠깐 존재하는 것들이다. 히라야마는 ‘지금’의 각별한 소중함을 잘 안다. 바다를 보러 가자는 조카에게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고 대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이 정확히 언제일지 모르는 막연한 미래라면, 대신 집중해야 하는 것은 지금이다. 지금은 성실하게, 충만하게 – 기필코 잘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에 대한 정보는 적다. 그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낼뿐 아니라 원래 말이 없는 사람 같다. 반복되는 일과를 관찰하는 동안 확실해지는 것은 그가 성실하고 건강하게 하루를 보낸다는 것. 새벽 길가의 마른 비질 소리에 잠을 깨고, 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뭔가 좋은 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웃는 얼굴로 하늘을 올려보고, 곧 더러워질 것이 뻔한 화장실을 몹시 꼼꼼히 청소하고, 공중목욕탕에 들렀다가 지하철 개찰구 옆 단골 술집에서 딱 한 잔을 마시고, 책을 읽다 잠드는 것이 단조로운 일상의 거의 전부다.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 <피안화><1958), <꽁치의 맛>(1962) 등에 등장했던 히라야마가 이제는 동경의 변두리에 혼자 사는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된 것 같다. 오즈의 히라야마들을 떠올리면 4:3의 화면 비율도 낯설지 않다. <퍼펙트 데이즈>는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해 질문한다. 길모퉁이에서 만난 노인은 공터에 서서 여기 있었던 건물이 뭐였냐고 묻는다. 카메라가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어떤 목소리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림자에 대해 묻는 남자도 있다. 그는 ‘다음’으로 기약할 수 있는 미래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뭇잎 사이의) 햇빛’에 집중하는 히라야마에게 그는 그늘에 대해 혼잣말처럼 묻는다. 그를 위해 좌우로 몸을 움직여가며 그림자의 농도 차이를 주장하는 히라야마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열심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히라야마의 목소리가 유일하게 높아진 순간에는 그 균열 사이로 잠깐 그의 과거가 드러난 것도 같다. 시간은 흐르고 어떤 것들은 사라지며 또 어떤 것들은 영영 잊힐 것이다. 우리의 삶도 아마 (애석하지만) 그럴 것이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을 은밀한 구호로 삼고 딱 지금만 충만하게, 성실하게 사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그간 몇몇 일본 영화들이 이를 악물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 외치거나 남은 삶을 담담하게 – 속죄의 방식으로 삼아 견디고 참아낼 것을 요구했다면 <퍼펙트 데이즈>는 대단한 결심이나 각오를 들먹이지 않는다. 그저 이어지는 소박하고 단정한 삶을 하루 단위로 묘사할 뿐이다. 야쿠쇼 코지의 마지막 롱테이크에서 기어코 뭉클해졌다면, 연기력에 대한 감탄에 앞서 사실은 똑같은 마음이 되어본 적이 있어 그럴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옥미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