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협박에 삿대질까지…기업인 벌세우는 국회
“이러니까 배임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지난 2일 국회 과학방송정보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증인으로 출석한 최수연 네이버 대표에게 여러 차례 ‘배임’이란 단어를 꺼냈다. 최고경영자(CEO)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호통이었다. ‘라인야후 사태’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정부나 국회가 도울 일이 있는지를 살펴보겠다던 취지는 온데간데없었다.

오후 4시에 시작한 회의는 밤 12시까지 이어졌다. 최 대표가 “단기적으로는 라인야후(A홀딩스) 지분 매각을 하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고 말한 뒤 윽박지르기성 질의가 절정에 달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왜 이 자리에서 중장기적으로는 팔 의향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합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그냥 안 팔겠다 그러면 되잖아요”라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

라인야후 사태를 겪는 동안 네이버 시가총액이 크게 빠진 점을 지적하던 대목에서도 호통이 쏟아졌다. 최 대표는 “주가는 기업 대표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이지만 라인야후 한 가지 이유와 꼭 직결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최 대표 책임이 상당하다”고 면박을 줬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최 대표가 정말 네이버 주주를 위해 일하는지 깊은 의문이 든다”며 “들어가서 숙고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상대방에게 답변할 시간을 주지 않고 할 말만 하는 식이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민주당)이 최 대표를 향해 삿대질까지 했다. 그는 “쭉 답변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최 대표 머릿속에는 소비자가 없습니까”라고 소리쳤다. 최 위원장은 제4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다가 취소된 스테이지엑스의 서상원 대표를 향해서도 “대한민국 과기정통부가 졸로 (우습게) 보입니까”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면서 “추후에 필요하면 반드시 불러서 정부를 우습게 본 것에 대해 물어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최 대표와 서 대표는 이날 오후 11시41분에서야 회의장을 떠날 수 있었다.

경제계에선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몇 시간씩 불러 벌세우는 식의 상황을 한국에만 있는 ‘악습’으로 꼽는다. 2013년 국회를 다녀온 온 한 삼성전자 사장은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국회에선 기업인이 답변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며 “호통치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의 모습은 11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전날 회의도 마찬가지였다. 대화 어느 곳에서도 의원들이 약속한 ‘발전적인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의원들이 “기업이 자율적으로 고민하고 싶다”는 최 대표의 토로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