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BBC 보도화면 캡처
사진=BBC 보도화면 캡처
유치원을 다닐 때 처음 만나 약 50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온 네덜란드의 한 부부가 동반 안락사로 같은 날 눈을 감았다.

최근 BBC는 네덜란드 부부 얀 파버(70)와 엘스 반 리닝겐(71) 부부가 지난달 3일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고 보도했다.

유치원 시절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친구로 지내다가 20대 때 결혼해 아들을 한 명 낳았다. 얀은 네덜란드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하키 선수로 활약했고 스포츠 코치로 일했다. 엘스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이들은 보트와 항해를 사랑했으며 결혼 생활 대부분을 모터홈이나 보트에서 보냈다. 화물선을 구매해 화물 운송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평생을 서로의 곁에 머물며 캠핑을 하고 보트를 타는 등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무거운 화물을 옮겨가며 일한 얀은 허리 통증으로 2003년 수술을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2018년 교사직에서 은퇴한 엘스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였으나 의사를 찾지 않았고, 결국 2022년 11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들은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아들과 동반 안락사에 관해 논의했다고 한다. 얀은 "진통제를 많이 먹으면 좀비처럼 살아야 했다"며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아내의 치매를 생각했을 때 이 삶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안락사 전날 아들,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산책했고,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에 모든 가족이 함께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부부의 가족과 친구들이 지역 호스피스에 모여 2시간 동안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의사에게 약물을 투여받고 몇 분 만에 함께 생을 마감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와 조력 사망이 합법이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요청하고 의사가 '신체적 혹은 심리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개선 전망이 없을 때 가능하다. 최소 2명의 의사가 절차에 동의해야 한다. 다만 얀, 엘스 부부를 두고는 의사들도 안락사 결정을 꺼린 것으로 전해졌다. 과연 치매가 합법적인 안락사의 조건인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얀은 "(아들이) '부모님이 죽는 걸 원치 않는다. (병을 고칠 수 있는) 더 나은 시대가 올 거다'라고 말해 눈물이 났다"면서도 "나와 엘스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로 사망한 사람은 9068명으로, 이는 전체 사망자 수의 약 5%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동반 안락사 사례는 33건으로 총 66명이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