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겸 장애인 무용수 김원영 "좋은 춤 추는 데 자격은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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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서 전업무용수로
휠체어 내려와 퍼포먼스
"좋은 춤은 잘 추는 춤과 달라"
휠체어 내려와 퍼포먼스
"좋은 춤은 잘 추는 춤과 달라"
무용수 김원영(42·사진)은 3년 전 가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대학원에 지원했다. 수험생들에게 "키가 160㎝가 안 되면 무용을 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입시 업계의 조언을 뒤로 한 채, 휠체어를 타고 수험장에 도착해 면접관들 앞에서 춤을 췄다. 결과는 불합격. 이듬해 한예종은 무용원과 전통예술원 등에서 장애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국정감사 질의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신체적·지적 장애학생은 전공 특성상 필요한 '고도의 신체능력'과 '긴밀한 협업능력',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몰두하는 인내력' 등이 부족하다는 답변이었다.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김원영은 어려서부터 걷지 못했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특수학교 중학부와 일반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와 같은 학교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됐다. 지금은 무용수로 활약 중이다. 프로젝트이인과 협업해 만든 '무용수-되기'란 작품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 3개국에서 공연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산하 서울무용센터의 레지던시(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작업 공간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작가로 선정돼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김원영은 최근 신체적 장애를 가진 무용수로서의 고민과 경험을 춤의 역사와 함께 풀어 낸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을 냈다. 김원영이 무대에 서기 시작한 건 2013년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이란 공연팀을 만들고나서부터지만, 스스로를 '무용수'라고 인정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 연극 형태로 공연을 시작했지만, 그때도 내가 하는 작업과 연기는 무용에 가까웠다"면서도 "무대에서 보여주는 내 몸짓을 춤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무용을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한 동료가 휠체어에서 내려와 표현해보는 건 어떻냐는 제안을 했지만 김원영은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휠체어가 없는 본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마치 나체로 관객 앞에 서는 것과 같이 느껴져서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퍼포먼스를 하기 시작한 건 2019년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란 공연부터다. 김원영은 이 작품에서 휠체어 없이 무대를 독무로 채웠다.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 함께 바닥을 구르는 퍼포먼스도 만들었다. 그는 "여전히 휠체어 없이 움직이는 건 벌거벗은 느낌이 없지 않다"면서도 "무용수로서 기존의 관습과 전형을 뛰어넘을 수 있는 몸을 가졌다는 건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책은 김원영이 변호사에서 전업 무용수로 정체성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대학과 로스쿨에서 장애 인권에 대한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본인을 꾸준히 외쳐왔지만, 어딘가 공허했다. 말과 언어를 비롯한 관념으로 타인 앞에 서는 것보다, 물리적 신체를 가진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무용은 그런 그의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김원영은 "변호사보다 무용수가 더 적성에 맞는다"며 "창조적이며 개방적인 분위기도 좋고, 몸을 쓰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했다.
김원영의 책은 자연스럽게 장애인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만 말하는 책도 아니다. 어린 시절 길고 튼튼한 다리로 위장하기 위해 플라스틱 파일 커버로 덧댄 큰 바지를 입은 개인적 일화부터 이사도라 덩컨과 세르게이 댜길레프, 바츨라프 니진스키, 최승희 등 무용 역사상 획을 그은 혁신가들의 이야기가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책에서 김원영은 '좋은 춤'은 '잘 추는 춤'과 다르다고 말한다. 좋은 춤은 사회가 아름답다고 규정한 특정한 몸과 움직임의 범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된 움직임이다. 신체적 조건이나 기술적 부분을 떠나, 한 시대의 가치관과 예술에 분명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커다란 존재감으로 관객에게 닿을 수 있는 선명한 춤이 그에게 있어 좋은 춤이란 설명이다.
"배리어프리(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제거하는 운동)가 공연계의 주요 화두가 되긴 했지만, 아직도 저 뿐만 아니라 장애인 창작자들이 제도권에서 예술을 배우긴 쉽지 않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좋은 춤을 추는 데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요. 무대 바닥을 뒹굴고, 어깨와 팔로 중력을 밀어내며, 온 몸을 이용해서요."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김원영은 어려서부터 걷지 못했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특수학교 중학부와 일반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와 같은 학교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됐다. 지금은 무용수로 활약 중이다. 프로젝트이인과 협업해 만든 '무용수-되기'란 작품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 3개국에서 공연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산하 서울무용센터의 레지던시(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작업 공간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작가로 선정돼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김원영은 최근 신체적 장애를 가진 무용수로서의 고민과 경험을 춤의 역사와 함께 풀어 낸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을 냈다. 김원영이 무대에 서기 시작한 건 2013년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이란 공연팀을 만들고나서부터지만, 스스로를 '무용수'라고 인정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 연극 형태로 공연을 시작했지만, 그때도 내가 하는 작업과 연기는 무용에 가까웠다"면서도 "무대에서 보여주는 내 몸짓을 춤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무용을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한 동료가 휠체어에서 내려와 표현해보는 건 어떻냐는 제안을 했지만 김원영은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휠체어가 없는 본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마치 나체로 관객 앞에 서는 것과 같이 느껴져서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퍼포먼스를 하기 시작한 건 2019년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란 공연부터다. 김원영은 이 작품에서 휠체어 없이 무대를 독무로 채웠다.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 함께 바닥을 구르는 퍼포먼스도 만들었다. 그는 "여전히 휠체어 없이 움직이는 건 벌거벗은 느낌이 없지 않다"면서도 "무용수로서 기존의 관습과 전형을 뛰어넘을 수 있는 몸을 가졌다는 건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책은 김원영이 변호사에서 전업 무용수로 정체성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대학과 로스쿨에서 장애 인권에 대한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본인을 꾸준히 외쳐왔지만, 어딘가 공허했다. 말과 언어를 비롯한 관념으로 타인 앞에 서는 것보다, 물리적 신체를 가진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무용은 그런 그의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김원영은 "변호사보다 무용수가 더 적성에 맞는다"며 "창조적이며 개방적인 분위기도 좋고, 몸을 쓰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했다.
김원영의 책은 자연스럽게 장애인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만 말하는 책도 아니다. 어린 시절 길고 튼튼한 다리로 위장하기 위해 플라스틱 파일 커버로 덧댄 큰 바지를 입은 개인적 일화부터 이사도라 덩컨과 세르게이 댜길레프, 바츨라프 니진스키, 최승희 등 무용 역사상 획을 그은 혁신가들의 이야기가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책에서 김원영은 '좋은 춤'은 '잘 추는 춤'과 다르다고 말한다. 좋은 춤은 사회가 아름답다고 규정한 특정한 몸과 움직임의 범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된 움직임이다. 신체적 조건이나 기술적 부분을 떠나, 한 시대의 가치관과 예술에 분명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커다란 존재감으로 관객에게 닿을 수 있는 선명한 춤이 그에게 있어 좋은 춤이란 설명이다.
"배리어프리(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제거하는 운동)가 공연계의 주요 화두가 되긴 했지만, 아직도 저 뿐만 아니라 장애인 창작자들이 제도권에서 예술을 배우긴 쉽지 않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좋은 춤을 추는 데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요. 무대 바닥을 뒹굴고, 어깨와 팔로 중력을 밀어내며, 온 몸을 이용해서요."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