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한국 관객 만난다
퓰리처상, 로렌스 올리비에상,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을 모두 휩쓴 역작. 미국 전역에서 반대 집회까지 열렸던 문제작. 현대 희곡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가 한국 무대에 오른다.

공포와 혼란…세기말 미국 사회 그린 <엔젤스 인 아메리카>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 파트원:밀레니엄이 온다>가 한국 초연 무대에 오른다. 오는 8월 6일부터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 2부로 나눠진 <엔젤스 인 아메리카>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를 담은 공연이다.

작품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다양한 정체성의 소수자들이 등장한다. 에이즈에 걸려 괴로워하는 전직 드랙퀸이자 동성애자인 월터 프라이어와 그의 동성 연인 루이스 아이언슨. 모르몬교 신자이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의 남편 조셉과 약물에 중독된 그의 아내 하퍼. 흑인 드랙퀸 벨리즈 등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서사가 독특한 작품이다. 작중 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도 있고 천사와 죽은 이들의 영혼까지 등장한다. 현실과 판타지가 교차하는 이야기를 통해 밀레니엄을 앞둔 사회의 혼란과 에이즈의 유행으로 만연했던 공포를 비유적으로 그린다.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편견을 통해 1980년대 미국의 종교, 인종, 정치 등 각종 사회 문제를 꼬집는 작품이다

스필버그의 오른팔…천재 극작가 토니 쿠슈너
"20세기 최고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한국 관객 만난다
이 작품을 만든 건 미국의 극작가 토니 쿠슈너. 1956년 미국 맨해튼에서 음악가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루이지애나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뉴욕으로 옮겨 컬럼비아 대학에서 중세학을 공부했다. 이후 뉴욕대 대학원에 진학해 연극 연출을 시작했다.

쿠슈너가 예술계의 거물로 떠오른 계기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 시리즈.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 희곡 부문을 포함해 각종 상을 휩쓸며 미국 공연계의 스타로 발돋움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자주 협업하는 극본가이기도 하다. 2005년 뮌헨 테러 사건을 그린 영화 <뮌헨>, 2012년 <링컨>, <파벨만스>를 집필해 세 번 모두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최근에는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극본을 맡았다.

퓰리처상, 토니상, 로렌스 올리비에상 휩쓸었지만
"20세기 최고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한국 관객 만난다
쿠슈너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2년에 걸쳐 발표했다. 1부 <밀레니엄이 다가온다>는 1991년, 2부 <페레스트로이카>는 1992년에 초연했다. 두 공연의 런닝 타임을 합치면 7시간에 달하는 대작이다. 발표 당시 "20세기 발표된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쿠슈너는 <밀레니엄이 온다>로 1993년 퓰리처상 희곡 부문을 포함해 토니상과 미국의 연간 연극상인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를 휩쓸었다. 이듬해인 1994년 <페레스트로이카> 역시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를 연달아 받는다.

2003년에는 드라마로 제작됐다. 알 파치노, 메릴 스트립, 엠마 톰슨을 포함해 할리우드의 굵직한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드라마 버전도 호평받으며 흥행에 성공해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다.

영국 웨스트앤드에서 2017년 재연했다. 영화 <스파이더맨>,<소셜 네트워크>로 알려진 영국 출신 배우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았다. 2018년 '영국의 토니상'으로 불리는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받았다. 이 공연은 브로드웨이에서도 열려 연극으로서는 최다 기록인 토니어워즈 11개 부분에서 후보에 올라 3관왕에 올랐다.

세기의 명작이라는 극찬받으며 각종 상을 휩쓸었지만 부침도 있었다. 거침없는 동성애와 에이즈 묘사와 극 중 높은 수위의 노출이 반발을 일으킨 것. 1996년에는 당시 공연 중이었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극장 앞에서 보수단체와 종교단체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1999년 텍사스주 킬고어 칼리지에서 공연이 열렸을 때는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반동성애 집회가 열려 논란이 됐다.

대작으로 과감하게 연극 무대 도전장 내미는 유승호
"20세기 최고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한국 관객 만난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2년 전 처음 한국 관객을 만났다. 2022년 2월 국립극단이 2부 <페레스트로이카>를 선보였다. 원래는 1부까지 모두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공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계획을 수정해 2부만 공연하기로 결정됐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드디어 초연하는 1부 <밀레니엄이 온다>는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매체 연기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배우들이 이번 공연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인물 '프라이어 월터' 역을 유승호와 손호준이 맡는다. 2000년 아역배우로 드라마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유승호는 24년 만에 연극 데뷔작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에서 활동한 손호준은 2013년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이후로 10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다.

약물에 중독돼 다양한 환상을 보는 여인 '하퍼 아마티 피트'는 고준희와 정혜인이 분한다. 두 배우 모두 이번 공연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다.

창작진도 화려하다.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연극 <와이프>를 포함해 <더 웨일>, <그을린 사랑>에서 세밀한 연출로 호평받은 신유청이 2년 전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다. 영화 번역뿐 아니라 뮤지컬 <하데스타운>에 참여했던 스타 번역가 황석희도 이번 공연에 합류했다.

공연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8월 6일부터 9월 28일까지 열린다.

구교범 기자